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종의 아디스 레터] 우간다에서 쏘나타를 고쳐준 6·25 참전 용사
2026.07.06 23:39
집으로 초대해 식사 대접…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이 애국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월드컵의 계절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쉽고 씁쓸함이 남는다. 남아공과의 3차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의 끈을 놓지 못해 다른 조 경기 결과를 챙겼지만, 끝내 실망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이럴 때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의료 봉사를 하며 살던 시절이 생각난다. 어느 깊은 밤, 천지를 흔드는 “와~” 함성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반군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고 치안이 불안정해 밤에는 간헐적인 총소리가 들리던 때였다. 순간 ‘쿠데타가 일어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 밝혀진 소동의 실체는 유쾌한 반전. 월드컵 때문이었다.
당시 본선 무대에 진출한 아프리카 대표팀이 골을 넣은 것이었다. 우간다는 축구 강국이 아니라 한 번도 월드컵 본선을 밟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아프리카 대표팀들을 마치 제 나라 팀인 양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아프리카 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이튿날 아침 충혈된 눈으로 출근하는 현지 의료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축구보다 야구를 더 좋아하는 ‘야구파’였다. 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중요한 시험 기간에도 고향 팀인 삼성 라이온즈 경기만큼은 꼭 챙겨 보던 열혈팬이었다. 그러다 아프리카 땅에 발을 디딘 후부터 축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 열기의 정점은 4강 신화를 쓴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한국 대표팀이 세계적인 강호들을 물리치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아프리카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은 여전하다. 박지성·안정환부터 손흥민까지, 우리 선수들의 이름이 현지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대한민국(Korea)’이라는 이름이 아프리카인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것도 2002년 무렵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외교관이 밤낮으로 뛰며 하지 못한 국가 브랜드 홍보를, 청년 축구 선수들이 이루어낸 것이다.
현지인들은 한국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우리 축구 스타들의 이름은 훤히 꿰고 있다. 세계 무대를 누비는 그 선수들이 나의 가족은 아니건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들의 활약상이 들려올 때마다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타국에서 오래 살면 모든 한국인이 피를 나눈 친척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 역시 한국 제품이 최고라는 국산 예찬론자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도 휴대폰과 노트북 등 가전제품은 늘 삼성을 고집했고, 자동차는 현대 쏘나타로 13년을 버텼다. 비포장도로가 많고 먼지가 자욱한 아프리카의 도로 환경 탓에 쏘나타는 잔고장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할 때면 10년이 넘은 모델 부품을 구하러 다니곤 했다. 국내에서 들려오는 노조 파업 뉴스에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척박한 땅을 달리는 내 나라 차가 마냥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열대 지방 특유의 세찬 폭우인 ‘스콜’이 쏟아진 직후 동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그런데 주유소를 나선 지 100m도 못 가 엔진이 꺼져버렸다. 주유소 지하 탱크에 빗물이 흘러들어, 휘발유에 물이 섞여 생긴 문제였다. 현지 정비소들은 기술 부족으로 고치지 못했고, 결국 내 차는 마당 구석 망고나무 아래에 오랫동안 방치된 채 뽀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다.
완전히 멈춰 서 있던 차를 살려낸 이는 영국인 베테랑 정비사 람(Mr. Lamb)씨였다. 동부 아프리카를 순회하며 현대차들을 수리하던 그는 엔진을 통째로 분해하고 재조립해 차를 말끔히 살려놓았다. 수리가 끝나고 시동을 걸었을 때 들린 ‘부르릉’ 하는 힘찬 엔진 소리는 감동적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6·25 전쟁에 참전한 용사였다. 고장 난 차를 고쳐준 것도 고마운데,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던 내 조국을 지켜준 영웅이라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사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을 전하고 싶어 그를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현대차를 사랑한다는 노병은 자신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나라가 이토록 눈부시게 성장한 데 대해 깊은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한국 음식을 서툰 젓가락질로 맛있게 즐기는 그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날 밤, 아프리카 땅에서 마주 앉은 참전용사의 미소 속에서 나는 타국 생활이 베풀어준 아름답고 고귀한 애국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애국은 거창한 구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나라가 일군 위대한 성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그 성취를 가능케 한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 바로 그 온기에 있다.
☞의사 유덕종
1992년 ‘정부 파견 의사’ 1기로 선발돼 우간다로 갔다. 계약을 연장하며 아프리카에 남았고 지금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길러낸 의사만 4000명. 아산상, JW성천상 등을 받았다. 현지에선 아디스아바바를 줄여 아디스라 부르는데 ‘아디스 레터’는 그곳에서 띄우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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