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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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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어깨 뿐"구순 앞둔 시인이 기록한 역사

2026.07.06 10:11

[서평] 최금녀 시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최금녀 시인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했다. "11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태어난 땅을 버리고/금지된 낙원으로 주소를 옮겼"던 시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명과 같은 제목으로 시집을 내면서 "감히 제 시집 제목으로 삼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인은 우리나라 나이로 구순을 앞두고 있다.

기호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기호를 통해 이뤄진다. 기호는 상징어 기표와 기표가 상징하는 뜻인 기의로 이뤄진다. 노시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표현은 문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와 애틋한 잔물결에 배인 나지막한 흔적에 끼인 아픔을 의미하는 기의들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분단 이전과 분단 이후의 삶을 세세하게 서사로 노래한 시인의 이번 시집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시인은 첫 장 '시인의 말'에서 "춥고 아파 눈물이 났지만/때때로 아름답기도 했던 그 시간들을/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기에 시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2022년에 펴낸 <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의 작품 일부를 이번 새 작품들과 구성해 이녁의 이야기를 통사적으로 구성, 전개했다. 두 시집은 그렇게 스토리가 잘게 잘게 서로 연결돼 있다.

 책표지
ⓒ 한국문연

이곳에서 명사십리까지는 몇 킬로나 될까?/망원경을 눈에 바짝 대고/강 건너 북한 땅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본다//그리운 고향 영흥/장백산 아래/동해 바다를 가슴에 품은 곳/지금은 정치 수용소가 들어선 곳 - '압록강' 중에서

최금녀 시인은 함경남도 영흥군 출생이다. 1962년 <자유문학>에 소설을 통해 등단했고 1998년 <문예운동>을 통해 시 창작을 시작해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길 위에 시간을 묻다> 등 9권의 시집을 냈다. 일어판, 영어판 시집도 냈다. <대한일보> 기자 출신이기도 한 그는 한국시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공초문학상, 펜문학상, 현대시인상, 여성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은 부모님과 탈북 후 전쟁 때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남북에서 반반의 유년 시절을 보낸, 아주 특이한 성장 과정을 경험한 그 자체가 분단 역사이고 분단 민족의 아픔이다. 그 생채기들이 눈물겹도록 시로 여울지고 있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뛰었다/책보를 풀어놓고/신발도 벗어놓고/우리들은 뛰었다//서로 먼저 선로 가까이에 붙었다/소련군을 태운 기차가 지나가면서/별사탕 봉지를 던져주었다 - '로스께의 별사탕' 중에서

분단 민족의 남북의 아이들 풍경이 가슴 아리고 애달프게 파도칠 뿐이다.

처녀 때 남자와 말도 걸어보지 못한 엄마/공민증 챙기고/안내인에게 줄 돈 준비했다/강을 넘다가 죽더라도 아버지를 찾아가야 한다고//엄마 아니었으면/나는 지금 북쪽에서 반동분자의 딸로/아버지를 그리워하며/한평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공민증' 중에서

그렇게 '반동분자' 가족들은 남쪽으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쟁통에 남쪽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아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부산 1950'
제목의 작품이다.

1. 럭키 스트라이크
어머니는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담배 럭키 스트라이크를 영도 다리 아래에서 팔았다. 팔말, 카멜, 윈스턴, 막 떠오르는 태양 같아서 빨간 동그라미 럭키 스트라이크는 줄을 서서 받아야 했다. 바로 내 앞에서 줄이 끊어졌다고 하면 엄마는 울었다. 우는 엄마가 싫어서 새벽 5시에 줄을 섰다. 영도 섬 다리에 어둠이 걸리고 피난민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일 때 누구 누구인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것을 팔았다.

2. 코크스
석탄을 태우면 코크스가 남았다. 코크스로 밥을 지어 먹으며 코크스가 너무 좋아서 코크스나 되었으면 했다. 영도 섬 한국도자기 공장 마당에는 몇천 도의 온도로 도자기를 구워내고 버린 석탄재가 산더미 같았다. 피난민들은 두엄을 헤집으며 벌레를 잡아먹던 시골 닭처럼 마구 재를 헤집고 코크스를 주웠다. 머리카락에도 얼굴에도 재가 붙었다. 트럭이 와서 새로 붓고 간 재는 손도 댈 수 없는 불덩이였다. 가마에서 나온 불덩이 속을 손이 드나들었다. 말갛고 고운 물방울이 생겼다.

새벽 5시에 줄을 섰고, 영도 다리에 어둠이 내려 피난민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누가 누구인지 모를, 그 어둠이 마음도 마을도 바다도, 다 삼켜버릴 시간까지 살기를 위해 담배를 팔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에서는 살기 위해 조직적인 쌀 도둑질을 했던 이야기가 등장한다.

