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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나 혼자 산다
"땅 사고 철망으로 막는 순간 싸움 시작... 말뚝은 마음속에만 "

2026.07.04 17:31

[퇴직 후 새 인생 개척 소시민 이야기] 충남 보령 산골에서 흑염소 키우는 이태훈 은퇴자
◈ 2021년 6월 말 부천시 공무원 정년퇴직(4급 지방서기관)
◈ 2021년 7월 충남 보령 산골 자연인 생활 시작
◈ 2022년 10월 닭에서 흑염소로 변경(현재 50마리 사육)

도시의 화려한 퇴임식장을 뒤로하고 산골로 들어간 한 남자가 있다. 9급에서 4급 서기관까지 달려온 공직자의 삶을 은퇴하고, 이제는 흑염소 50마리와 함께 자연 속에서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이태훈(65) 은퇴자를 지난 6월 현지 농장에서 만났다.

닭 사육 실패를 딛고 흑염소 농장을 일구기까지, 서류에서 생명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자연의 섭리로 옮겨간 그의 선택은 단순한 귀촌이 아니라 '삶의 가치관'을 바꾼 전환이었다. 은퇴 후 인생 2막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산골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행복과 현실적인 조언이 따뜻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 연화정(然和亭), ‘자연인과 더불어’라는 의미의 정자에서 인터뷰하는 이태훈 은퇴자. 정자에 앉아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한 도시에서 쌓인 마음의 짐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 김부규

- 화려한 도시 퇴임식장에서 거친 산골 자연인으로 삶의 무대를 옮기게 된 결정적 계기와 가치관 변화는?

"공직 생활 때는 앞만 보고 달렸어요. 9급에서 4급 서기관이 되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퇴직 5년 전부터 <나는 자연인이다> TV 프로그램을 하루 4편씩 보면서 자연으로 돌아갈 꿈을 키웠어요. 자연 속에 푹 빠지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건강도 더 좋아졌어요.

도시 직장인들이 퇴직 후 귀농·귀촌을 꿈꾸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20%도 안 돼요. 내려갈 땅이 없거나 아내의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이죠. 저는 오래전부터 할아버지께서 농사짓던 땅을 물색해 두었고, 아내는 두어 달에 한 번 내려왔다가 수도권 집으로 돌아가요. 각자 좋아하는 삶을 사는 거죠.

여기 마당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죠. 일반 가정집이라면 제초제를 뿌리거나 뽑아야 하지만, 여기서는 베어서 염소 먹이로 줘요. 자연 속에 살면 나도 모르게 그 섭리를 알아가고 동화됩니다. 두릅, 머위, 밤 등 제철 식물도 부지런히 움직이면 식생활에 보탬이 돼요. 그래서 산골에서 사는 제 삶의 가치관은 '자연 그대로'입니다."

- 흑염소 농장을 운영하며 '자연과 함께 산다'는 의미를 어떻게 체감하나?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는 '살아있는 생명'을 키우는 일에서 찾았어요. 일반 농사처럼 가축도 정성을 들이고 바라봐 준 만큼 보답해요. 생명들이 건강하게 자라 새끼를 낳고, 주인을 알아봐 줄 때 커다란 힘을 얻게 되죠. 또 다른 의미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속에 제가 있는 거죠.

집 뒤쪽 둘레길을 걷다 보면 계절 따라 피어나는 새싹과 꽃, 산나물을 보게 되죠. 어릴 때도 늘 보던 풍경인데, 나이 들어 바라보니 인생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더군요. 순리에 따라 자연 속에서 살다가 결국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이치를 도시에서보다 훨씬 강하게 느낍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해야 자연도 나를 품어준다는 지혜를 알게 되었죠.

새벽 5시 반, 방문을 열면 염소들이 반응하며 먹이 주는 곳으로 달려옵니다. 아침밥을 챙겨주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한 뒤 아침을 먹어요. 오후 4시 반에는 두 번째 먹이를 줘요. 조금만 늦어도 밥 달라고 난리예요. 낮 시간에는 귀촌한 친구들이나 토박이 친구들의 수박 농장 · 메기 양어장 일손 돕기, 벼모판 · 염소 이동 등 차량 지원과 염소 먹이를 구하러 다니거나, 축사 청소와 보수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하루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 닭 사육에서 흑염소로 바꾼 과정과 특별한 인연은?

