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 250주년 행사의 뜨악함... 트럼프는 돌연변이가 아니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2026.07.06 17:41
| ▲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몰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다. |
| ⓒ EPA 연합뉴스 |
지난 4일, 미국은 독립 250주년을 맞았다. 한 나라의 250년은 가볍게 지나칠 시간이 아니다. 더구나 미국은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대표적 공화국으로 이해해 왔고, 세계 역시 오랫동안 미국을 근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모델로 보아왔다.
그러나 올해 워싱턴의 내셔널몰은 통합의 기념식이라기보다 현재 미국 정치의 균열을 비추는 무대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세운 '프리덤 250'은 독립의 기억을 국가적 성찰보다 정치적 연출로 기울게 했다.
불꽃은 올랐고, 애국의 언어도 반복되었다. 그러나 축제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폭염은 일부 행사의 흐름을 끊었고, 기념의 공간에는 과도한 보안과 동원의 분위기가 함께 놓였다. 250년을 기리는 자리는 국민적 합창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미국이 같은 날, 같은 이름의 기념일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때 물어야 할 것은 미국 독립을 축하할 것인가가 아니다. 독립은 한 공동체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다. 문제는 미국 민주주의를 여전히 모범으로 기억할 수 있는가에 있다.
더 나아가 그 모범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정당했는가. 미국 민주주의는 지금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 출발부터 추앙의 대상이라기보다 검증의 대상이었다.
모범이라는 이름의 신화
미국 민주주의가 모범으로 여겨져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독립선언은 근대 정치의 가장 유명한 문장 가운데 하나를 남겼고, 헌법은 권력분립과 연방제의 실험으로 오래 연구되었다.
권리장전은 국가 권력 앞에서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묻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유공화국으로 설명했고, 많은 나라도 미국을 민주주의의 교과서처럼 바라보았다.
그 성취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적 선구성이 곧 도덕적 모범성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헌법 문서의 아름다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 문서가 누구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했는지, 누구를 자유의 이름 안에 포함했고 누구를 그 바깥에 남겨두었는지 함께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품격은 선언의 높이가 아니라 적용의 범위에서 드러난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분명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을 건국의 이상에서 벗어난 일시적 일탈로만 보면 충분하지 않다. 오늘의 미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묻는 일은 결국 처음의 미국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일로 이어진다.
질문은 현재의 미국이 건국의 이상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 건국의 이상 자체가 처음부터 누구의 이상이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순수하지 않았던 독립의 출발
| ▲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백인우월단체 '애국전선' 회원들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진을 위해 이동하며 지하철에 빽빽히 들어찬 가운데 한 흑인 여성이 가운데 앉아있다. |
| ⓒ 로이터 연합뉴스 |
미국 독립선언은 근대 정치사에 남은 가장 강력한 보편 언어 가운데 하나를 남겼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었다. 권력이 어디에서 정당성을 얻는지,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문장이었다.
그 문장이 오래도록 미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세계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읽혀 온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아름다운 문장이 실제로 누구에게 적용되었는가다.
첫 번째 균열은 독립선언의 보편 언어와 실제 정치 주체 사이에 있었다. 독립선언은 모든 인간을 말했지만, 정작 그 독립을 요구한 중심 주체는 백인 남성 정착민 공동체였다. 그들은 자유를 말했으나, 우선 자신들의 자유를 말했다. 권리를 말했으나, 그것은 영국 제국 안에서 자신들이 빼앗겼다고 느낀 권리였다.
그 바깥에 놓인 사람들은 같은 방식으로 자유와 권리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원주민은 동등한 정치 주체라기보다 대륙 팽창의 장애물로 밀려났고, 흑인 노예는 평등의 문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여성 역시 공적 정치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선언의 언어는 보편적이었지만, 그 언어가 열어준 정치적 세계는 보편적이지 않았다.
두 번째 균열은 독립의 목적에 있었다. 미국이 왕권에서 분리되어 공화정으로 나아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화정은 처음부터 독립의 순수한 목적이었다기보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선택된 정치적 형식이었다. 왕정에 맞선 공화정의 승리라는 구도는 후대가 미국 독립을 더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만든 정돈된 설명이었다.
