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미국 경제 황금기 이끈 마에스트로 [US 리포트]
2026.07.04 21:01
아듀 그린스펀, 백악관이 그를 사랑한 이유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6월 22일(현지 시간)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100세. 사인은 파킨슨병 합병증이었다.
그는 1987년부터 2006년까지 18년 반 동안 연준을 이끌었다. 대통령 4명을 거치며 미국 통화 정책을 좌우했다. 그린스펀 별세 소식에 백악관은 뜨겁게 반응했다.
그가 재임하던 시절 금리 결정 논리는 명료했다. 통상 실업률이 일정 수준(자연실업률) 아래로 내려가면 노동 시장이 과열돼 임금이 오르고, 임금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번진다. 이른바 필립스 곡선 논리다. 1996년 미국 실업률이 5% 아래로 떨어지자 연준 안에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그린스펀 생각은 달랐다. 공식 통계가 아직 포착하지 못한 변화가 미국 경제 밑바닥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IT) 투자가 노동생산성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가설이었다.
논리는 이렇다. IT가 미국 생산성을 높이면 같은 노동시간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임금이 올라도 생산량이 더 빠르게 늘면 제품 한 단위를 만드는 데 드는 노동비용, 즉 단위노동비용은 안정된다. 이 경우 실업률이 낮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도 반드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생산성 혁명을 짓누를 수 있다는 게 그린스펀의 생각이었다.
韓 외환위기 땐 막후서 구원투수
예감은 적중했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 후반 낮은 실업률과 강한 성장을 누리면서도 상당 기간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했다.
그린스펀은 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기 위해 검증 과정을 집요하게 점검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연준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모형화하던 젊은 연구원이었다. 그린스펀이 자신의 논리로 ‘고성장과 저물가’를 동시에 달성한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은 지금 그린스펀 논리를 차용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 주체가 IT에서 인공지능(AI)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AI로 생산성이 오르면 경제가 강하게 성장하고 고용이 견조해도 인플레이션 없이 금리를 내릴 여지가 생긴다.
해싯 위원장은 그린스펀 별세 직후 CNBC 인터뷰에서 “AI가 경제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닷컴 시대보다 훨씬 거대하다”고 진단했다.
1990년대 말에는 모두가 미래 비전만 품었을 뿐 단기 이익으로 곧장 이어지지 못했지만, AI는 이미 기업 실적으로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AI 기업이 수익을 내고, AI를 도입한 회사도 운영 개선으로 수익을 낸다는 의미다.
다만 우려도 나온다. 그린스펀의 장기 저금리·완화 기조와 금융 규제 완화 옹호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토양을 만들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는 시장이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주택·신용 버블이 부풀어 오르는 동안 충분한 제동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결과로 돌아왔다.
지금 AI 시장은 변동성이 크다. 반도체 기업 주가가 하루 만에 10% 넘게 올랐다가 급락하는 날이 반복된다. 월가 헤지펀드의 반도체 주식 익스포저는 역사적 극단으로 치솟았다. 생산성 혁명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그 확신이 자산 가격에 얼마나 선반영됐는지를 묻는 질문도 커진다. 1990년대 후반 생산성 낙관이 닷컴 버블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뉴욕 = 홍장원 특파원 hong.j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6호(2026.07.01~07.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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