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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축구 응원단의 ‘허젤러흐’한 순간들 [.txt]

2026.07.05 06:02

신견식의 세계 마음 사전

모두 웃고 우는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오렌지 군단’ 응원단이 보여준 유대감
평범한 시민들 평등하게 즐기는 시간
지난달 14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일본의 월드컵 축구 예선 경기를 앞두고 네덜란드 관중들이 경기장을 향해 춤을 추며 나아가고 있다. 평소 흥겨움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방방 뛰는 모습이 일종의 반전 매력처럼 보여 미소를 짓게 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스포츠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활동도 드물 것이다. 스스로 운동을 즐길 때 여러 신경 물질과 호르몬이 쏟아져 느끼는 행복감도 있지만,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의 활약에서 연출되는 극적인 장면을 보면 마치 몸소 경기에 뛰어든 것처럼 흥분한다. 경기 관람은 앉아서 뇌로 하는 격렬한 호르몬 운동과도 비슷하다. 특히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은 지구촌 축제라 불릴 만큼 온 세상이 내뿜는 열광의 도가니다.

독일이나 영국,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등지는 특히 남자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나 산업화, 관료화, 군사화 등 근대화 과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어 자리 잡은 규범이다. 물론 이제는 남자도 적절하게 감정 표출을 하는 게 정신건강과 대인관계에 긍정적이라는 연구가 많이 나왔고 성평등도 중요시하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남자답지 않다는 시각도 많다.

이런 강인한 감정 절제력이 무장해제당할 때가 바로 축구 경기 중이다. 선수든 팬이든 져서 슬프든 이겨서 기쁘든 독일 남자들이 ‘합법적으로’ 울어도 되는 순간이다. 한국도 남성성 차원의 인내나 체면 등을 중시하는 면이 아직은 있는데, 국가 대항전이 열리거나 스포츠 광팬이라면 응원하는 팀의 성과에 따라 눈물도 흘린다. 이런 감정 폭발 현장은 경기장의 선수와 응원단뿐 아니라 경기장 밖의 팬도 함께 만들어낸다. 올해 북중미 월드컵은 멕시코와 캐나다도 공동 개최국이지만 대다수 경기가 미국에서 열리다 보니 흥행이 썩 좋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뜻밖에도 본경기에 매콤달콤한 양념을 더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외국에서 원정 온 팬들이다. 경기가 열리는 주요 도시에 흥겨움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징하는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수많은 인파가 길거리를 꽉 채우고 댄스 음악에 맞춰 다 함께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폴짝폴짝하는 장관이 바이럴을 탔다. 평소 흥겨움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방방 뛰는 모습이 일종의 반전 매력처럼 보여 미소를 짓게 된다. 네덜란드에는 ‘평범하게 지내라. 그것만으로도 이미 별난 짓이다’(Doe maar gewoon, dan doe je al gek genoeg)라는 격언이 있다. 남들처럼 사는 것도 대단한 일이니 굳이 더 별나게 보이려고 과잉·과장하며 애쓰지 말라는 뜻이다.

너 혼자 튀지 말라는 이런 암묵적 규범의 면모는 한국이나 일본 사회에도 비슷하게 있다. 다만 전자는 수평적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어 모두 평등하니 겸손하게 지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고, 후자는 수직적 집단주의에서 서열 파괴 금지나 조화의 측면이 큰 편이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축구 경기를 볼 때는 평범함에서 벗어나 신나게 응원한다. 다만 이게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 신나서 그러는 것이니 그 나라 정서에 꼭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른바 번역 불가능한 단어들 가운데 네덜란드어 형용사 gezellig[허젤러흐]가 있다. 주로 아늑하거나 편안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교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이에 더해 소속감,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 오랜 친구와의 만남,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는 붙임성이나 유대감도 나타낸다. 이와 한 묶음으로 다뤄지는 독일어 gemütlich[게뮈틀리히]는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 덴마크어 hygge[휘게]는 아늑한 순간을 누리는 소박한 행복에 좀 더 방점이 찍힌다. 이 세 낱말은 모두 각국 사람들이 지향하는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반면에 영어 cozy[코지]는 개인적인 감각으로 느끼는 공간적 아늑함만 주로 일컫기에 이 그룹에 끼지 않는다.

축구 응원단의 경우를 보자면 독일어나 덴마크어보다 네덜란드어가 더 잘 들어맞는다. 사교성, 사회성의 함의가 셋 중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어원상 명사 gezel[허젤: 동료, 친구]의 파생어라 그렇기도 하다. 보통의 좋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평등하게 즐거이 응원하는 셈이다. 국가 대항전이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으나 네덜란드 응원단은 친구들과 파티를 벌이는 감각에 가까울 것이다.

네덜란드 팀의 상징색이 오렌지가 된 것은 오라녀나사우 왕가(Huis van Oranje-Nassau)의 이름에 oranje[오라녀: 오렌지]가 들어가기 때문인데, 과일과는 동음이의어일 뿐 어원적 관련성은 전혀 없다. 말장난처럼 선택된 것이다. 응원의 배경음악은 스놀레볼레커스(Snollebollekes)라는 파티 악단의 Links Rechts[링크스 레흐츠]라는 곡으로 ‘왼쪽 오른쪽’을 뜻하며 아프레스키(après-ski)라는 파티 음악 장르다. 네덜란드는 ‘낮은 땅’(neder+land)이라는 국명이 말해주듯 국토가 평지라서 겨울에 주로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로 스키를 타러 가는 사람이 많다. 아프레스키는 스키 리조트에서 하는 뒤풀이인데 그때 즐기는 음악도 가리키게 됐다. 축구와는 아무 관련 없지만 응원곡에 잘 들어맞다 보니 북중미 월드컵 원정에서 틀어주는 음악이 됐다. 애초에 연관이 있든 말든 흥겹게 응원하면 그만인 것이다.

딱히 기분 좋은 일이 없어도 그냥 웃다 보면 기분이 잠시라도 좋아진다는데 실제로 그렇다. 우리 뇌는 웃는 표정을 지으면 행복하다고 판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유쾌하게 응원하는 모습을 봐도 그런 느낌이 든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스포츠는 문화마다 다른 규범에서 잠시 벗어나 모두가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월드컵도 한국이 연전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한다면 더 기쁘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세계인의 축제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신견식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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