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샤라포바’ 윔블던을 홀리다
2026.07.06 00:43
‘제2의 마리아 샤라포바’를 꿈꾸던 필리핀 신성이 윔블던 무대에서 지난해 챔피언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 32위 알렉산드라 이알라(21·필리핀)는 4일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에서 열린 2026 윔블던 테니스 여자 단식 3회전에서 세계 3위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를 2대0(7-6<11-9>, 6-2)으로 완파하고 16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이었다. 메이저 대회 본선 승리가 이번 대회 전까지 단 한 차례뿐이었던 이알라는 메이저 통산 6회 우승자이자 지난해 윔블던을 제패한 시비옹테크를 상대로 치열한 타이브레이크 끝에 1세트를 따냈다. 2세트에서는 175㎝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포핸드를 앞세워 네 게임을 내리 따내며 경기를 압도했다. 승리를 확정하는 샷이 코트에 꽂히자 그는 감격에 겨운 듯 잔디 위에 쓰러져 눈물을 흘렸다. 불과 3년 전 한 행사에서 시비옹테크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기뻐했던 소녀가 이제는 메이저 무대에서 그를 꺾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알라는 필리핀 선수 최초로 메이저 대회 16강에 오르는 새 역사도 썼다.
테니스 불모지인 필리핀에서 어떻게 윔블던을 뒤흔든 샛별이 탄생했을까. 국가대표 수영 선수였던 어머니 덕분에 운동 신경을 타고난 이알라는 테니스 애호가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네 살 때 라켓을 처음 잡았다. 이알라가 살던 필리핀 마닐라 인근 케손시티에는 하드코트가 단 하나뿐이었는데 할아버지는 매번 일찍 코트로 나가 훈련 시간을 확보했고 직접 코치를 자처해 손녀를 가르쳤다. 이알라는 “할아버지는 ‘해외에서 경쟁하려면 하드코트에서 배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며 “제 모든 근본은 할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유소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알라는 열세 살에 라파엘 나달 아카데미에 들어가며 스페인 마요르카로 건너갔다. 그는 방에 우상이던 샤라포바의 사진을 걸어두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달래며 훈련에 매달렸다. 이알라는 “나달의 훈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나달과 같은 왼손잡이인 그는 2022년 US 오픈 주니어 단식 우승을 차지하며 특급 유망주로 떠올랐고,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식과 혼합 복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성인 무대에서도 지난해 마이애미 오픈 4강과 이스트본 인터내셔널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테니스계에서는 이미 ‘이알라 현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뛰어난 실력은 물론 친근한 이미지와 밝은 성격까지 더해져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이키가 전용 모자와 유니폼을 제작해 줄 정도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그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팬이 경기장을 메우고, 관중석에는 필리핀 국기가 물결친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이알라를 ’2026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에 선정했다. 2019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코트에 나선다는 이알라는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매일 방과 후 할아버지와 함께 훈련하러 다니던 내게는 정말 감격스러운 승리”라며 “1억2000만 필리핀 국민과 가족에게 이 승리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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