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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병의 컴퓨팅 파워 쟁탈사] 비잔틴 제국 무너뜨린 대포, 기술혁명의 신호탄

2026.07.08 23:39

[1] 총과 대포가 부른 혁명

초대형 대포에 콘스탄티노플 함락
15세기 유럽 휩쓴 화약무기 폭풍
백년전쟁은 프랑스 대포가 끝내
갈릴레이 “無知도 대포가 깨부숴”



AI 혁명과 함께 새로운 ‘군비 경쟁’이 시작됐다. 더 강력한 GPU와 막대한 메모리를 확보해 생산성·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우수한 지식(AI 모델)과 도구(IT 인프라)가 결합한 ‘컴퓨팅 파워’가 경제·군사·정치 패권의 핵심 열쇠로 떠올랐다. AI 인재 육성과 데이터센터 구축에 대한 천문학적 투자, 반도체 제조 기업의 대호황과 주가 폭등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류 역사에서 기술 혁신 시기에 반복돼 온 패턴이다. 그 이면에는 강력한 ‘컴퓨팅 파워(계산의 힘)’를 갈망하는 국가와 인물들의 각축이 있었다. –편집자 주

카스티용 전투에서 대포로 무장한 프랑스군에게 잉글랜드군이 격파되는 장면. 보르도 와인 ‘샤토 탈보’는 이 전투에서 전사한 잉글랜드 장군 존 탈보에서 이름을 따왔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에 펴낸 문제작 ‘두 세계 체계에 대한 대화’로 종교재판에 회부돼 큰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흥미로운 한탄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대포가 없었던 게 참 아쉽군. 대포만 있었더라면 무지를 깨부수고, 우주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무지(無知)를 깨부수는 대포라니? 이는 시적인 비유가 아니다. 대포를 비롯한 화약 무기의 등장은 당시 전쟁뿐 아니라 인류 지성과 산업의 발달에 엄청난 자극을 불어넣고 있었다.

화약은 본래 중국에서 불로장생을 추구하던 연단술의 부산물로 발명됐고, 13세기 몽골 제국의 정복 사업을 따라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유럽인들은 몽골군이 남기고 간 화약에 불을 붙여 보고, 그 강렬한 폭발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온갖 불온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 당연한 귀결은 총과 대포와 같은 화약 무기였다.

그러나 총과 대포가 전쟁의 주역이 되기까지 한참이 더 걸렸다. 화약의 핵심 재료인 염초가 비쌌기 때문이다. 1346년 백년전쟁의 분수령이 된 크레시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핸드캐넌과 청동제 대포 몇 문을 동원했지만, 정작 승부를 가른 것은 1만여 명의 잉글랜드 장궁병이 분당 수만 발씩 퍼부은 ‘화살비’였다.

그럼에도 유럽 전략가들은 화약 무기가 몰고 올 폭풍을 예감했다. 유럽 각국이 경쟁에 뛰어들며 화약 수요가 급증했고, 크레시 전투 후 30여 년 만에 영국의 화약 가격은 7~8배로 치솟았다.

수요가 폭발하면 인간은 기어이 공급을 만들어낸다. 14세기 후반 독일 지역에서는 ‘염초밭’이 등장했다. 사람과 가축의 분뇨, 음식 쓰레기, 낙엽을 섞어 쌓은 두엄 더미가 가득한 밭이었다. 박테리아가 암모니아를 산화시켜 질산염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노지 바이오테크놀로지 공장과 같았다. 이 기술 혁신으로 1417년 영국에서 화약 1파운드의 값은 숙련된 장인의 하루 임금이던 5펜스까지 떨어졌다. 14세기 후반 고점 대비 20분의 1 이하의 폭락이었다.

염초밭에서 수거한 흙을 끓여 질산칼륨(염초)을 추출하는 모습.

화약 공급이 늘면서 화약무기 제조기술도 빠르게 발전했다. 중세 유럽은 교회 종탑에 매달 청동제 종을 주조하면서 야금기술을 쌓아왔는데, 청동의 주석 비율을 낮추자 인장 강도가 훨씬 높은 건메탈(gunmetal)이 탄생했고 더 튼튼한 대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런 기술 혁신은 공교롭게도 1453년 세계사를 바꿨다. 그해 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천년 제국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위해 초대형 공성포 수십 문을 제작했다. 그중 헝가리 기술자 오르반이 만든 대포는 길이가 8m를 넘고 270㎏짜리 석재 포탄을 1.5㎞ 이상 날릴 수 있었다. 6주 동안 5000발이 넘게 퍼부은 포격 끝에, 천년을 버텨온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남프랑스 카스티용에서 또 다른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 잉글랜드 백전노장 슈루즈베리 백작은 장궁병을 믿고 카스티용의 포위를 풀기 위해 프랑스군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그간 절치부심한 프랑스군이 꺼내 든 것은 300문의 대포였다. 백작은 포탄을 맞아 아들과 함께 전사했고, 이로써 백년전쟁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처럼 프랑스는 당시 화약 무기 기술혁신을 선도했다. 콘스탄티노플 공성포는 200㎞를 옮기는 데 두 달이 걸렸을 만큼 무거웠다. 반면 프랑스는 마차 바퀴를 단 전용 ‘포가(砲架)’를 개발해 말로 끌 수 있게 했고, 포신 양옆에 회전축 투리용(砲耳)을 설치해 조준 각도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 의해 대포는 진정한 야포(field gun)로 거듭났다.

발사각도에 따라 변하는 탄도의 모양을 묘사한 17세기 포술서 삽화.

신무기와 신기술로 무장한 프랑스는 이내 서유럽 최강 군사대국으로 도약했다. 샤를 8세는 청동포 70문 이상을 갖춘 막강한 포병을 앞세워 1494년 이탈리아를 침공한다. 이듬해 2월 프랑스군은 해발 420m 바위산 위에 두께 3.5m의 성벽을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몬테 산지오반니캄파노 성에 도달했다. 성은 몇 년이고 버틸 것처럼 견고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집중 포격을 퍼붓자 8시간 만에 성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성은 곧 함락됐다.

이 가공할 위력은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60여 년간 지속된 ‘이탈리아 전쟁’ 시대가 열리면서, 이탈리아인들은 생존을 위해 더 강력한 대포를 만들고 운용하는 지식을 개발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물체의 운동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불씨가 당겨졌고, 그 불씨는 16세기에 이르러 거센 불길로 타올랐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대포가 있었더라면!” 하던 갈릴레오의 한탄은 바로 이런 시대적 요구에서 나온 것이다.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대포와 포술을 연구하며 ‘무지’를 깨고 더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얻기 위한 문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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