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전
"택시·직장·인터넷 댓글에서..." 배재고 사태가 드러낸 '지역 비하'의 얼굴들
2026.07.04 17:36
| ▲ 최근 배재고 5·18민주화운동 폄훼 응원 관련 기사에 달린 SNS 댓글. |
| ⓒ 인스타그램 |
"광주에서 왔다고 하니까 직장 상사가 '그러면 너도 위험분자 아니냐'고 말했어요. 상사라서 문제제기도 못했죠. 이런 일은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때부터 계속 겪었어요."
배재고 야구부의 5·18민주화운동 폄훼 응원 논란은 광주 출신 임아무개(28)씨가 묻어둔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게 했다. 서울에서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광주 출신이라고 밝히자 돌연 끊긴 대화. "호남이 멍청해서 발전을 못 한다"는 누군가의 농담. 일터에서 문의 전화를 받았다가 자신의 억양을 들은 상대방이 "빨갱이 죽으라"고 욕설을 했던 일까지.
임씨는 <오마이뉴스>에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쌓인 경험"이라며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비하보다 은근한 말로 지역 비하를 더 많이 겪었다"고 밝혔다. 이어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를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다"며 "그래서 평소에도 상대가 혹시 나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배재고 야구부 응원 논란 이후 SNS에서는 "나도 비슷한 지역 비하를 겪었다"는 경험담이 잇따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간 개인의 경험으로 치부됐던 일상 속 지역 비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논의가 정치적 공방과 야구부 징계 수위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차별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3일 지역 비하를 경험한 청년 세 명을 인터뷰했다.
"너한테 홍어냄새 난다" 일상에 번진 혐오
| ▲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광주 관련 지역 비하 게시글. |
| ⓒ 디시인사이드 |
광주 출신 김아무개(25)씨는 "학창 시절 주변에서 내게 들으라는 듯 '홍어냄새 난다', '빨갱이 동네에서 온 것이냐'는 말했다"며 "이후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을 밝히지 않고 '서울 출신'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면접에서도 출신 지역을 밝히자 면접관의 표정이 굳거나 '광주 출신은 너무 드세서 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김씨는 "이번 배재고 응원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 일부 국회의원들의 망언을 보며 화나고 속상했다"며 "특히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했던 어머니께서 많이 힘들어하셨다"고 전했다.
청년들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지역 혐오가 일상적으로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20대 청년 박아무개씨는 "온라인상에서 호남 혐오를 많이 보면서 자랐다"며 "예를 들어 광주 연고 프로야구팀인 기아 타이거즈 관련 콘텐츠에는 줄곧 '홍어', '여권' 같은 지역 비하 단어가 담긴 댓글이 달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배재고 응원 논란과 같은 사안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박씨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거나 해외처럼 차별·혐오 발언을 처벌하는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 금지법 도입을 도입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서로 다른 공동체의 일원을 존중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임씨는 "지역 갈등을 정쟁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인에게 실질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며 "이들의 행동이 지역 비하나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짚고 이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재고 사태는 빙산의 일각" 지금 필요한 건
| ▲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
| ⓒ 연합뉴스 |
과거 노골적으로 표출되던 지역 비하가 최근에는 온라인 밈과 농담의 형태로 일상에서 반복되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과거에는 공개적이고 정치적인 방식으로 지역 비하가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일상에서 파편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누적돼 뿌리 깊게 형성된 혐오인 만큼 양상은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SNS, 온라인 커뮤니티,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특정 지역과 약자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문화가 계속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문화는 특히 초·중학교 학생과 청년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해결하려면 차별금지법처럼 혐오 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칠 수 있는 통합적인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지역 혐오를 줄이려면 현재의 사회적 현실과 온라인 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처벌과 교육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왜 여전히 이런 혐오에 이끌리는지 사회가 먼저 질문해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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