식민지인들이 먼저 원한 것은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을 대표하지 않는 제국 권력이 세금과 무역, 법과 군사의 문제를 결정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 점에서 미국 독립의 실질은 정치체제의 철학적 대결보다 지배관계의 단절이었다. 왕이 있었기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싸운 것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 독립의 한계가 분명해진다. 식민지인들은 자신들이 타자에게 지배받는 상태를 부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원칙이 곧 타자를 지배하지 않겠다는 보편 원리로 확장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 독립은 지배받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지만, 지배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노예제는 그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평등을 말한 나라가 노예제를 즉각 폐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수적인 결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건국 내부의 문제였다. 이후 헌법 질서 역시 노예제와 정면으로 결별하지 못한 채 타협을 선택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언어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자유와 평등은 곧바로 흑인 노예의 자유가 되지 않았고, 원주민의자기결정권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미국의 출발을 민주주의의 순수한 탄생으로 추앙하는 일은 역사보다 신화에 가깝다.
자유의 이름으로 열린 팽창
미국 독립이 순수한 반제국주의로만 읽히기 어려운 이유는 서부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1763년 영국 왕실은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으로 식민지인들이 정착하는 것을 제한했다. 이른바 왕실포고선은 원주민과의 충돌을 관리하려는 조치였다.
그러나 서쪽 땅을 원하던 정착민과 토지 이해관계자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말 안에는, 그 통제를 벗어나 서쪽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 점에서 미국 독립은 대서양 건너 제국 권력과의 결별이면서, 동시에 대륙 내부를 향한 팽창의 출발이기도 했다.
이 장면은 미국 독립을 둘러싼 익숙한 구도를 불편하게 만든다. 흔히 영국은 제국주의의 본산이고, 미국 반란세력은 그 제국에 맞선 자유의 세력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서부 문제만 놓고 보면 그 구도는 부분적으로 뒤집힌다.
영국 왕실의 조치는 원주민을 동등한 정치 주체로 인정한 결과라기보다 제국 통치를 안정시키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안에서는 식민지 정착민들의 서부 팽창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 반대로 미국 반란세력의 자유에는 그 제어를 풀고 원주민의 땅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이 섞여 있었다.
오늘날 캐나다가 된 영국령 북아메리카와 비교하면 미국의 선택은 더 선명해진다. 북부의 영국 식민지들은 미국식 독립전쟁의 길을 가지 않았다. 이것이 훗날의 캐나다를 도덕적으로 우월하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북미 식민지의 미래가 반드시 미국식 반란과 대륙 팽창으로만 이어져야 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 차이는 서부를 대하는 태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영국 제국 안에 남은 북부 식민지들은 팽창의 욕망을 상대적으로 제도 안에서 조절해야 했다. 반면 미국은 독립의 이름으로 그 통제를 끊고, 원주민의 땅을 향한 거친 침탈의 길로 나아갔다. 자유를 얻은 쪽이 언제나 더 선하고, 타자의 삶을 더 온건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서쪽은 빈 땅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이미 원주민의 삶과 정치공동체가 있었다. 미국의 자유는 그들을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들이 갈 수 있는 땅을 원주민의 운명보다 앞세웠다.
자신들이 지배받지 않을 자유를 말한 사람들은 원주민의 땅과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갔다. 미국의 자유는 자신들에게는 해방의 언어였지만, 원주민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질서로 다가왔다. 자유는 그렇게 누구에게는 독립의 언어였고, 누구에게는 추방의 언어였다.
독립 이후의 역사는 이 방향을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루이지애나 매입은 대륙 팽창의 문을 열었고, 플로리다는 약해진 스페인 제국과의 압박과 조약 속에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텍사스 병합과 멕시코 전쟁은 옛 스페인 제국권에 속했던 광대한 땅을 독립국 멕시코로부터 가져오는 과정이었다.
원주민 제거와 서부 개척의 신화는 그 팽창을 자유와 문명의 이름으로 포장했다. 1898년 미서전쟁은 미국의 시선을 대륙 너머 카리브해와 태평양으로 돌려놓았다. 이때 미국은 더 이상 영국 제국에서 벗어난 신생 공화국만이 아니라, 해외 제국의 문턱에 들어선 대륙의 공화국이었다.
그러므로 미국을 반제국주의에서 출발했다가 훗날 제국주의로 변질된 나라로만 볼 수는 없다. 미국은 처음부터 반제국의 언어와 제국의 욕망을 함께 품고 있었다. 미국은 제국에서 독립했지만, 제국의 문법에서는 독립하지 못했다.