"시간의 창고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어린 경비병. 우리는 그 틈을 이용했다. 제일 나이 어린 남자애가 잭나이프를 들고 잽싸게 창고 안으로 들어가 마대 자루를 푹 찔렀다. 아, 폭포처럼 쏟아지는 희디흰 쌀."

그런 영도. 부산에는 40개의 섬이 있고 36개가 무인도다. 가장 큰 섬이 영도. 영도로 가는 길목은 여전히 애잔한 '아리랑' 가락이 흐르고 있다. 6.25 때 최후 보루 낙동강 전선의 애환이 환태평양으로 물결치는 그곳이 부산 영도이다. 영도 아리랑고개에 '영도아리랑' 가락이 흐른다. 85번 버스 종점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이 고개는 가난했던 시절에 그렇게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다. 영도 고갯길은 그런 영도 아낙네들의 고달픔과 애환이 숨 가쁘게 이어진 길이다.

당시 지독한 가난과 싸우던 아낙들은 영도 해안으로 몰려와 살았다. 문제는 식량이었는데 그나마 바다에 나가면 해산물을 잡아 연명할 수 있었다. 해안가 아낙들은 말린 고기며 조개, 해초류 등을 머리에 이고 범일동 부산진시장에 가서 해산물을 팔아 식량과 생활 필수품을 구했다.

영도(影島) 옛 이름은 절영도(絶影島).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자를 써서 부른 이름이다. 신라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말을 방목했던 곳. 국마장(國馬場)이 있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영도 등대가 대한해협 쪽을 비추고 있다.

등대가 있는 태종대는 깎아 세운 듯 절벽과 기암괴석에 부서지는 파도, 드넓은 바다의 어선, 갈매기들이 그때 그 역사의 뒤안길을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그런 의미를 기억하며 섬문화 연구소는 영도 등대 100주년 기념 섬사랑시인학교 영도등대 캠프를 이성부, 송수권 등 여러 시인들과 열기도 했다.

시인은 다시 영도에서 자갈치시장으로 삶터를 옮겼다.

엄마는 자갈치 시장에 좌판을 깔았다/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겨내고/알맹이를 맷돌에 갈아서 지지미를 부쳐 팔았다/물을 조달해야 할 사람이 바로 나였다//지게 양쪽으로 초롱 두 개 달고/뒤뚱거릴 때마다/어깨는 찢어지고/새살이 돋아나고/굳은살이 박였다//내 어깨를 아랑곳하지 않았던 엄마/나는 얼마든지 중얼거린다/내 인생에서 전쟁 말고 가난 말고/남은 것은 어깨 뿐이라고 - '물지게' 중에서

그렇게 북에서 남으로, 영도에서 자갈치시장으로. 소녀의 중얼거림에 전쟁 상흔과 가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은 것은 어깨 뿐"일 수밖에 없다는 소녀의 고백이, 그런 시대가, 그런 민족의 아픔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소녀는 홀로 무럭무럭 야무지게 자랐다. 대한민국은 마침내, 끝끝내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났고 다시 맞은 분단 철조망 체제에서도 당당하게 세계 10대 선진국이 되었다. 아직 철조망은 걷어내지 못했지만 세계로 가는 경계는 허물었다. 우리 힘으로, 그만큼 경쟁력을 구가한 민족이다. 그런데 가슴 한쪽에는 그 무엇이 이토록 나를 휑하게 하는가. 그물코만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 같은가.

젊은 애들이 골목에 모여드는 주말/홍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했다/집집마다 담을 허물고/창문을 부수고 마당을 뭉갰다/간판을 걸었다//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뭉갤 것이 없는 나는/멀리서 막 도착한 여행객처럼/처음 보는 풍경처럼/그들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 '갈 곳이 없다' 중에서

오직 자식 농사에 목숨 걸고 달려온 분단 세대, 베이붐 세대들에게는 지금 이 공간은 나를 여행객처럼 남겨두고 있다. 마치 '거울보기 인생'처럼 저만치 나를 놔두고 바라보는 일이 하루의 초상이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치유하는 시이고 나를 성찰 하는 시간이다. 그럼 아픔을 거울 삼아 스스로 위로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생살이도 지겨울 때가 있다. 거기에 탈북자이고 기성세대다. 이 공간이 외롭다. 낯설다. 먹먹하다. 이 시는 그렇게 하루를 사는 여러 사람들을 웅변해주고 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한동안 침묵하게 하는 지점이다.

