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셰프들 줄줄이 곰탕집 오픈…‘한 그릇’에 한식의 미래 담았다[미담:味談]
2026.07.05 23:31
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 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한국의 최정상급 셰프들이 잇따라 곰탕집을 열었다. 고급 문화의 대명사인 파인다이닝 셰프들과 곰탕의 만남은 와인과 막걸리의 조합만큼이나 의외다. 그들은 곰탕이야말로 시간을 응축한 한식의 정수이자, 한식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셰프들이 선보이는 곰탕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곰탕에 빠진 이유도 각기 다르다. 어떤 이는 한식의 세계화를 꿈꾸고, 또 다른 이는 미식의 대중화를 이야기한다. 또 어떤 이는 한식의 재발견을 꿈꾼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은 곰탕이 지닌 한국적 가치다.
곰탕에는 절제와 인고라는 한국의 미학이 담겨 있다. 얼핏 보면 소고기를 넣고 끓이는 단순한 음식 같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다. 재료는 소고기와 물, 소금 정도로 단출하다. 그만큼 맛을 감출 장치도 없다. 좋은 곰탕은 오랜 시간 약한 불에서 육수를 우려내며 재료의 풍미를 끌어내야 한다. 단순하기에 더 어렵고, 소박하기에 더 정직한 음식이다.
임정식 셰프…‘한식의 세계화’
‘미쉐린 5스타 셰프’로 불리는 임정식 셰프는 뉴욕 정식당으로 미쉐린 3스타, 서울 정식당으로 미쉐린 2스타를 획득한 한국 미식계의 보물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요리로 ‘뉴코리안(New Korea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한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임정식 셰프가 2024년 문을 연 ‘곰탕랩(Lab·연구실)’은 그에게 단순한 식당이 아니다. 그임 셰프는 곰탕이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 차세대 스타푸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곰탕랩이라는 이름에 ‘연구실(Lab)’을 붙인 것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새로운 곰탕을 끊임없이 연구하겠다는 의지를 담기 위해서다.
“한식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스타셰프가 아닌, 스타푸드가 나와야 합니다. 저는 곰탕이 스타푸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쌀국수나 이태리의 피자, 일본의 스시 등 스타푸드의 등장은 그 나라 음식문화의 대중화를 여는 시발점이 됐습니다. 한국 역시 스타푸드가 등장해 한식의 대중화를 견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곰탕랩의 대표 메뉴는 ‘콜라겐 사골곰탕’이다. 콜라겐 사골곰탕을 한입 먹는 순간 입술이 ‘쩍’ 하고 붙을 먼큼 녹진한 국물맛에 놀라게 된다. 사골과 스지, 우족, 꼬리 등을 10시간 이상 고아 만든 이 진득한 육수가 콜라겐 사골곰탕의 특징이다. 이외에도 맑은 고기곰탕, 양곰탕, 조개곰탕 등 다양한 육수로 곰탕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임정식 셰프는 곰탕의 세계화에 맞춰, 와인과 페어링을 제안한다. 부르고뉴산 피노누아 와인처럼 적당한 산미를 지닌 와인은 진한 곰탕 국물과 의외의 조화를 이룬다. 익숙한 와인을 매개로 곰탕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다. 곰탕랩은 이러한 차별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에 이름을 올렸다.
김병진 셰프…‘미식의 생활화’
국내 최초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했던 가온 역시 최근 예술의전당 인근에 곰탕집 ‘가온가옥’을 열었다. 가온을 미쉐린 3스타에 올린 주인공인 김병진 셰프는 가온가옥이 곰탕을 선택한 이유로 ‘미식의 일상화’를 꼽았다. 최고 수준의 파인다이닝 기술을 담되 가격은 일반 곰탕집 수준으로 낮췄다. 누구나 좋은 음식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곰탕은 화려한 음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곰탕은 좋은 재료와 충분한 시간, 꾸준한 정성이 없으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육수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는 음식이기에 가장 정직한 한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온가옥의 곰탕은 만드는 과정부터 남다르다. 한우 사골과 닭을 36시간 우려낸 뽀얀 국물에 한우 양지와 다시마로 낸 맑은 육수를 블렌딩했다. 덕분에 사골곰탕 특유의 묵직함은 줄이고, 감칠맛과 부드러운 목넘김은 더욱 살렸다. 여기에 수비드로 조리한 한우를 고명으로 올려 완성도를 높였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곰탕의 가격은 2만원 수준이다. 미식을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직장인에게는 퇴근 후 한 잔 술과 곁들이는 식사가 되고, 가족에게는 따뜻한 외식이 된다. 예술의전당을 찾은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코스가 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생활입니다. 곰탕은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 아니라 몸이 허할 때, 가족과 함께할 때, 혼자 조용히 식사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음식입니다. 그런 반복되는 식사가 좋은 식문화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송승훈 셰프…‘익숙함의 재발견’
고움의 송승훈 셰프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곰탕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지난 4월 문을 연 고움은 ‘곰탕의 재발견’을 목표로 한다. 그는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정식당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한국 최고의 파인다이닝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곰탕이 얼마나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임정식 셰프님께 배운 요리는 익숙한 맛에 작은 변주로 색다른 경험을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곰탕도 이와 같은 접근법으로 시작했습니다. 곰탕에 푸아그라를 올린다든가 하는 변주를 통해 지금껏 접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고움의 가장 큰 특징은 육수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누어 선보인다는 점이다. 초탕·중탕·종탕·합탕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곰탕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초탕은 양지에서 우려낸 육수 가운데 가장 맑은 윗부분만 떠낸 국물이다. 차를 마시는 듯 산뜻하면서도 선명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곰탕의 시작을 알리는 한 잔이자 고움이 추구하는 미식의 첫인상이다.
중탕은 고기와 뼈를 함께 우려내 육향과 감칠맛, 부드러운 질감의 균형을 보여준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곰탕에 가장 가까운 맛이다. 여기에 3일간 더 끓여낸 종탕은 한층 깊고 농후한 풍미를 선사한다.
합탕은 고움이 생각하는 곰탕의 완성형이다. 초탕과 종탕을 섞어 다시 졸여 양을 30%까지 줄였다. 풍부한 콜라겐이 만들어내는 점성과 깊은 풍미는 마치 시간을 농축해 한 그릇에 담아낸 듯한 인상을 준다.
“제가 만든 곰탕에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주신 곰탕의 맛이 배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뼈를 씹었을 때, 으스러져야 다 끓은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뼈가 물러지도록 몇 날 며칠을 끓이시는 과정을 되새겨 시간의 흐름에 따른 코스의 흐름을 구상했습니다.”
세계화, 대중화, 그리고 재발견. 셰프들이 곰탕에 주목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향하는 곳은 하나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으로 한식의 미래를 쓰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목표를 위해 곰탕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곰탕이야말로 절제와 시간의 응축이라는 한식의 본질을 가장 잘 담은 음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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