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국부의 대박, 정권의 운명
2026.07.06 00:22
대한민국의 부가 의미 있게 증가한 변곡점은 다섯 차례였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1986~89년의 3저(저유가·저달러·저금리) 호황, 1994~95년 1차 반도체 호황, 2004~2007년 중국 특수, 2017~2018년의 반도체 수퍼사이클이었다(KDI 『한국경제 60년사』, 한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KIET 보고서 등). 생성형 AI 시대의 요즘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여섯 번째다. 굳이 나라 전반에 미친 영향력의 순위를 매기자면 역시 1970년대 중화학 육성이 으뜸으로 꼽힌다. 산업 구조를 확 바꿔, 대기업·제조업을 성장시켜, 우리 경제의 골간을 만든 ‘기적’이었다. 1986~89년은 3저의 대외 환경을 활용하면서 연 10~12% 고성장을 이뤘다. 사회 전반 온기의 체감은 가장 높았던 두 번째 기회였다. 취업·임금 확대가 컬러TV·자동차·아파트로 이어진 삶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드러났다. 1994~95년의 1차 반도체 호황에 이어, 스마트폰·데이터센터가 급증한 2017~2018년, D램·낸드 가격 폭등의 수퍼사이클은 반도체 수출을 60% 폭증시킨 도약의 지렛대였다.
반도체 착수 첫해인 1984년, 200억원 적자에도 미래를 밀어붙인 삼성 선대 회장들(이병철·이건희)의 혜안 덕이었음은 물론이다.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이웃 중국 시장의 개방에 폭증한 조선·철강 등의 대중 수출은 2004~2007년의 국고를 보태 주었다.
국부 대박과 정치 권력의 운명은 흥미롭다. 중공업 육성의 박정희, 3저 호황의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모두 정치적 말로는 불행했다. 1차 반도체 호황을 맞은 김영삼 대통령 역시 오히려 IMF 환난을 맞고 말았다. 중국 특수의 노무현 대통령, 반도체 수퍼사이클 행운의 문재인 대통령까지 세 정권 모두 야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재임기의 경제적 행운은 권력에 보너스 점수는 될지언정 결코 그 운명을 보장하진 못했다.
정권의 생색에도 불구, 경제 성장은 결국 기업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 의한 성과란 걸 이제 국민은 분명히 깨닫게 됐다. 정권이 축배만 즐기다가는 오히려 호황을 당연시 여기고 기대치만 상승해 하강 시 정권의 책임만 레버리지로 커지는 독배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 경제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 유지, 국민통합 노력, 권력의 절제와 부패 근절 같은 정치사회적 정당성이 함께 정권의 명운을 결정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었다.
무엇보다 늘어난 나랏돈은 정권이나 진영의 이득보다는 지속적인 미래 성장에 쓰여야만 한다는 걸 역사는 일러준다. 3저 호황의 노태우 정부는 정당성 보완을 위해 임금·복지 확대 요구에 순응, 곳간을 열었다. 1994~95년의 1차 반도체 호황에도 불구, 김영삼 정부는 규모의 성장에 의한 ‘OECD 가입’ 치적에 올인했다. 대기업의 문어발 사업을 용인하고, ‘세계화’의 구호 아래 금융시장 개방을 서둘렀다. 미래 먹거리는 실종됐고, 외화 차입만 급증하자 환란을 맞았다. 2년 차 중국 특수를 맞은 노무현 정권 역시 노조 눈치에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생산성 향상을 이끌지 못했다. 반도체 수퍼사이클 속의 문재인 정부는 신기술의 요구였던 규제 개혁, 노동 유연성 대신 엉뚱한 부동산 때려잡기, 최저임금에 올인하다 호기를 놓쳤다.
‘정권의 이해’와 ‘이념’에 오염된 순간 경제는 생명력을 잃는다.
삼성전자·하이닉스의 광주·서남·충청권 투자에도 이 성찰과 교훈이 적용돼야 한다. 울산·구미공단, 포항제철(박정희), 공공기관 이전(노무현) 등 산업·행정 거점의 국토 분산은 정부의 일정 부분 조정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정부는 전력·용수·연구 인프라 등 산업 기반의 지원과, 주 52시간의 유연 적용 등 규제 철폐에 집중해야 옳다. 투자의 규모·단계 등 디테일과 기술적 결정은 모두 기업의 몫이어야 한다. TSMC가 들어선 대만의 신주(新竹)과학단지가 모델이다.
호황의 온기가 전방위로 퍼지기 어려운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사회적 약자 지원과 청년 취업 활성화에 추가 세수 일부를 쓰는 걸 비판할 수는 없겠다. 그 나머지는 하지만 모두 미래로 가야 한다. ‘포스트 반도체’의 바이오·퀀텀(양자)·로봇·자율주행·광통신·핵발전, 그리고 AI와의 융합 등 미래 산업의 마중물로 한껏 부어주길 고대한다. 내달의 내년 예산안 편성에 필요한 키워드는 단 세 개다. ‘미래’ ‘후대’ 그리고 ‘성장의 지속’이다. 이재명 정부의 명운과 역사적 평가가 거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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