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낯선 숫자들이 뛰놀게 하자
2026.07.05 17:54
광주팹 등 대기업 투자규모 천문학적
지역 돈 돌고 일자리 창출, 지자체의 몫
전력·용수·정주여건 챙길 유능함 필요
‘52시간’ 규제도 풀어 투자 이행 도와야
지난주 전남광주특별시에 제2의 반도체 전공정 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필두로 삼성·SK·현대차·LG·한화그룹 등이 각각 호남과 충청·영남권에 향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금액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예고한 대로 그간 듣지도 보지도 못할 만큼 ‘낯선 숫자’로 천문학적 투자 규모임에 틀림없다. 김 실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평택·용인에서 반도체 공장에 투입하기로 한 2600조 원 이상과 강원 등에 들어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면 자신이 예고한 낯선 숫자가 ‘4755조 원’이라고 밝혔지만 호남·충청·영남에 신규 투자 계획으로 발표된 1609조 원만으로도 생소함은 충분하다.
실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전남광주 첨단산업 발전 비전을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기씩 짓기로 한 반도체 전공정 공장에 투입될 800조 원이 얼마나 ‘낯선’ 금액인지 설명했다. 김 장관은 전남광주의 1년 총생산액이 160조 원이라고 했다. 한 해 총생산의 5배에 달하는 돈이 전남광주특별시에 성공적으로 투입되면 돌아올 생산액과 경제적 파급효과가 얼마나 될지 상상하는 것은 낯설지만 어렵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중요성을 강조하며 천안과 온양에만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확대를 위해 투입하기로 한 56조 원이나 한화그룹 2인자인 김동관 부회장이 우주발사체 개발과 위성통신망 구축을 위해 영남에 투자하기로 한 55조 원은 어떤가. 광주 반도체 공장 투자 규모에는 크게 못 미쳐도 각 지역마다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투자로 제때 이행만 되면 막대한 부(富)를 창출할 것이다.
하여 ‘왜 우리 지역에는 반도체 공장이 오지 않느냐’로 다툴 일은 전혀 아니다. 낯선 숫자들이 얼마나 빨리 지역에서 실제 뛰놀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성장을 자극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역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칫 지역이기주의에 발목이 잡힐 수 있는 기업 투자에 활로를 만드는 지렛대가 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는 3년도 전에 부지가 선정됐지만 아직 토지 보상이 끝나지 않는 등 지지부진하다. 반면 광주 반도체 공장 후보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첨단 3지구는 부지 조성은 물론 주변 개발까지 본격화해 내년 초라도 착공이 가능한 상황이다.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과 글로벌 AI 인프라 확충으로 빠르게 생산능력을 확대해야 할 삼성 입장에서는 수도권이라고 마냥 수백조 원을 들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에 따라 기업의 천문학적 투자금은 종착역이나 투입 시기가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이달 초 새 출범한 민선 9기 지자체가 얼마나 유능하게 일하느냐에 따라 낯선 숫자들이 만들어낼 지방 경제의 향후 판도는 달라질 것이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예정된 곳에 전력과 물·도로 등 인프라가 빠르게 갖춰져야 실제 자금이 흘러들고 사람들이 모여 생산거점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인재 확보 역시 마찬가지다. 수백조 원이 투입될 첨단 공장은 결국 전문성을 갖춘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인재들이 지방에 살기 위해 이주하는 결정은 단지 좋은 일자리만 있다고 가능하진 않다. 친환경적인 생산시설은 물론이고 주변에 상업·의료·교육·레저 등 정주 여건이 뛰어나야 하는데 이를 착실히 챙길 수 있는 곳은 지방정부다.
마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수억 원대 성과급이 인재들의 지방행에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가 앞장서 연구개발(R&D) 인력들의 주 52시간 근무 제한 같은 규제를 지역 특구에서 풀어 젊은 일꾼들이 자유롭게 일하면서 고소득을 추구할 수 있게 하면 기업 투자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다. 지방 대학과 지역 연구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한민국 산업과 부의 지도를 바꿀 청사진은 마련된 듯하다. 지자체가 AI 시대의 기술 변화와 속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회를 살리려 애쓰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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