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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자본주의' 시대의 딜레마…KAI 민영화 논쟁의 진짜 쟁점은

2026.07.04 12:00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K스페이스 판도 흔드는 인수 경쟁…막 오른 승부
방산업계 '메이저리그' 진입 위한 체급 키우기 시동


민간 중심의 '우주 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됐다. 한국도 누리호 발사 성공을 기점으로 우주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격상하며 생태계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KAI는 누리호 총조립을 맡고 다목적 실용위성을 개발하는 등 국내 우주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여기에 초음속 전투기 KF-21, 경공격기 FA-50을 개발한 국내 유일의 완제기 제작 역량까지 더해, 명실상부한 항공·우주 종합 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무대가 커질수록 한계도 부각됐다. KAI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주식회사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사실상의 공기업'이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26.41%), 국민연금(8.3%) 등 공공 부문 지분만 약 35%에 달한다. 이 같은 공기업 지배구조로는 자금력을 앞세운 글로벌 민간기업들을 상대로 경쟁하는 데 제약이 따를 것이란 게 업계의 우려다. KAI 민영화 이슈가 산업계의 쟁점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2025년 7월10일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T-50으로 비행연습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화 vs LIG…불붙은 KAI 인수전

최근 KAI 민영화 이슈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한화의 공격적인 행보다. 한화그룹은 6월16일 KAI 지분을 9.04%까지 늘리며 수출입은행에 이은 2대 주주로 올라섰다. 6월말 기준 지분율은 11.21%까지 늘어난 상태다. 보유 목적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하고, 연말까지 지분을 12%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경쟁자도 가세했다. 업계에선 LIG넥스원이 KAI 인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한 내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신익현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 대표 역시 최근 국방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진행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며 관심을 직접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한화와 LIG 같은 방산 거인들이 앞다퉈 KAI 인수를 타진하는 이유는 막대한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유도무기와 항전장비에 강점이 있는 LIG가 기체 제작사인 KAI를 품을 경우,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아우르는 생산라인을 갖추게 된다. 한화 역시 항공엔진·레이더·위성·우주 발사체 등 우주·항공 전 영역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어, KAI의 완제기 개발 역량이 결합하면 국내 최대 우주 산업 밸류체인을 완성하게 된다. 결국 KAI라는 '몸체'를 누가 거머쥐느냐에 따라 K방산과 우주 산업의 판도 자체가 뒤바뀌는 셈이다.

이 같은 인수전이 벌어진 데는 글로벌 시장의 진입 문턱이 높아진 점도 작용했다. 최근 사실상 무산된 미국 훈련기 수출 사업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 아메리칸' 기조를 강화해 미국산 부품 비중 요건을 75%까지 끌어올리면서, 한국에서 기체를 만들어 납품하는 KAI의 구조로는 사업성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결국 파트너인 록히드마틴이 입찰 불참을 택하면서 KAI의 미국 진출은 무산됐다. 기술력 못지않게 현지 생산과 투자 여력이 수출 성패를 가르는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KAI가 자금력을 갖춘 대형 그룹과 손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글로벌 우주 산업의 패러다임이 이처럼 '자본주의' 싸움으로 재편됐지만, KAI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9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 주도의 '빅딜'(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 통합)로 탄생한 KAI는, 이후 한국산업은행이 보유 지분을 수출입은행에 현물 출자하면서 현재의 준공기업 지배구조가 굳어졌다. 문제는 정권 교체기마다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패턴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대형 우주·방산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윤상용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사장이 2~3년 단위로 갈리다 보니 장기 목표를 세울 수 없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다 갈리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방산안보실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대표이사는 그냥 공무원인 것"이라며 "현재에 안주하는 모습에 활력을 불어넣고 변화를 주기 위해 민영화는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과점 우려·공정위 심사…갈 길 먼 민영화

다만 민영화가 해법이 될 순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윤 추구가 최우선인 민간기업 특성상, 단기 실적과 주가 관리 압박에 밀려 긴 호흡이 필요한 우주·항공 연구개발(R&D) 투자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 개발이 특정 대주주의 영리적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사항으로 꼽힌다.

현실의 장벽도 높다. 당장 '독과점 논란'이 넘어야 할 산이다. 인수를 타진하는 기업들은 자사와 KAI의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는 데다, 초국가적으로 덩치를 키우는 글로벌 방산 트렌드를 고려할 때 밸류체인 통합은 독과점이 아닌 '경쟁력 확보'의 필수 조건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KAI가 항공기 완제기 제작 분야의 유일한 플레이어인 만큼, 향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도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공정위는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 당시에도 불공정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강도 높은 시정 조치를 조건으로 내걸며 제동을 건 바 있다.

정부 방침도 변수다. 방산기업 매각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산업통상부 장관 승인과 방위사업청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 이재명 정부는 국유재산 매각에 보수적 기조를 보여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정부 자산 매각 중단과 진행·검토 중인 매각의 재검토를 각 부처에 긴급 지시한 바 있다. 정부가 민영화의 열쇠를 쥔 만큼, 정책적 움직임이 없으면 인수 시나리오도 탄력을 받기 어렵다.

지분 매각의 당사자인 수출입은행은 말을 아끼고 있다. 수은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현재 별도로 KAI 지분 매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KAI의 지분 처리 등과 관련해 정부와 협의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KAI 측도 시사저널에 "KAI는 이미 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으로 '민영화'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면서 "정부의 지분 매각은 정부가 판단할 일이며 회사 차원에서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화의 지분 확대 등과 관련해선 "사업 협력 확대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 2대 주주가 달라졌다고 해서 경영 방침이나 사업 구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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