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한국 일부 명확”…1948년 미군 기밀문서 발견
2026.07.07 10:31
동북아역사재단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1948년 독도폭격사건 문서철에서 ‘1947년 9월 독도는 한국의 일부임이 명확히 확립돼 있다(definitely established in September 1947 that Liancourt Rocks was a part of Korea)’는 기록이 발견됐다”고 7일 밝혔다. 1947년 9월은 미국 극동군 총사령관이 독도를 폭격연습지로 승인한 시점이다.
● “독도는 한국의 일부임이 명확히 확립돼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이 내용은 미국 극동공군사령부(FEAF)가 작성한 문서에 첨부된 ‘독도폭격사건 보고서(REPORT ON BOMBING OF LIANCOURT ROCKS)’에 실려 있다. 독도폭격사건은 1948년 6월 8일 미 극동공군 제93폭격전대 B-29 20기가 투하한 폭탄에 맞아 독도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 1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을 가리킨다.
보고서는 독도가 한국령임에도 “이것이 결코 일반적인 지식이 되지 못해 일본의 한 섬으로 인식됐다(this never became general knowledge and was understood to be an insular part of Japan)”는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폭격 연습 계획을 주한미군사령부엔 통보하지 않았고, 결국 독도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인들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극동공군은 각 폭격 연습장 사용 15일 전에 제8군 사령관(미 군정 부서), 주한미군사령관(USAFIK), 극동해군사령관(COMNAVFE)에게 통지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독도는 한국령이니, 폭격 훈련을 하기 전엔 반드시 한국의 관련 당국에 알려야 한다는 취지다.
● 美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문서철에서 수집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전갑생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가 NARA에서 수집해 재단에 기증한 것으로 총 222쪽 분량이다. 광복 직후인 1946~1948년 우리 지방 행정기관인 울릉도가 독도 영유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중요 사료도 여럿 포함됐다.
같은 독도폭격사건 관련 문서철에서 나온 ‘독도 영유 문제에 있어서 조선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유 및 경위’(1948년 6월 16일)도 그중 하나다. 이 문건은 1948년 독도폭격사건 직후 한국의 지방행정관인 울릉도사(鬱陵島司·울릉군수)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미군 법무관에게 제출한 것이다. 울릉도사의 관인이 찍혀있다.
문건은 1947년 조선산악회의 독도학술조사와 표목 설치 및 독도를 일본의 영역에서 제외한 맥아더 라인(SCAPIN-1033) 등을 인용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천명하고, 독도폭격사건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에 대해 선처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SCAPIN-1033’ 수기 지도와 함께 △울릉도 주민 홍재현 진술서 △울릉도사의 울릉도 소속 독도 영유 확인 문서 △심흥택 군수 보고서 필사본 등이 함께 첨부돼 있다.
홍재현 진술서는 울릉도 주민 홍재현이 1947년 8월 20일 남조선과도정부 외무처 일본과장 앞으로 제출한 증언 문서다. 1903년부터 독도를 왕래하며 미역 채취, 바다사자 포획을 해왔음을 증언하는 한편, 1906년 심흥택 군수의 일본 침탈 항의 과정도 증언했다. 1955년 외무부 정무국의 ‘독도문제개론’에 해당 내용이 정리돼 있으나, 이번에 낱장 원문이 처음 확인됐다.
‘울릉도 소속 독도 영유 확인의 건’ 보고서는 1946년 4월 25일 한국의 지방 행정관인 울릉도사가 경상북도 지사에게 보낸 광복 후 독도 관련 최초의 공문서다. 독도가 울릉도 소속임을 공식 확인하고 중앙 군정청이 일본 정부와 교섭하여 독도가 울릉도 소속임을 확인, 공표하도록 요청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독도가 지리적으로 일본의 오키섬보다 울릉도에 더 가깝고,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 관측될 뿐만 아니라, 바다사자 미역 전복 등의 생산지로 동해의 보고라는 점 등이 기술돼 있다.
● ‘독도=한국인 어업구역’ 피력한 공문서도
‘독도어선폭격사건’ 보고서(1948년 6월 18일)는 ‘독도폭격사건’에 대해 지방 행정관인 울릉도사와 산업과장 등이 연명해 작성한 공식 문서다. 상부로부터 폭격연습 등 군사적 행동에 대해 어떠한 사전 통고도 받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한편 독도가 과거부터 한인들의 어업구역임을 피력하는 내용이다. 관습에 따라 “과거 50여 년” 전부터 울릉도 주민은 물론이고 강원도 연안 각지에서 매년 출어하고 있고, 또 해방 후에는 맥아더라인에 따라 한인들의 어업 조업 구역이라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번 자료 기증에 대해 “한국의 실질적인 독도 이용과 인식 등을 입증하는 새로운 문서를 확보하고, 제3자인 미국의 공식 문서에 의해서도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명확한 입장이 담긴 객관적 증거자료를 확보했다”며 “1945~1948년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직접 증명하는 1차 사료가 거의 없었는데,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역사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독도체험관에서 전갑생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자료 기증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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