트럼프라는 현재형
| ▲ 5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몰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꽃놀이를 지켜보고 있다. |
| ⓒ AFP |
트럼프의 미국은 미국 민주주의의 돌연변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미국이 오래 감추어온 자기 얼굴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트럼프가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며 내세운 '프리덤 250'은 이 오래된 자기 이해를 다시 불러냈다. 그것은 통합의 기념식이 아니라 자신과 지지층을 향한 권력의 연출이었다. 내셔널몰은 공화국의 공동 기억을 나누는 광장이라기보다, 특정한 미국이 자신을 과시하는 무대가 되었다. 자유는 모두를 위한 약속이 아니라, 자신들이 미국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소유물처럼 말해졌다.
그 자유는 곧 배제의 언어가 되었다. 트럼프는 건국의 자유와 미국의 위대함을 말하면서, 느닷없이 공산주의와 급진 좌파, 진보민주당, 이민자 문제를 한데 묶었다. 독립 250주년의 자리에서 왜 공산주의가 호출되어야 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사실의 정확성이 아니라, 자유의 이름으로 다시 내부의 적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때 자유는 서로 다른 시민을 하나의 공화국 안으로 묶는 말이 아니다. 누가 진짜 미국이고, 누가 미국을 위협하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건국의 언어는 공동의 기억을 넓히는 대신, 특정한 정치 세력이 자신을 정당화하고 상대를 몰아내는 도구가 된다.
트럼피즘의 불만은 미국 건국의 오래된 중심을 다시 드러낸다. 처음의 독립은 모든 인간의 자유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백인 남성정착민 공동체가 자신들의 권리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사건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국을 원했고, 자신들의 자유를 먼저 세웠다. 250년 뒤 트럼프가 호명하는 불만 역시 그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 불만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이 주인이라고 믿어온 나라가 더 이상 자신들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백인 남성을 표준적 시민으로 놓고 작동하던 미국이 흔들릴 때, 트럼피즘은 그 흔들림을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미국이 빼앗기는 일로 번역한다.
그래서 그 언어는 모두의 권리를 넓히는 방향이 아니라, 잃어버린 주인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 점에서 미국은 많이 변했지만,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여성과 흑인, 이민자의 권리는 법과 제도 안에서 확장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깊은 정치적 상상력 안에는 여전히 누가 원래의 주인인가를 묻는 오래된 질문이 남아 있다.
트럼프는 그 질문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가장 노골적인 언어로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미국 민주주의 바깥에서 갑자기 출현한 괴물이 아니다. 미국 건국 신화 안에 오래 숨어 있던 배제와 팽창의 논리를 과장된 언어로 꺼내 보이는 인물이다.
대외 언어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트럼프는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 안에서 거론했고, 그 목적을 위해 군사적·경제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캐나다에 대해서도 경제적 압박과 '51번째 주'라는 흡수성 발언이 반복되었다. 미국은 여전히 자유와 안보를 말하지만, 그 말은 타자의 영토와 운명을 미국의 전략권 안에 두려는 언어와 쉽게 결합한다.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의 갑작스러운 일탈이 아니다. 그는 미국 건국 신화 안에 있던 배제와 팽창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말하는 현재형이다.
성지가 아니라 역사
물론 미국에는 언제나 다른 미국이 있었다. 노예제에 맞선 사람들, 시민권 운동을 이끈 사람들, 전쟁과 제국주의에 저항한 사람들, 그리고 오늘의 트럼프주의에 맞서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의 역사는 미국을 단순히 하나의 얼굴로만 읽지 않게 만든다.
미국 민주주의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건국 신화의 순수함 때문이 아니다. 그 신화의 바깥에서, 때로는 그 신화에 맞서 계속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완성된 유산이라기보다, 내부의 저항이 가까스로 밀고 온 미완의 과정이었다.
미국 독립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한 공동체가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선언한 일은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사건을 민주주의의 성지처럼 추앙할 수는 없다.
오늘의 미국 민주주의가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의 뿌리는 트럼프 시대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건국의 첫 장면에도 있었다. 미국을 악마화할 필요는 없지만, 민주주의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것 또한 역사의 왜곡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성지로 부르는 일은, 그 자유 바깥에 오래 서 있었던 사람들을 다시 지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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