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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배재고가 나라를 팔았나 [노원명 에세이]

2026.07.05 10:04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귀국한 지난달 30일, 중국 신화통신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글을 국내 신문이 옮겨썼다. 기사에 따르면 원문은 한국의 침울한 탈락과 이후 한국인의 반응을 언급하면서 “한국 곳곳의 격렬한 반응은 전 세계를 더 놀라게 했다”며 “한국인들은 냉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한국 팬들의 실망과 분노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고, 특히 한국인의 국민성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고 우리 국민성을 겨냥한 뒤 “경기의 패배를 배신과 동일시하는 것은 스포츠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것이고, 사회적 정서의 분출에 더 가깝다”고 썼다.

일본의 한 야구 선수 출신 방송인은 TV쇼에서 “(한국은)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까지 포함해 응원 열기가 강하다”며 “졌을 때의 비판 열기도 지나치게 크다”고 했다. 그는 “선수단과 감독은 최선을 다한 끝에 졌을 뿐인데, 분노의 화살이 감독에게 향하고 있다”며 “졌다고 해서 국회 청문회가 열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중국 매체의 글과 일본 방송인의 말은 진지한 논평보다는 인상평에 가깝다. 우리도 남의 나라 축구 얘기를 진지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 외국 논평을 다룬 기사가 한국의 32강 탈락 국면에서 내가 본 가장 ‘이성적인’ 글이었다.

한국팀 탈락에 한국이라는 사회가 이렇게 화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이라는 사회’라고 쓴 것은 내 주변에서 이 문제로 성내는 개인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노는 신문과 방송, 기사 댓글, 늘 무언가에 성이 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의 SNS, 분노에 빛의 속도로 반응하는 정치인 사이에서만 교류된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노는 자극이 강해서 클릭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꽤 점잖은 사람들도 누가 조리돌림당하는 구경을 놓치지 않는다. 공정하지 않은 얘기라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분노 비즈니스’는 성공 확률이 높은 사업이다.

내 눈에도 홍 감독은 유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능함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1승2패를 거둔 감독을 ‘무능의 아이콘’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퇴장한 것을 빌미 삼아 ‘몹쓸 인격’으로 몰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 지나온 인생의 전적, 패배 앞에서 보였던 인격을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홍명보는 국가대표 감독이었고 그 자리엔 비난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책임이 따른다. 국가대표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욕받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우리는 좀 과도하다. 체코 전에서 이겼을 때는 ‘명장’ 제목이 뜨더니 멕시코전에서 지자 왜 손흥민을 빨리 뺐느냐고 난리가 났다. 승패만 갈렸을 뿐 두 경기에서 보여준 한국의 경기력은 비슷했다. 2002년을 빼면 월드컵에서 한국의 경기력은 늘 그만그만했다.

터무니없는 기대와 터무니없는 비난. 이것이 꼭 축구감독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대통령이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임기 중 어떤 선거에 지면 그날부터 내리막이다. 다친 사자처럼 하이에나 떼에 쫓긴다. 우리는 대표팀 축구 감독과 대통령의 ‘헛발질’을 한 번 이상 참아주는 민족성이 아니다. 두 직업을 자식에게 권하지 말라.

‘배재고 스타벅스 사건’을 다룬 기사와 댓글을 보면 한국인은 ‘정의 감수성’이 탁월한 민족이 분명하다. 아이들의 ‘언어 탈선’ 사건에 말깨나 한다 하는 어른들이 나서서 일벌백계를 주문하고 있다. 그들 요구대로라면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이 계속 야구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른들이 어떤 종류의 탈선에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실은 그런 태도는 매우 희귀하다.

학폭 이력이 대학입시에 결정적 장애가 된 이후 학폭 가해자가 본인의 과실을 인정하는 비율이 급감했다. 참혹하게 사람을 팬 학생의 부모도 변호사부터 구한다. 형식적 사과도 없다. 사과는 곧 학폭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물며 패륜 욕을 했다고 학폭을 걸었을 때 ‘제가 아이를 잘못 가르쳤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무릎 꿇을 가해자 학부모는 없다. ‘절대 미안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아이에게 다짐을 두는 부모는 많다. 자기 자식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한 어른들이 남의 자식 인생길 막으라는 주장은 참 쉽게도 한다. 선택적인 정의감이다.

배재고 선수들이 특정 지역을 그런 식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어른들 책임이다. ‘5.18 탱크데이’로 분노 비즈니스를 한판 걸게 해치웠다. 그 결과 5.18에 대한 존중이 더해진 사람도 있겠지만 반발심이 생겨난 사람도 있다. 사람은 신성한 존재를 농담거리로 삼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존재다. 아이들은 더 그렇다. 5.18을 신성시할수록 농담이 될 위험도 커진다. 5.18을 그렇게 신격화해놓고 10대인 아이들에게 ‘절대절대 농담으로 삼지 말라’고 한다. 신정 사회인가. 대결 구도를 만든 것은 어른이면서 책임은 미성년자에게 묻고 있다.

홍명보는 축구를 잘하지 못했고, 배재고는 어른들이 쳐 놓은 지역감정 그물에 걸려들었다. 잘못했지만 나라를 팔아치운 것이 아닌데 역적 대하듯 한다. 한 사회의 분노가 ‘에라 심심한데 잘 걸렸다. 너 한번 죽어봐라’ 식이어선 안 된다. 재도 남기지 않고 대상만 옮겨가며 기체로 증발하는 분노. 2030년 월드컵이 끝나면 또 누군가에게 화내고 있겠지.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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