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시간 전
학교서 쫓겨나고 헌법소원까지... 청소년 언론 '토끼풀' 생존기
2026.07.06 09:51
| ▲ 5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도서출판 풀빛이 개최한 <공부나 하라고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
| ⓒ 공익저널 차종관 |
"시민 앞에 뭔가 자꾸 수식어를 붙이는데, 우리도 그냥 시민이에요. 40대 직장인한테 40대 장년 시민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우리를 그냥 시민이라고 해주세요."
5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도서출판 풀빛이 개최한 <공부나 하라고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해당 서적은 청소년 언론 <토끼풀>의 기사 모음집이자 기자들의 생생한 취재 뒷이야기를 엮었다. 이날 행사에는 토끼풀을 이끄는 문성호 편집장을 비롯해 조준수 취재부장, 이유찬 사회1팀장, 이하진 문화팀장이 패널로 참석해 독자들과 만났다.
학교서 쫓겨나 독립언론 됐다… 우편료 때문에 '헌법소원'
토끼풀은 2024년 4월 서울 은평구 연신중학교에서 자율 동아리로 출발했다. 하지만 창간 직후부터 길은 순탄치 않았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다룬 창간호를 대자보 형태로 학교 중앙현관에 걸었다가 교장의 지시로 구석으로 쫓겨나야 했다. 더 큰 위기는 외부 학교에서 벌어졌다. 신문 배포를 허락했던 한 학교의 교장이 배포 직후 신문을 전량 압수하고 폐기하는 이른바 '언론 탄압'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끝내 학교가 답변을 피하자, 이들은 항의의 뜻을 담아 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했고 이것이 공론화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언론 탄압 이슈 이후 학교 측으로부터 다음 해 자율 동아리 등록을 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조준수 취재부장은 "스스로 독립 언론을 선택했다기보다 학교에서 쫓겨난 형태"라며 "이후 은평구 청소년 센터에 소속되려 했으나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안 받아줘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내몰렸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미성년자 언론 등록 금지를 규정한 신문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또다시 큰 화제를 모았다. 조 부장은 "언론으로 인정받으면 우편료 절반을 감면받는데, 이를 받지 못해 지금까지 수백만 원을 손해 봤다"고 말했다. 문성호 편집장 또한 "2년 치 우편료 절감액이 변호사 수임료보다 커서 소송을 하는 게 낫다"며 돈 문제가 헌법소원의 계기였음을 전했다.
현재 토끼풀은 관할 구청으로부터 법 위반을 이유로 최대 수천만 원에 달할 수 있는 과태료 부과 압박까지 받고 있다. 문 편집장은 "과태료를 진짜 물게 되면 모금 운동을 해야 할 판"이라며 척박한 독립 언론의 위기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뮤지컬 공짜로 보려 입사했어요"
| ▲ 5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도서출판 풀빛이 개최한 <공부나 하라고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순서대로 <토끼풀> 소속의 조준수 취재부장, 이유찬 사회1팀장, 문성호 편집장, 이하진 문화팀장. |
| ⓒ 공익저널 차종관 |
이날 행사에서는 10대 학생으로서의 현실적인 고충도 쏟아졌다. 올해 2월 입사한 이하진 문화팀장은 토끼풀 활동 계기를 묻는 질문에 "학생 용돈으로 뮤지컬 티켓값이 부담되는데, 기사를 쓰면 토끼풀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이라며 솔직한 동기를 밝혔다. 문 편집장은 "최근 교보문고에서 8만 원어치 책을 사는데 지원해 줬다"며 넉넉해진 재정을 과시했다.
10대 기자들에게 가장 큰 벽은 학업과의 병행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문 편집장은 "아침 8시에 등교하는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 바빠 요즘 약간 권태기를 겪고 있다"며 벅찬 상황을 고백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토끼풀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겹치는 4월과 6월에는 아예 신문 발행을 쉰다.