"5년 동안 닭 공부만 하고 내려왔지만, 토종닭·청계 80마리 키워도 비용 대비 수익이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염소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 염소 농가 회원이 4명이었는데 돈이 된다는 소문에 1년 만에 11명으로 늘었어요. 결과는 일부 농가가 큰 손해를 보고 떨어져 나갔어요. '개 식용 금지법'이 내년 2월 7일 시행되니까 보신탕집이 사라지고 흑염소집이 늘면서 소비가 늘었지만, 수입산 유입으로 가격이 폭락했어요. 저도 작년 염소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가 최근 조금 늘었어요.

염소는 닭과 달리 사람과 교감이 잘 돼요. 염소는 자기를 예뻐하는 주인을 알아봐요. 이름을 불러주면 달려오고, 목을 주물러주면 가만히 있어요. '삼식이'라고 이름 붙인 녀석은 부르면 막 달려듭니다. 영리하고 섬세한 동물이에요."

▲ 새끼 염소 삼식이와 함께. 내가 축사로 들어가니 다른 염소들은 후닥닥 도망치기 바빴다. 하지만 삼식이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강아지가 좋다고 꼬리 치며 달려드는 것과 같았다. 사람 손을 탄 동물은 달랐다.
ⓒ 김부규

- 16가지 이상의 자연산 먹이와 동물복지를 고집하는 사육 철학은?

"저는 극히 일부 지인들에게만 24가지 한약재가 들어간 흑염소 진액을 직접 내려서 판매해요.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 주문이 들어오면 건강원과 연계해 보내드리는데, 고가품인 만큼 가장 상태가 좋은 염소만 엄선해서 달입니다. 동대문 시장에도 단골 고객이 있는데 TV 광고 상품과는 비교가 안 된대요.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먹이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보령, 서천, 부여 등지의 지인들이 콩 농사나 완두콩 농사를 끝내고 콩깍지를 걷어두었다가 가져가라고 연락을 줘요. 제게는 귀한 보물이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제철에 나오는 식물과 함께 자연식으로 먹입니다.

▲ 방목장과 운동장. 방목장 울타리 쪽으로 사람이 접근하니까 염소들이 모두 가파른 산쪽으로 이동했다.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지니 염소들이 다시 내려왔다.
ⓒ 김부규

우리 농장은 동물복지 차원에서 운동장과 방목장이 잘 갖춰져 있고 개체 수가 적어 병이 적어요. 가파른 운동장에서 올라가고 내려가며 운동을 하니 새끼를 낳을 때도 힘이 덜 들어요. 고객과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자연식 먹이부터 좋은 환경, 사람과의 교감까지 최고의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정성을 들인 만큼 보람이 크죠."

 귀촌 주택과 연화정 정자
ⓒ 김부규

- 염소농장을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염소는 생각보다 폐사율이 높은 가축입니다. 폐사율을 20% 정도로 방어하면 잘 관리하는 수준이죠. 가장 중요한 건 쾌적하고 건조한 환경입니다. 염소는 습기에 민감하니까 비를 완벽히 막아줄 축사는 필수입니다. 가장 무서운 설사병은 이틀만 방치해도 그냥 죽어요. 또 다산(多産)에 대한 인간의 욕심을 버려야 해요. 염소가 새끼를 잘 낳는다고 욕심을 부려 4산, 5산 이상 과도하게 번식을 시키면 네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요. 노산(老産)을 엄격히 방지해야 어미와 새끼 모두 안전해요.

초보자라면 섣불리 뛰어들지 말고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하고, 초기에는 마리수를 적게 시작해서 경험을 쌓아야 해요. 큰 농장과 작은 농장 골고루 10군데 이상 찾아다니며 농장주들과 밥도 먹고 대화하며 배우세요. 염소를 생계수단으로 한다면 300마리 이상, 부업이나 소일거리로 혼자 하겠다면 30~50마리, 부부가 함께한다면 100~200마리가 적당한 규모입니다."

