독일 유학파 베테랑 연주자의 월급명세서...말문이 막힌다 [강인규 리포트]
2026.07.08 06:56
| ▲ 자신의 악기를 들고 있는 청주시립교향악단 노동조합의 최준용 지회장. 그는 고향인 청주의 무대에서 21년째 무대에 서고 있다. |
| ⓒ 강인규 |
최준용은 호른 연주자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친 뒤 국내 다른 관현악단에서 잠시 활동하다 청주시립교향악단(청주시향)에 입단했다. 그가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21년 전이었고, 무대에 서는 사이 고향의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세월은 그의 머리에도 흔적을 남겨, 어느새 흰 머리가 더 많아졌다.
청주시향은 빼어난 역량을 지닌 관현악단이다. 오랜 팬들이 많아, 공연 예매가 시작되는 날이면 예매 사이트에서 대기하다가 시계가 오후 2시를 치는 순간 입장해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자리를 망설임 없이 골라야 한다. 어느 좌석이 좋을까 고민하는 순간, 그 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나 역시 낭패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원하는 좌석을 미리 머리에 넣고 있다가 쏜살같이 그 자리를 고른다.
이렇듯 사랑받는 교향악단에서 연주하고, 그 무대가 나고 자란 곳에 있으니 감회가 남다를 만하다. 하지만 이 베테랑 연주자는 청주시향을 그저 "삶의 터전"이라고 말한다. 예술을 묘사할 때 흔히 동원되는 미사여구를 기대한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혹시 갑작스레 답하느라 최선의 표현을 고르지 못한 건 아닐까? 다시 물었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진솔한 고백이었다. 교향악단의 무대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을 선사하는 공간이지만, 그 선율을 만들기 위해 단원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 그들이 빚어내는 음악에 환호하는 관객들조차 이 사실을 쉽게 잊는다. 음악을 만드는 일이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6월 22일,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노조 조끼를 입고 있었다. 무대 밖에서 연주자를 만난 일이 없는 내게 연주복이 아닌 의상은 낯설게 보였다. 어쩌면 그에게도 낯선 경험일지 모른다. 노조가 만들어진 게 불과 3년 전이고, 그가 단복을 입고 무대에 선 세월은 그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내가 연주단의 처우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는 답을 내밀었다. 급여 명세서를 건넨 것이다.
그곳에 찍힌 숫자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하지만 명세서에는 4인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운 액수가 적혀 있었다. 청주시향은 입단이 쉽지 않은 곳이다. 최근 바이올린 연주자 한 명을 뽑는데 99명이 지원했다. 그런 곳에서 20년 넘게 근속해 온 연주자의 보수가 이 수준이라면, 이건 개인이나 일개 연주단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저생계비나 될까요?"
실제로 그랬다.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2026년 기준 4인 가구 개인회생 최저생계비(389만 6843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였다. 거기에 공연을 할 때 받는 수당이 추가되겠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삶의 터전"이라는 대답의 의미를. 나는 연주자들의 음악을 즐기고, 그들의 재능과 노력을 존경하면서도, 그들이 나와 같이 밥을 먹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장미는 빵 위에 핀다
| ▲ 청주시립교향악단이 청주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
| ⓒ 강인규 |
우리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기에는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케이클래식(K-Classic)'으로 불리는 고전음악도 포함된다. 세계 콩쿠르를 석권해 온 젊은 연주자들과, 세계 유수 연주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 관현악단의 성과는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다.
이 성취가 우리를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음악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알기 때문이다. 삶에는 '빵과 장미' 모두가 필요하다. 예술은 우리의 삶이 그저 먹고 사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도록 자극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연주자와 악단이 한국을 넘어, 세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장미'를 선사하는 이들이 정작 '빵'을 제대로 얻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런 예술가가 생계를 고민해야 하고, 이들이 속한 곳이 공립예술단체라면, 그 사회가 예술을 아끼고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공립예술단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시민 모두가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무료 혹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은 예술을 선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이 시장의 논리 속에서 침몰하지 않도록 창작자와 연주자들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청주시향은 수년째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고용돼 무대에 서는 정규단원은 65명이다. 본래 정원 93명의 70퍼센트도 채우지 못한다. 이 인원으로 대규모 협주곡을 연주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널리 사랑받는 말러의 교향곡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브루크너의 초기 교향곡을 연주하려 해도 최소 90~100명의 단원이 필요하다.
비단 청주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립 예술단의 저임금과 불완전한 구성 뒤에는 예산 문제가 있다. 2026년 청주시의 본예산 규모는 총 3조 7904억 원이고, 4개 단체(교향악단, 합창단, 무용단, 국악단)로 구성된 시립예술단 운영비로 약 140억 원을 집행한다. 전체 예산의 0.37%에 해당하는 액수다. "문화도시" 청주에 충분한 투자일까? 또 다른 문화도시 부천과 비교해 보는 것이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부천시는 청주에 비해 인구가 10만 명 이상 적고, 2026년 예산 또한 1조 3천억 원 이상 적다. 하지만 관현악단과 합창단 두 단체로 이뤄진 예술단 운영비로 100억 원 이상을 집행한다. 절대 비율로 부천이 각 단체에 40% 이상 더 지원하는 셈이고, 예산 크기를 고려하면 2배 이상 더 투자하는 셈이 된다.
| ▲ 청주시향 단원들이 정기공연 전 공연장 로비에서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에델바이스"를 연주하고 있다. 뒤로 피켓을 든 단원의 모습이 보인다. |
| ⓒ 강인규 |
물론, 조건이 다른 두 도시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고, 부천필의 성공이 재정적 후원만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1988년에 창단한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전국은 물론,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상임 지휘자들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과감한 투자가 성장의 전제조건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이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으며, 부천필 또한 재단법인화를 둘러싼 내홍과 문화적 이해가 결여된 대규모 예산 삭감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부천필 애호가들이 나서서 모금 운동을 하는 등 뜨겁게 호응했고, 그 결과 독보적 위상을 지닌 뛰어난 관현악단으로 성장했다.