시인은 이처럼 시편 곳곳에서 행간을 타고 흐르는 그 느낌의 밑바닥에 강한 톤의 기표를 사용하기도 하고 진실한 눈빛으로 사물을 은유 하는 기호로 웅변 하기도 한다. 언론인 출신이라는 비판적 기질도 한몫 했으리라고 본다. 압축과 함축으로 침묵을 말하고 그 침묵이 적멸 하기도 한다. 지난한 성찰의 저력이다. 본래 세상에는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것만은 분명하다. 내 마음을 명료하게 표현할 한 줄 문장. 그래도 가야겠다. 그래도 푸르게 살아야겠다. 저 산 저 바다 저 물결처럼 푸르고 싱싱하게 당당하게.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 그런 속울음 혹은 극기의 여정이 짧고 단단한 심상으로 표현한 작품이 '고랭지'와 '화석'이다.

"푸른 반창고를 붙인 듯 푸른 배추들이 파릇파릇 자란다" – '고랭지' 전문

"돌을 안고 돌 속에 처박혔다. 돌의 심장을 파냈다. 돌의 심장에 알을 낳았다." - '화석' 전문

시인의 옹골찬 인생은

"영흥에서 영등포로, 영등포에서 영도 섬으로, 영도 섬에서 철새처럼 서울로 이주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중에서

그리고 개발붐 속에서 또 한 번의 전쟁 같은 삶과 직면했다. '서울의 게르', '복개천'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자.

"게르가 허물어지고 있어요 쫓겨나는 유목민들이지요. 재개발을 반대해요 (중략) 저 엄숙하고 친절한 것들, 내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는 것들, 살아 숨 쉬는 것조차 계량하는 것들(중략) 사막을 반대해요/재개발을 반대해요" - '서울의 게르' 중에서

"사람들이 복개천을 떠났다/호박을 심던 할아버지도 떠났다/호박을 따던 아들도 떠났다//복개천은 모르는 사람들뿐이고/공원은 고무로 바닥을 깔고/고무바닥을 가로질러서//나는 이사 가지 않았다" - '복개천' 중에서

그 풍진 세상의 인생살이. 그래도 쉬이 울지는 않았다.

울 때 울 줄 아는 자들이/떠날 때는 울지 않았다//주고받은 문자들이/몇 장 울음으로 남았다/울음들이 물기 없이 바스라지고 있다/달력은 울음보다 가볍게 넘어간다- '아무 때나 울었다' 중에서

정말이지, 없는 자들에게는 하루는 빨리 간다. 월세 내는 날, 세금 내는 날 그리고 철거 시간까지 번개처럼 간다.

"이 골목은/있었던 것들이/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것들이 많다/꼬마 백화점/전파사/철물점/금은방/이불집/방앗간//이삼 년에 한 번씩 온통 꽃밭이던/도배 장판집도 사라졌다//나는/승용차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이 길이/본래 물이었다는 것을 아는/마지막 원주민이다" - '늙은 원주민' 중에서

그런 마지막 원주민이 가고 싶은 기항지는 어디일까? 바로 고향이다. 최금녀 시인은 시편마다 북한에서 유년 시절, 그때 그 시절 가족애, 고향 지명들을 호명하며 북녘 하늘을 바라본다. 특히 망향 제단에서의 그리움은 참으로 짙고 깊다. 그만큼 온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혈맥이 흐른다.

시인은 그 그리움으로 작품의 풍경을 그렸고 치유하는 시를 썼다. 시를 쓰면 쓸수록 다시 그리움은 깊이 스며들고 명상처럼 젖어 들었다. 그렇게 눈물 마를 날이 없던 속울음을 누르고 또 누르면서, 때로는 스스로 극복하는 시를 썼고 눈물 다독이는 가락을 읊조렸다. 그렇게 시는 화석이 되고 시인의 마음을 인두질하고 공글리는 도구이자 여정이었다. 오직 그날을 위해서 말이다.

나,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발 사이로 마중을 나오는 팻말, 파주 도라산역......

도라산역은 내 마음속 맞춤 가락
'돌아가는 고향역'의 은어

들꽃이 필 때, 흰 눈이 날릴 때, 망향 제단에 절 올리고
렌즈의 각도를 맞추고, 그 너머를 보고
기적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 정거장 지나면…… 고흥이고, 사리원이고, 죽청이다
귀가 닳았다 애가 닳았다
세상 모르게 잠이 든
도라산 기차역을 지날 때마다
함경남도 영흥군 순령면 흥남리
나 당장이라도
운전석을 차고 앉아
북녘으로 머리를 돌려
200, 300킬로로
냅다 달려가고 싶다
자유로야
파주야
도로산역아

나, 돌아갈 준비가 다 되어 있다.

- '도라산역' 전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섬투데이(www.sumtoday.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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