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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신고가 정의로울 것이라는 착각

2026.07.08 00:39

정승훈 논설위원

자유로운 허위조작정보 신고
온라인 세상 완장이 될 여지도

좋은 의도를 가진 신고라 해도
피해자 등 2차 가해 가능성 있어

사기·딥페이크 처벌 당연하지만
설계 미진하면 부작용 양산 우려
검증 구체화·신고 남용 방지 필요

온라인 공론장에는 다양한 의견이 분출된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논지도 제출되지만 밑도 끝도 없는 어설픈 주장이 난무하기도 한다. 단어 하나를 꼬투리 잡거나 억지 트집을 잡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공론에 참여한 이들은 물론 공론을 지켜보는 이들도 그런 과정 속에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잘못된 주장은 합리적인 논리를 돋보이게 만들고, 비판적인 시각의 존재는 진실을 다시 검증할 수 있게 해준다. 핵심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공들인 논리를 전개하는 이들의 존재다. 합리적인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사라지면 공론장은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이들의 데시벨 경연장이 될 뿐이다.

어제부터 시행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을 둘러싼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걱정스런 대목은 누구나 허위조작정보 신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잖아도 정치적 자의식이 비대한 이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큰 데 신고 권한까지 준 것은 온라인 세상에서 완장을 채워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정치적 반대 발언은 물론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와 게시물도 모두 허위조작정보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확신으로 뭉친 이들은 자신의 신고를 ‘정의 구현’이라고 생각한다. 한두 번 해서 안 되면 서너 번, 아니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반복할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친여나 친야 어느 한 정파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근거를 갖춘 보도와 게시물조차 양쪽의 좌표찍기 대상으로 전락할 확률이 높다. 이런 일이 현실화되면 온라인에는 비판과 토론 대신 시시껄렁한 잡담만 남게 된다.

자기 확신에 넘치는 신고자는 피해자마저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 공론화될 필요가 없는 사안들까지 노출시킬 우려가 크다. 굳이 다시 드러내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피해 사실조차 조작 정보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에 분개한 누군가가 “가해자는 악질인데 처벌이 너무 약하다.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마찬가지”라며 신고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해자를 응징하겠다는 의도와 별개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소지가 다분하다. 자의식 강한 신고자들은 심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이런 내용을 신고했다. 정의의 심판이 내려지는지 보겠다”며 신고 사실을 떠벌릴 수도 있다. 가해자가 숨기려는 진실이 은폐됐다면 이를 신고하는 건 의미 있지만 피해자의 숨기고 싶은 진실은 다른 문제다. 피해자의 입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내가 아는 게 맞다며 피해 내용을 드러내는 신고는 정의로울 수 있을까. 아무나 신고할 수 있도록 한 제도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누군가에게도 악몽이 될 수 있다.

완장 찬 이들의 신고는 특정 개인이나 게시물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신고를 거듭해도 원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화살은 플랫폼으로 향하게 된다. 반복적 신고에 지친 플랫폼은 요구를 들어주는 척이라도 할 가능성이 높다. 신고가 남발되면 심사 기능에도 문제가 생긴다. 진짜 가려내야 할 허위조작정보가 제대로 걸러지지 못할 수도 있다. 게시물에 대한 책임을 진 플랫폼이 “못 해 먹겠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다. 미국 기반 플랫폼이라면 쿠팡처럼 미국 정부에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 국무부는 이 법에 대해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의 사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우려를 공개 표명한 바 있다.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이나 사기·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입안된 정보통신망법은 신고가 정의로울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어쩌면 입안자들은 반대 측 의견을 무력화시키는, 입맛에 맞는 신고를 기대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고 대상은 어느 한 쪽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입법의 취지가 좋아도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하면 부작용만 양산하게 된다.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론장 자체가 사라지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다면 입법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허위조작정보의 정의와 검증 과정을 보다 구체화하고, 자기 확신에 가득찬 이들의 신고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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