- 생명 탄생과 이별에서 가장 마음이 찡했던 순간은?

"간혹 노산으로 어미가 잘못되는 경우, 새끼에게 초유를 구해 먹인 뒤, 처음에는 2시간마다, 일주일 후에는 4시간, 6시간, 8시간마다 두 달 동안 먹여야 해요. 그렇게 키운 녀석들에게는 '사월이', '다순이', '삼식이' 같은 이름을 붙여줘요. 축사에 들어갈 때마다 이름을 부르면 하루 만에 알아듣고 달려와요. 그런 녀석들을 시장에 팔 때면 본능적으로 알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나요. 정들었던 녀석들이라 시장에서 돌아올 때면 가슴이 찡해요.

한번은 어미가 젖을 안 줘 죽어가는 새끼를 따뜻한 산실에 데려와 새끼가 스스로 빨 힘조차 없어서 주사기로 초유를 혓바닥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 먹였어요. 목젖을 자극하며 삼키는 것을 도왔더니 2시간 만에 일어섰어요. 소중한 생명을 제 손으로 살렸으니 엄청 뿌듯했죠."

▲ 새끼 염소 산실(産室). 천정에 매달린 큰 전등 불이 켜지면 따뜻한 온기가 전달되게 만들었다.
ⓒ 김부규

-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극복 원동력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산골은 완전히 고립돼요. 눈 예보가 있으면 염소 먹이 먼저 챙겨놔요. 여기가 환경적으로 굉장히 열악해요. 온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겨울에는 너무 춥고 나가지도 못 할 때는 많이 힘들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적응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요. 또 하나 큰 힘은 주변 염소 농가 회원들입니다. 그들과 소통하며 정보도 공유하고 위로도 받습니다. 저는 겨우 4년차 초보이기에 축산 베테랑들의 조언이 큰 힘이 됩니다."

- 경제적 자립도는 어느 정도인가?

"2022년 10월부터 모든 지출을 컴퓨터에 입력했어요. 정산해 보면 월 순수익은 100만 원 남짓이에요. 생활비가 경조사비 포함 200만 원 이상 들어가니 부업이나 소일거리 정도 수준이에요. 우리 농장은 어미 염소가 20마리 정도 있어요. 전업으로 삼아 어미 염소만 100마리 이상 상시 유지할 수 있다면 매달 200만 원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할 거예요.

생활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차량 유지비입니다. 산골이다 보니 사료 구매나 콩깍지 운반, 점심 한 끼 식사든 무조건 차를 움직여야 해요. 현재 1톤 화물차와 승용차 두 대를 굴리고 있는데, 기름값이 만만치 않아요."

 (좌측) 보령시 시인으로 활동 중인 이태훈 은퇴자의 詩 ‘봉성리 아침’이 한국산림문학헌장공원 시비(詩碑)로 세워졌다. / (우측) 그가 최애하는 詩 ‘보령호 가을’이다.
ⓒ 이태훈,김부규

- 은퇴 후 귀농·축산을 꿈꾸는 5060 세대에게 꼭 전하고 싶은 현실 조언과 앞으로의 꿈은?

"많은 은퇴자가 돈을 들여 시골 땅을 사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부터 짓지만, 아내가 적응 못하고 먼저 올라가요. 남편도 3년을 못 버티고 따라 올라가죠. 빈집만 남아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천천히 시작해야 실패하지 않아요. 또 시골에 왔을 때 현지인들하고 잘 어울려서 사는 것도 중요해요. 땅 사고 측량하면서 말뚝 박고 담장 치면 그게 불협화음의 1순위예요. 동네 사람들은 기존에 사람 다니는 길인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땅 사고 경계 측량해서 하얀 철망으로 막아버리는 순간 동네 사람들과 싸움이 시작되는 거예요. 말뚝은 마음속에만 박아두세요.

저는 5년 동안 철저히 준비했지만, 닭 사육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염소로 바꾼 거예요. 염소농장도 부업으로 하면서 자연하고 더불어 살려고 하는 거지 이걸 확 키워서 어떤 큰 농장주가 되어 보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현재의 삶에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현재까지 총 71화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전 인터뷰 기사가 궁금하시면 책 <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999879)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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