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전
'평생의 막막함 '...출생지 모욕하는 세상이 학생들에게 남긴 것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2026.07.07 12:01
| ▲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이 취임 첫날인 1일 오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방문해 최근 전국대회 경기에서 상대 팀인 배재고 선수단의 지역 비하성 응원으로 상처를 입은 야구부를 위로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돌아보면 내가 동성애자임을 깨달은 건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무렵인 것 같다. 등하교를 같이 하던 순하고 눈이 예쁜 친구가 있었는데 함께 있으면 묘한 감정의 떨림이 느껴졌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는 PC 통신조차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동성애'가 무엇인지 '이성애'가 무엇인지 그런 개념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단지 사람들이 내가 이성 친구와 있으면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주었고, 어린아이들이 벌써 '연애'를 하냐며 농담을 던지는 상황을 종종 마주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세상은 여성과 남성이 부부가 되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곳이었다. 만화를 보든 책을 보든 거기에는 늘 이성과 짝지어진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이 격변이 벌어졌다. 유명 연예인 홍석천씨가 동성애자라 커밍아웃을 했고 하리수씨는 자신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며 방송가에 데뷔했다. 이전에도 성소수자들이 뉴스나 방송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2000년대를 전후한 시대적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이들이 연예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례 없는 규모의 조명이 쏟아졌다.
그러니 뉴스도 매체도 사람들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고 모를 수도 없게 되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동성애자인 친구를 만났다. 내게 대뜸 커밍아웃을 한 친구는 사실 나도 동성애자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이어져 온 동성 친구를 향한 묘한 떨림의 정체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건 욕망이고 사랑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았음에도 끝끝내 숨긴 이유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되고 진실을 마주하면 사람은 더욱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내 성적 지향을 인정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물론 마음이 가는 대로 남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 삶에 다채로운 족적을 남겼다. 동성애자로 사는 데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삶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신경 쓰고 눈치 볼 게 많아진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내 성적 지향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성애자들은 이게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내 정체성이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함은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특히 90년대는 지금보다도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숨겨져 있던 시기였다. 마치 아주 깔끔하게 지워버린 것처럼. 그러면 나는 남들과 다른데 그게 드러낼 만큼 긍정적인 게 아니라는 감각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욱 직접적인 계기는 찾아온다.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전형적인 성역할을 잘 따르지 못하거나 특히 그런 아이들이 동성 친구와 가깝게 붙어 있으면 '동성끼리 사귀기라도 하는 거냐'는 식의 놀림이 따라붙었다. 이성애가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동성 간의 그런 관계는 사실 여부를 떠나 금세 조롱과 추문 거리가 된다.
아이들은 '게이'는 몰라도 어디서 들었는지 '호모'라는 단어를 귀신 같이 알아서 왔다. 조롱하고 멸시할 수 있는 대상은, 손쉽게 집단으로 괴롭히고 폭행하기도 좋았다. 아주 처절하고 잔혹한 수준으로. '호모'라고 찍힌 아이들은 심하면 제대로 학교에 다니는 게 어려울 정도로 학교폭력을 겪었다. 이건 90년대나 00년대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황이다.
익숙하지만 아픈 감정이 다시 떠오른 이유
| ▲ "스타벅스 가자,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 혐오 폭력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지난 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이규연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청소년기부터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나는 '나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사람들이 낙인이 찍힌 이들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이 사회는 그걸 얼마나 깔끔하게 무시하는지 끔찍하게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몰리는 인생은 전혀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의지로 동성애자가 된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저 나의 타고난 정체성이었다. 태어나서 살다 보니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특히 나를 포함하여 이건 누구의 잘못이나 책임도 아니었고, 동성애자라는 게 그걸 물을 성격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추궁하고 죄라도 지은 것처럼 멸시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숨기고 부정했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손가락질당하기 싫어서. 그리고 이건 상당히 비참한 감정이 드는 일이다.
바꿀 수 없는 정체성으로 인해 낙인찍히는 고통은, 본질적으로 결국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이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소위 '배재고 사태'가 벌어진 이후였다. 지난달 29일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은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야구 경기를 하던 도중 "스타벅스 가야지"를 외쳤다.
이 말은 해당 커피 프랜차이즈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탱크데이'로 지칭한 소위 '스타벅스 사태'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배재고 선수들의 구호도 같은 맥락의 혐오와 멸시였다. 어떻게 변명해도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거대한 갑론을박의 장이 되었다. 다루려는 주제가 이것이 아니기에 깊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른이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수준 이하의 저질인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책임 있게 이 사태를 갈무리하려고 노력하거나 상처받은 학생들을 위로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오히려 자신의 정파적 입장을 사태에 투영하거나, 혐오표현을 옹호하거나, 5.18과 호남 멸시를 재생산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런 소리나 할 거면 그냥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사회에 이슈 하나가 발생한다고 고위공직자에 정치인까지 모두가 나서 말을 얹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게 자기 역할이 아니라면.
그 깊은 상처를 헤아리는 건 어렵다, 다만...
어쨌든 이 사태를 목격하고 나는 반사적인 궁금증이 들었다. 당시 경기장에 있던 광주일고 선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운드와 포수석과 내·외야에 서서 각자의자리를 지켰던 그 선수들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조롱을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덕아웃이나 혹은 경기장 어딘가에서 저런 외침을 하는 걸 목격한 광주일고 구성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단순히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과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사람의 출생지는 바꿀 수 없다. 그건 태어나는 순간 그냥 결정되는 것이다. 속일 수는 있어도 그걸 아예 다른 곳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저 나고 자라 배우다 보면 자기가 태어난 곳이 어딘지 알게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못난 세상은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단지 그 이유만으로 멸시한다. 한국에선 특히 호남과 광주가 그런 부당한 취급을 받는 지역이다. '이었다'라고 쓸 수 없는 이유는 이 혐오가 과거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조롱과 멸시는 끔찍하게도 '유희'나 '하위문화'처럼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결국 호남과 광주 사람에 대한 비하와 혐오로 이어진다.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외침을 듣는 건 순간이지만 그 발언으로 인해 받게 되는 상처는 평생의 막막함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 그런 식의 모욕과 멸시에서 자유로우려면 결국 호남과 광주, 5.18에 대한 비하와 혐오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이 자기 출생지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거대해 보이는 군중은 혐오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고 세상은 그걸 보고도 꿈쩍하지 않는 것만 같다. 실제로 그렇기만 한지와 상관없이 당사자 개개인들은 그런 막막함이 들 수밖에 없다. 모욕감과 수치심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그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나는 광주일고 학생들이 아마도 그런 마음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기에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며 안타까움과 비참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들과 구성원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이들이 당시에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알고 이해한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상처의 깊이를 당사자가 아닌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당시의 마음과 상처에 대해 말을 하고 싶다면 나는 언제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란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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