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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잡아야 김정은 잡는다... 한러관계 복원이 대북 열쇠

2026.07.06 16:36

[시민기자의 현장 리포트] 한러관계 복원없이 남북관계 호전 쉽지않아
▲ 모스크바 중심부(전면 정부청사) 호텔룸에서 촬영한 모스크바 시내중심부
ⓒ 박종수

착륙 전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모스크바 세레메체보 공항 일대는 목가적이었다. 5년째 전쟁을 치르는 나라같지 않았다. 2022년 2월 러우전쟁 발발 이후 매년 2~3차례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에는 종군기자의 심정으로 러시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국 직전에 모스크바 인근 정유시설이 우크라이나 드론으로 강타 당했기 때문이다. 전선의 범위가 1천km 떨어진 수도권으로 확대된 모양새다.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일행에게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입국절차를 밟을 때 당황하지 마세요. 한국인은 비우호국 국민이기 때문에 장시간 조사를 받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입국을 거절당할 수도 있어요." 사실 지난 4월말 중국 훈춘에서 러시아 연해주 하산 국경을 통과할 때 무려 5시간이나 조사를 받았던 쓴 경험이 있다.

입국심사 창구로 들어선 일행을 뒤에서 조바심으로 지켜봤다. 5분 만에 통과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화물 검색도 없었다. 택시를 잡았다. 바가지요금을 지불해야 했다. 무사히 입국했으니까 그 정도는 보험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따졌다. 택시기사의 변명은 그럴싸했다. 최근 정유시설이 폭격 당해 휘발유 가격이 폭등하고 택시요금도 덩달아 뛰었단다.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도 전쟁 후유증이 만만치 않음을 엿볼 수 있었다. 심지어 해외에서 휘발유를 수입해야 할 처지란다. 모스크바의 밤은 백야 덕분에 밝았다.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한국은 NATO(No Action, Talk Only)?

다음날 6월 25일 공식일정은 오전부터 시작됐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동북아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도중에 루슬란 에델게리에프 푸틴 대통령 보좌관(기후·수자원 특사 겸임)과 개별면담을 가졌다. 그는 한러 양국간 기후온난화 및 수자원 분야의 협력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북극해가 급속히 해빙되는 상황에서 북극항로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있는 한국 정부를 이상적인 협력파트너로 인식한 것 같았다. 비우호국 관계가 비정치 분야의 협력에 장애요인이 될 수 없다는 소신도 밝혔다.

바로 그날에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주러 이석배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한국이 양국간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면서도 EU의 대러 공격에 공개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라"고 촉구했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지적이 뇌리 속을 스쳐갔다. 푸틴은 2019년 4월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을 마친 후 어느 특파원의 남북한-러 3각협력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러시아와 북한은 철도·가스·전력망 연결에 이미 합의했다. 남한만 참여하면 된다"면서 "한국은 NATO(No Action,Talk Only!)아닌가?"라고 비꼬았다.

루덴코 차관의 발언도 푸틴 대통령의 지적과 동일맥락이었다.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노골적인 표현이다. 사실 한러수교 36년간 정상간 합의사항이 이행된 것은 5%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북러 정상간 합의사항 이행율은 3분의1 이상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어느 쪽을 더 신뢰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6월 26일 단독으로 '위성락 안보실장이 5월말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러시아 정부 고위당국자와 비공개 회동을 통해 한러관계 관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한러관계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그날은 주러 대사가 러시아 외교부에 초치 당한 날이다. 한러관계가 더 악화되고 있음을 반증했다.

지난 6월 초 한·EU 정상선언의 북러군사협력 규탄, 북한군 포로2명의 한국 송환 공개 추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방한 등 일련의 외교조치가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불신감을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

북러 결속강화는 위기이자 기회

▲ 루슬란 에델게리에프 대통령비서관 6.25 푸틴 대통령비서관과 촬영
ⓒ 박종수

루덴코 외무차관은 6월 25일 주러 대사에게 '북한 접경에서 계속되는 한국과 미국의 군사활동이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평양에 대한 압박과 제재 정책을 철회하라'하면서 '평화에 대한 의지를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라'고 다그쳤다. 한러 수교 이후 러시아는 외형적으로는 '안북경남'(안보는 북한, 경제는 남한)의 균형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러우전쟁 이후 입장을 바꿨다. 한국이 유엔의 대러 비난성명, 대러제재,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동참하자, 러시아는 즉각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반면, 북한과는 전방위적으로 긴밀하게 공조했다. 마침내 2024년 6월 북러간 군사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근거로 탄약과 무기를 지원하고 북한군 파병을 단행했다. 더 나아가 종전 후 전후복구를 위한 협력 로드맵도 준비 중이다.

지난 6월말 주러 대사를 불러 북한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이례적이고 노골적이었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공개적 지지와 조응으로도 해석된다. 이는 우리 정부의 대북 관계 정상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경제적·군사적 이익을 챙기는 러우전쟁의 전쟁특수를 누리고 있다. 트럼프의 도움도 과거 만큼 절실하지 않다. 게다가 전통적인 중·러 시계추 외교를 통해 푸틴만 붙잡고 있으면 시진핑도 끌어 안을 수 있다는 복선도 깔고있는 듯 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푸틴만 잡으면 김정은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러관계 복원 없이 남북관계 정상화 어려워

러우전쟁은 초기에는 러시아와 미국의 대리전이었다. 그러나 트럼프2기 출범 후 미국이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러시아와 NATO간 대리전 양상으로 변했다. 러시아는 NATO와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한·EU 정상회담에 이어 NATO 정상회의 참석이 러시아를 자극함으로써 한반도의 안보불안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 정부의 공개적인 '대북 옹호, 대남 압박'은 향후 남북관계 정상화에도 적지 않은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지난 7월 1일 "한국이 북러관계 약화를 원한다면, 폴란드를 경유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만큼 한국-우크라이나, 한국-NATO가 밀착할수록 북러관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한러관계는 악화될 것임을 시사한다.

한러 관계는 1990년 수교 이후 최악이다. 금융결재망이 차단되고 직항로가 폐쇄된지 5년째다. 교민 5명이 억류됐다. 현대자동차는 단돈 1만 루블(15만 원)을 받고 철수했다. 대한항공은 1,800억 원의 추징금을 얻어맞고 속수무책이다. 삼성중공업은 쇄빙선 건조 선수금 1조1천억 원 반환 문제로 러시아와 재판 중이다. 대러 경협차관 상환도 중단됐다. 대러제재 1,402개 품목은 그대로 남아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독자 제재 만이라도 해제할 것을 촉구한다. 최근 삼성전자 모스크바 법인이 세금 폭탄을 얻어맞았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푸틴의 최측근 고위관료는 "푸틴 대통령이 수차례 공개적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음에도 한국이 무반응으로 일관한다면, 한러관계 복원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인내의 마지노선이 올해 말까지"라는 크렘린의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국제질서의 다극화 추세에 따라 이젠 이분법적 냉전외교에서 과감히 탈피해 전방위적 실용외교를 펼쳐야 할 때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바늘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외교카드는 많을수록 좋다. 현재로서 가장 유용한 대북카드는 푸틴 러시아인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이루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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