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권 침해 없음’ 복붙 공시 수두룩…금감원, 운용사 주주권 행사 손본다
2026.07.06 12:43
285개 운용사 4만6827건 점검…행사율·반대율 개선에도 ‘형식 공시’ 여전
반대율 8.2% 그쳐…국민연금 반대율 23.1%와 큰 격차
121개사, 안건 절반 이상에 ‘주주권 침해 없음’ 등 판박이 사유 기재
삼성·NH-Amundi·VIP는 모범사례…신한·우리·삼성액티브는 개선 필요
금감원, 7월 CEO 간담회·운용사 설명회 개최…주주권 충실 행사 유도
자본시장 주주권 강화 흐름 속에서도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가 여전히 형식에 머물고 있다는 금융감독원의 점검 결과가 나왔다. 행사율과 반대율은 개선됐지만 상당수 운용사가 안건별 판단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주주권 침해 없음' '영향 미미' 등 판박이 문구로 공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2025년 4월부터 2026년 3월까지 한국거래소에 공시된 국내 공·사모 자산운용사 285곳의 펀드 의결권 행사 내역 4만6827건을 점검한 결과, 의결권 행사율은 91.8%, 반대율은 8.2%로 집계됐다. 전년 행사율 91.6%, 반대율 6.8%보다 소폭 개선된 수치다. 다만 2025년 국민연금의 행사율 99.8%, 반대율 23.1%와 비교하면 운용업계의 주주권 행사는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체 안건 중 찬성은 3만8602건으로 82.4%를 차지했다. 반대는 3848건, 불행사·중립행사는 4377건이었다. 반대 의견이 많이 나온 안건은 임원 보수, 정관 변경, 이사·감사 선임 및 해임 등이었다. 특히 공모운용사의 경우 임원 보수와 정관 변경, 자본구조 관련 안건에서 반대표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개정 상법 취지에 반하는 이사 임기 하한선 삭제, 이사 책임 감경 등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정관 변경 안건에 반대한 사례도 확인됐다.
문제는 의결권 행사 근거의 충실성이다. 금감원에 의하면 285개사 중 121개사(42.4%)가 의결권 안건의 절반 이상을 형식적인 사유로 기재했다. 서로 다른 안건임에도 '펀드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적음', '적정한 것으로 판단돼 찬성', '주주권리 침해 우려 없음' 등 동일한 문구를 반복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일부 사모운용사는 수백 건의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결격사유 및 특이사항이 없으므로 찬성'이라는 식으로 일괄 기재했다.
공시 인프라도 허술했다. 285개사 중 59개사는 법규 나열 수준의 기본정책만 공시하고 안건별 행사근거가 담긴 세부지침을 공개하지 않았다. 51개사는 2023년 10월 개정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반영하지 않았다. 공시서식 오류도 적지 않았다. 87개사는 의안명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았고, 68개사는 의안 유형을, 134개사는 대상 법인과의 관계를 기재하지 않았다. 미흡 사례는 주로 일반사모운용사에서 집중됐다.
공모운용사 67곳을 대상으로 한 주주권 행사 체계 점검에서도 규모별 격차가 뚜렷했다. 전담조직을 별도로 운영하는 곳은 18개사에 그쳤고 49개사는 운용·리서치 부서나 백오피스가 관련 업무를 겸임했다. 주요 안건을 심의하는 별도 의사결정기구를 둔 곳은 40개사였으며 의결권 행사 실적을 KPI에 반영한 곳은 20개사에 불과했다.
금감원은 삼성자산운용, NH-Amundi자산운용, VIP자산운용을 모범사례로 꼽았다. 삼성은 전담조직 신설과 KPI 운영, 의사결정기구 강화를 통해 주주권 행사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NH-Amundi는 의결권행사위원회와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이원화해 운영하고 있다. VIP는 소형사임에도 운용규모 대비 전담인력이 많고 주주서한·경영진 면담 등 주주활동을 적극 수행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신한자산운용, 우리자산운용,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은 개선이 필요한 사례로 지목됐다. 신한은 이사 선임 찬성 사유를 일괄 기재했고, 점검기간 중 별도 의사결정기구와 KPI 체계가 미흡했다. 우리는 의결권 찬성률이 91.5%로 높은 가운데 중복기재율이 73.4%에 달해 대형 공모운용사 중 가장 높았다. 삼성액티브 역시 중복기재율이 77.3%로 공시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은 오는 7월 13일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를 열고 신인의무 이행 강화와 충실한 주주권 행사 필요성을 최고경영진과 공유할 계획이다. 이어 7~8월 공·사모운용사 대상 설명회를 통해 점검기준과 모범·미흡사례를 안내한다. 상법 개정과 자사주 제도 개선 등 주주가치 제고 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가 단순한 '찬성 공시'를 넘어 실질적인 수탁자 책임으로 작동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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