이들의 치열한 언론 활동을 바라보는 주변 또래들의 시선도 엇갈린다. 특목고에 재학 중인 이하진 문화팀장은 "사회 문제에 관심 많은 친구들로부터 든든한 응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일반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이유찬 사회1팀장은 "중학생들이 원래 공부에만 관심이 많아 반응이 미지근하다"며 "심지어 왜 그런 좌파 언론 활동을 하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생존을 위한 뉴미디어 돌파구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이들의 취재력만큼은 기성 언론 못지않다. 특히 이유찬 팀장은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투입된 이민단속국(ICE) 요원들을 추적하는 현지 청소년 '벤'을 직접 섭외해 영어로 2시간 넘게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팀장은 "요원 3000명 투입이라는 단편적 사실만 전달하는 기성 기사와 달리, 하루아침에 가족이 납치당하는 인간적인 맥락과 감정을 담아내려 애썼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충남 홍성군 홍동면을 1박 2일간 직접 방문해 활발한 주민 자치 현장을 취재한 기사도 언급됐다.
하지만 정작 텍스트 기사를 읽지 않는 또래 청소년들의 무관심은 토끼풀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토끼풀은 최근 5~10분 분량의 자체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다. 문 편집장은 "쇼츠나 릴스 같이 얕은 콘텐츠 대신 글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높인 영상으로, 신문 발행이 뜸한 시험 기간의 공백을 채우려 한다"고 말했다.
"배재고? 엄벌주의보단 사회적 반성이 먼저"
청소년 당사자로서 바라보는 교육 및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학생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제정된 '교내 스마트폰 압수법'에 대해 문 편집장은 "여당과 야당 의원들의 발의안을 짬뽕해 더 나쁜 법을 만들었다"며 "핸드폰을 걷어야 한다면 학생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다음 주부터 걷겠다고 통보하는 식이다. 학교가 비민주적인 것은 결국 법안을 졸속 통과시킨 국회와 교육부 등 윗선이 비민주적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논란이 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 사태에 대해 조준수 부장은 "학폭이든 범죄든 모든 문제는 결핍에서 시작된다. 학원과 내신 경쟁에 치여 여가 시간과 자유를 빼앗기다 보니 관계의 결핍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편집장 또한 혐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중학교 3년간의 근현대사 교육 공백'에서 찾았다. 그는 "학생들을 당장 6개월 출전 정지 등 엄벌에 처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와 교육계가 이들이 왜 그런 무지한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돌아보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과정이 먼저 있었어야 했다"고 짚었다. 나아가 정치권이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한 정책 경쟁에 뛰어들게 만들려면 '16세 선거권 하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난에 지친 자기검열
| ▲ 5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도서출판 풀빛이 개최한 <공부나 하라고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패널들이 관객과의 질의응답에 응하는 모습. |
| ⓒ 공익저널 차종관 |
서슴없는 비판을 행하는 것 같지만, 청소년 언론인들은 외부의 압박에 짓눌리기도 한다. 진보·보수 양진영을 불문하고 쏟아지는 악플과 비난에 지친 것이다. 평소 거침없는 발언을 하던 문 편집장조차 "비난과 욕설에 피로감을 느껴 배재고 야구부 사태와 관련해 개인 SNS에 쓰려던 글을 지우며 자기검열을 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이들은 기성 세대나 특정 정치 진영이 설정해 놓은 '기특한 청소년'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거부했다. 진보 진영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쓰기를 바라는 일부 독자들의 시선에 대해 문 편집장은 "우리 편인데 기특한 청소년이어야지, 남의 편인데 기특한 청소년인 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며 "입시 비리를 일으키신 분들 때문에 지금 청소년 활동이 대입에도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 진영 눈치만 볼 수는 없다"고 일갈했다. 비록 비난을 받더라도 독자와 청소년의 편에서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독립 언론으로서의 결기다.
기성언론 등 어른들이 '교복 입은 시민' 등의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보였다. 문 편집장은 "40대 직장인에게 굳이 '40대 장년 시민'이라고 부르지 않듯, '교복을 입었어도 특별히 시민으로 인정해 줄게'라는 식의 수식어는 거북하다"며 "청소년도 엄연한 사회 구성원이고 온전한 시민이니 그냥 '시민'으로 불러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표는 대통령 인터뷰... "수업 겹치면 체험학습 내고 가야죠"
토끼풀의 올해 목표는 원대하다. 문 편집장은 올해 목표로 당차게 '대통령 인터뷰'를 꼽았다. 그는 "학교 선생님들이 안 좋아하실 수도 있겠지만, '청와대 견학을 통한 민주시민 교육 체험 및 진로 탐색' 명목으로 체험학습 신청서 내고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유찬 팀장은 "앞으로 최소 5년은 더 버텨서 청소년 언론으로서 굳건한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공익저널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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