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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일류 기업과 삼류 정치

2026.07.05 18:00

배동진 지사장 겸 서울경제부장

반도체 호황·코스피 9000 달성 속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발언 재조명
여론 수렴 없는 정책 국민 '외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 위험
정치가 기업 발목 잡는 행태 지양을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인데, 정치는 사류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4월 국내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요즘 세간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업은 제 몫을 다해 주고 있는데 반해 우리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수준이하라는 얘기다.

반도체에선 인공지능(AI) 바람과 함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분기별로 수십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글로벌 메모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방산과 조선, 배터리, 초고압 변압기, 정유화학 등의 제조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정 분야에 강점이 있는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은 첨단 기술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외국 경제학자들은 ‘저렇게 작은 나라에서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주요 제조 분야를 경쟁력 있게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하며 감탄하고 있다.

이 같은 제조기업들의 활약 덕분에 최근 코스피 지수도 9000을 넘나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올해 초만 해도 한국 경제는 ‘1%대 저성장’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제연구기관들은 한국의 3~4% 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정부·여당은 최근 경제성장과 주가 상승은 자기들이 정치를 잘 한 덕분이라며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 바람을 타고 관련 종목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수요가 폭발한 탓”이라며 정부·여당과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히려 여론 수렴 없이 이뤄지는 정책 발표와 실패로 인해 국민들의 실망만 늘어가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정책이다. 다주택자 압박에 수도권 위주로 전세난, 월세 상승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 지지도가 높았던 20~40대는 마음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 “국정 운영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 근거에 의한 판단과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면서 야당이나 경제주체 등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노조에게 파업 책임을 묻지 못하는 ‘노란봉투법’까지 도입하면서 기업인들사이에선 “못해먹겠다”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최근 1000조 원 이상이 드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놓고도 후보지도 없이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영남은 왜 안되냐”고 질문하면 대통령은 “그동안 영남은 한 게 뭐 있냐”는 식으로 답한다.

국책사업도 아니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하는 대규모 투자 사업에 현 정부가 나서서 추진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외압이 아니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번 결정에 앞서 청와대와 여당은 수개월 전부터 반도체 기업 초과 이익의 사회환원을 언급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압박했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공산당식으로 “나눠 갖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외압이라는 지적에 여당 측 인사들은 “삼성이 어떤 기업인데 우리가 하라한다고 하겠냐”는 식의 대응논리를 펴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을 마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경우 부지 선정과 검토에 보통 5~7년이 걸린다. 현재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군공항 부지는 부지 특성상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올초만해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 얘기가 없다가 2개월전에야 급부상했고, 지난달 29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주내용인 ‘메가 프로젝트’ 발표가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메가 프로젝트를 두고 “제가 지금까지 해낸 일 가운데 가장 큰 국민적·역사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은 곧바로 ‘직권남용’이라며 반발했고, 이 대통령은 ‘언제까지나 행정지도’라고 눙쳤다. 그간 역대 대통령중에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사태가 그랬다. 이번 사안도 그에 못지 않게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경률 회계사는 한 유튜브에 출연해 “삼성전자의 최근 수년간 사업보고서 어디에도 호남 반도체 투자에 대한 얘기가 없다. 대규모 투자는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 사안인데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삼성의 모 반도체 임원은 “이번 호남 반도체 투자는 자발적 투자가 아니다”고 했다. 삼류 정치가 계속되면 일류 기업도 결국 이류 기업이 된다. 아직도 정치가 기업 발목을 잡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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