청주는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도시이다. 2019년 대한민국 제1차 "문화도시"로 지정된 후, 문화를 도시의 정체성으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온 곳이다. 그리고 타 도시에 비해 탁월한 문화적 조건 또한 갖추고 있다. 지자체로서는 드물게 관현악단, 국악단, 무용단, 합창단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리한 조건은 전향적인 투자와 후원 속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내려가는 사다리 위의 비정규직
| ▲ 청주예술의전당 건물에 걸린 현수막들. 청주시향 노조는 단원평가(평정) 비합리성, 연습공간 부족, 처우개선 등을 두고 청주시와 대화를 요구해 왔다. |
| ⓒ 강인규 |
단원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고용 불안정이다. 이는 한국 국공립 예술단들을 괴롭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청주시향 단원들은 시가 고용한 노동자이지만,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이들은 시 예산으로 급여를 받는 위촉직 비정규직 노동자다. 공무원처럼 직급이 6~9급으로 나뉘지만, 공무원과 달리 근속기간이 는다고 진급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단원들은 매년 '평정'이라는 오디션 형태의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높은 점수를 받아도 승진하지 못한다. 반대로, 실수라도 해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수석으로 입단한 7급 단원이 8급으로, 그리고 8급에서 9급으로 강등된다. 다시 말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제자리, 못하면 벌을 주는 구조다.
당연히 연주단의 역량은 중요하다. 평정도 단원들의 기량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상 없이 처벌만 존재하는 평가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 년 내내 연습하고 수십 차례 공연하는 연주단을 마치 입시처럼 단 한 번의 연주로 판단하는 것이 객관적 평가일까? 조화가 생명인 관현악단에 합주가 아닌 개인 오디션을 요구하는 것이 평가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청주시향 노조가 청주시에 대화를 요구하며 제기해 온 문제들이다.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최근 청주시는 노조 측의 평정제도 개선 요구에 대해 "기존 직급을 유지하되, 2회 연속 자격 미달일 경우 해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직급 강등을 한 해 유예하는 조건으로 해고를 요구하는 것을 개선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청주시는 다시 2년에 1번 평정을 하고, 직급 대신 수당을 깎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제안 역시 '상 없는 벌'이라는 기존의 한계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노조는 처벌과 보상을 모두 포함시키는 방안, 즉 '근속승진'을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평정을 통한 수당조정'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높은 인건비 비중이 문제?
| ▲ 최준용 지회장이 청주시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 ⓒ 강인규 |
내가 시향 단원들과 청주시 담당자 양측을 만나 대화하며 깨달은 것은 상호 간의 '이해 부족'과 '신뢰의 결여'였다. 내가 만난 연주자들은 자기규율, 창의성,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단했다는 사실이 기량을 입증하기도 하지만, 연주자들의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연습이다.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연습을 안 하면 동료가 알고, 사흘 연습을 안 하면 관객이 안다." 내가 만난 단원은 이 격언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예술단을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들은 또 다른 입장에 처해있다. 이들은 단원들의 기량을 유지해 시민들에게 양질의 공연을 선보이고, 세금이 함부로 사용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평가는 불가피하고, 노조 역시 필요성에 동의한다. 앞에서 다뤘듯, 문제는 이 평가가 생산적 방식이 아닌 처벌 위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예술단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의 부재다. 문화예술단을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 대다수는 인사이동으로 업무를 맡았다가, 상황에 익숙해질 무렵 전혀 다른 부서로 이동하곤 한다. 따라서 청주를 포함한 지자체들은 예술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의 문화적 몰이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단 운영비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의원들이 있다. 음악은 사람이 연주하기에 인건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뛰어난 기량을 갖춘 연주자를 고용하거나 초청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큰 보상이 필요하다. 인건비가 높은 것이 '방만경영'의 증거일 수는 없다.
| ▲ 청주예술의전당 건물. 청주시는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기 위해 노력해 왔다. |
| ⓒ 강인규 |
사람에 대한 투자는 시민들의 문화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의도적으로 인건비를 낮춰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야말로 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을 훼손하는 일인 동시에, 시민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된다.
예술은 삶이라는 배 위에 떠 있는 샛별이다. 비록 삶에서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이상이다. 좋은 연주회를 듣고 공연장 밖을 나설 때마다, 내 삶을 그 선율처럼 빚어가고 싶은 욕망, 그 조화로운 음악처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청주시향 단원들은 오늘도 무대에 선다. 박수는 무대 위에서 끝나지만, 삶은 무대 밖에서도 계속된다. 그 삶을 돌보는 것은 곧 무대 위의 예술을 돌보는 것이고, 그 첫걸음이 예술가의 식탁에 충분한 빵이 놓이는지 살피는 것이다. 나는 청주시가 과감히 이 첫걸음을 떼기 바란다. 예술가의 삶을 돌볼만큼 섬세한 공동체는 어느 누구도 궁핍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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