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죽으면 책임질게" 11분간 구급차 막은 택시기사…알고 보니 47건 사고 낸 보험사기범 [오늘의 그날]
2026.07.04 00:02
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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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 이거 처리부터 하고 가라.”
2020년 7월 4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응급환자가 탄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기사 사건 수사에 강력팀을 추가 투입했다. 이로써 기존 강동경찰서 교통사고조사팀, 교통범죄수사팀에 더해 강력팀까지 가세한 대규모 합동 수사 체계가 구축됐다.
당시 이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지 며칠 만에 7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전국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또 사설 구급차 이송 방해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11분간 구급차 막아선 택시=사건은 2020년 6월 8일 오후 3시 15분쯤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호흡곤란을 겪던 80대 말기 암 환자를 태운 사설 구급차가 차선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구급차 기사는 택시기사 A씨(당시 31세)에게 “응급환자가 있으니 병원에 모시고 사건을 해결하겠다”며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A씨는 “지금 사고 난 거 사건 처리가 먼저”라며 이를 거부했다. 유족이 공개한 블랙박스 영상에는 A씨가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 “가려면 나를 치고 가라”, “119를 부르겠다”며 구급차 앞을 가로막는 모습이 담겼다. 심지어 “응급환자가 아니면 50만원을 달라. 안 주면 민원 넣겠다”는 취지의 말까지 했다.
응급환자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A씨는 약 11분 동안 구급차의 진로를 막았다. 환자는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응급실 도착 약 5시간 만에 결국 숨졌다.
당시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A씨에게 업무방해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블랙박스에 여러 차례 담긴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는 발언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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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겠다’던 택시기사의 정체는 상습 보험사기범=경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택시기사 A씨의 정체도 밝혀졌다. 만 31세의 젊은 나이였던 A씨는 지난 13년간 관광버스, 화물차, 택시 등을 몰며 무려 47건의 교통사고에 연루된 상습 보험사기범이었다.
운전병 출신인 A씨는 과거 사설 구급차 업체 5곳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구급차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설 구급차가 불법 영업(총알택시)을 의심받더라도 환자 이송이 급해 쉽게 합의에 응한다는 점을 노려 일부러 사고를 낸 뒤 합의금을 뜯어내 왔다.
실제로 2017년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다른 사설 구급차를 받아내 돈을 챙긴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A씨가 그동안 보험사에서 받아 챙긴 보상금만 1억2000만원에 달했다.
경찰은 A씨를 사기·보험사기방지특별법·업무방해·공갈미수·특수폭행(고의 사고) 등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반성문 25차례 내고 2개월 감형…법원의 판단은 ‘징역 1년 10개월’=하지만 A씨는 고의 사고 혐의를 줄곧 부인했다. 오히려 구급차 기사를 폭행죄로 고소했고, 보험사로부터 차량 수리비 명목으로 72만원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A씨에게 특수폭행, 특수재물손괴, 업무방해,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장기간에 걸쳐 고의로 사고를 내거나 단순 접촉 사고에 대해 입원이나 통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보험금과 합의금을 편취하는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설 구급차를 상대로 고의 접촉 사고를 내고, 환자가 탑승한 걸 확인했음에도 이송 업무를 방해한 위험성을 고려하면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응급환자 사망과 A씨 행위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기소가 이뤄지지 않아 이는 법원의 판단 범위가 아닌 만큼 양형에 참작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A씨는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고, 재판 과정에서 총 25차례의 반성문을 제출하며 감형을 시도했다. 다만 정작 피해 유족에게는 단 한 번도 직접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상대 보험사와 합의한 점 등을 이유로 원심보다 2개월을 감형한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했다. 검찰과 A씨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으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김도연 AX콘텐츠랩 기자 dore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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