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공동체가 만들어낸 새로운 제국 [홍재화의 세상읽기]
2026.07.03 11:46
오늘날 대중문화 지형에서 '팬덤(Fandom)'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특정 연예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소수의 열성 집단을 뜻하지 않는다. 한류(K-Wave)의 폭발적 확산과 지속 가능성을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으로서의 글로벌 팬덤은,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문화적 공동체다. 과거의 대중문화 팬덤이 스타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보며 결속했던 수직적·종속적 구조에 기반했다면, 한류를 지탱하는 글로벌 팬덤은 스타와 팬이 동등한 위치에서 교감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수평적 공동체'의 성격을 명확하게 띤다. 스타는 다다를 수 없는 완벽한 신이 아니라,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팬들과 함께 성장 서사를 써 내려가는 파트너이며, 팬덤은 그 여정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위대한 조력자이자 동반자다.
이러한 수평적 연대와 상호작용의 정점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최근 전 세계를 다시 한번 뒤흔든 BTS의 세계 순방 공연이다. 이들의 공연은 단순히 가수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관객이 이를 감상하는 수동적인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스타와 팬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거대한 서사를 함께 완성해 나가는 축제이자 연대의 장이었다. 런던, 파리, 뉴욕, 도쿄 등 전 세계 대도시의 거리는 공연 수일 전부터 BTS의 상징색인 보라색으로 물들었고, 국적과 인종이 다른 수십만 명의 팬들이 광장에 모여 스스로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은 기획사가 주도하는 공식 행사 외에도, 자신들이 직접 기획한 플래시몹을 선보이고, 스타의 철학이 담긴 가사를 공유하며 깊은 유대감을 나누었다. 무대 위와 아래라는 물리적 경계는 존재했을지언정, 그 공간을 채운 정서적 에너지는 완벽하게 수평적이었다.
이 수평적 공동체가 가진 가장 놀라운 특성은 바로 지치지 않는 자율성과 압도적인 생산성이다. 한류 팬덤은 기획사나 미디어 대기업이 콘텐츠를 제공하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소비자에 머물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들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동시에 스스로 재창조하고 확산시키는 '프로슈머(Prosumer)'로서 기능한다. 이번 BTS의 순방 공연 기간에도 지구 반대편의 팬들은 한국어 가사와 무대 멘트에 담긴 섬세한 정서와 맥락을 실시간으로 이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번역가가 되었다. 자막을 만들고, 무대 연출에 숨겨진 세계관을 분석하는 평론가가 되며, 2차 창작물을 양산하는 크리에이터가 되어 디지털 네트워크 공간을 메웠다. 이 과정에서 한류라는 문화적 자산은 멈추어 있는 상품이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손을 거쳐 실시간으로 증식하고 진화하는 유기체가 된다.
이러한 수평적 연대는 거대 자본의 마케팅 공식이나 주류 미디어 권력의 통제를 완전히 초월한다. 기존의 할리우드나 서구 팝 시장이 막대한 자본력과 거대 유통망이라는 수직적 권력을 통해 글로벌 트렌드를 강제했다면, 한류 팬덤은 오직 자신들만의 자발적인 소통과 유대감만으로 지구 반대편의 차트와 트렌드를 바꾸어 놓는 기적을 일상적으로 연출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초연결된 글로벌 팬들은 인종, 국경, 언어, 종교의 차이를 아무런 걸림돌 없이 뛰어넘는다. BTS 순방 현장에서 미국 뉴욕의 팬과 브라질 상파울루의 팬, 그리고 한국 서울의 팬이 동일한 서사에 공감하며 실시간으로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수직적 권력구조가 해체된 자리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수평적 연대의 진면목이다.
결국 한류 팬덤이 이룩한 생태계는 '지배하지 않는 권력'이 어떻게 세상을 가장 평화롭고 강력하게 매료시킬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완벽한 모델이다. 이 거대한 조직에는 명령을 내리는 총사령관도, 복종해야 하는 하급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강요받거나 지배당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가치와 애정, 그리고 선한 영향력이라는 순수한 지향점을 바탕으로 결속한다. 이들은 이번 순방 공연 중에도 스타의 이름으로 글로벌 기후 위기 대응에 기부하고, 공연이 열리는 도시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캠페인을 주도하며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사회적 가치로 승화시키기까지 했다.
자발적 참여와 수평적 연대라는 단단한 주춧돌 위에 세워진 이 거대한 공동체는, 과거 그 어떤 무력이나 자본의 제국도 달성하지 못했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칼과 총, 혹은 돈의 힘으로 타자를 굴복시키는 지배의 서사를 끝내고,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영혼으로 연결되는 가장 평화롭고 역동적인 '수평적 문화 제국'의 도래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를 넘어 연대로, 종속을 넘어 주체로 나아가는 한류 팬덤은 21세기 새로운 문화 권력의 지형을 바꾸는 가장 아름다운 혁명이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홍재화 필맥스 대표
[약력] 중앙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 KOTRA 파나마무역관, 홍보부 근무
[저서] 무역&오퍼상 무작정 따라하기, 수출 더 이상 어렵지 않아요, 어제를 바꿀 순 없어도 내일은 바꿀 순 있다, 해외무역 첫 걸음 당신도 수출 쉽게 할 수 있다 등 다수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drimtru
조세일보 /홍재화 필맥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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