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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혼내려다 아들 죽인 아버지... 오래 곱씹어보게 되는 그림

2026.07.04 14:46

[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가족이란? ② 사적·공적 영역의 혼합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44년
ⓒ 퍼블릭 도메인

가정이 그리 안락하지 않고, 외부 세계와 분리된 안식처도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도 있다.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가 눈길을 끈다. 러시아 국민에게는 톨스토이와 함께 국보로 통하고, 러시아 사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도 꽤 많이 소개된 대표작 중의 하나다.

가족에게 불청객이 되어버린 남자

일단 어떤 상황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 남자가 걸어 들어오는 방안이 그림의 무대다. 낡은 외투로 봐서는 오랜 기간 집을 비웠다가 막 돌아온 순간이다. 그런데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족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긴장감이 감돈다. 낯섦·경계·불안의 분위기가 방안을 온통 지배한다. 남자도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쭈뼛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맞은편에서 검은색 옷을 입고 엉거주춤 일어나는 여인이 어머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리기 위해 검은 천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는 아들을 반기는 어머니의 모습과 다르다. 우리라면 버선발로 뛰쳐나와 내 자식 돌아왔냐며 반겨야 하는데 그러한 반응과는 거리가 멀다. 반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을 못 하고 어색한 자세로 바라본다.

뒤에서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부인도 남편이 아니라 불청객을 맞이하는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피아노에 앉아 있는 누이는 몸만 틀어 힐끗 바라볼 뿐이다. 탁자 앞의 딸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다리까지 오므린 모습으로 두려움을 보인다. 아들은 여동생의 어깨 너머로 무심하게 쳐다본다. 어느 한 사람 반기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단란한 가정에 이물질이 낀 듯하다.

그림 속의 낯설고 이상한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서유럽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점차 근대적 공화국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완강하게 전제군주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남자는 러시아 차르 군주제에 반대하여 투쟁하던 혁명가다. 오랜 시베리아 유형을 끝내고 막 집으로 돌아왔다.

혁명가로 사는 동안, 시베리아 유형만이 아니라 활동과 조사·재판과정에서도 가족의 고통이 컸으리라. 집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가정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경계의 눈빛으로 나타난다. 혁명가도 모자를 쥐고 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한 발을 디뎠지만 다음 발을 어디로 향할지 망설인다.

약간의 사정을 알고 나면 그림이 주는 감동이 다시 보인다. 레핀의 사실주의적인 묘사력이 도달한 경지가 대단하다. 각자의 감정선이 어떻게 흐르는지가 그대로 전달된다. 표정·눈빛·손짓 하나까지, 심지어 방안에 흐르는 공기까지도 느껴진다. 시대적인 어두움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사실주의의 성격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살리고 있다.

레핀도 그림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일단 완성한 후에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여러 차례 수정했다. 이 그림 전에 다른 구도와 인물을 통한 시도도 있었다. 1년 전에 그려진 다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를 보면 같은 제목인데, 낡은 외투를 입고 방안에 발을 들여놓은 주인공이 여성이다.

 일리야 레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43년
ⓒ 퍼블릭 도메인

이 여성도 죽음을 넘나드는 유형 생활을 마치고 막 돌아온 혁명가다. 모든 가족의 경계와 불안한 눈빛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앞의 그림에 비해 팽팽한 긴장감의 정도가 덜하다. 인물의 표정과 동작을 통한 미세한 감정 전달도 덜하다. 등장인물이 적어서 전체 구성이 단순한 약점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작업에 들어간 결과가 앞의 그림이 아닐까 싶다.

두 그림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사람은 혁명가다. 방 안에서 제일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일 게 분명하다. 오랜 기간 고립된 유형을 끝내고 돌아온 길이다. 일단 살인적인 추위와 질병의 위험에 방치된 유형 기간 자체가 고통스럽지만, 집으로 돌아와도 끝나지 않는다. 언제 어디를 가든 미행이 붙어있다는 공포가 따라다닌다.

아무런 정치 활동을 안 해도 혹시 정보기관의 정치 조작에 휘말려 다시 잡혀가는 게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한다. 독재의 감시와 억압의 눈길 아래에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앞날의 불투명함에서 오는 불안도 크다. 여기에 가족의 낯선 시선까지 덧씌워지면서 삼중·사중의 불안이 닥쳤을 것이다.

경계심이 가득한 가족의 반응도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간다. 그가 혁명운동을 하는 동안 가족은 얼마나 숨죽인 세월을 보냈겠는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마음을 졸인 날이 이어졌을 것이다. 조사를 받을 때 가족들도 불쑥 찾아온 공안 기관원에게 들들 볶인다. 일부는 붙잡혀 가서 협박을 동반한 조사를 당하기도 한다.

시베리아 유형 기간에도 감시 눈길이 멈추지 않는다. 평소에도 정보기관의 주시 대상이 되어 일상생활이 위축된다. 이에 더해 제대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고, 경제적인 고통도 크다. 아이들도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예민한 심정이 경계의 눈빛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가족이 과연 개인의 안식처이기만 한가?

그림은 가정이 안식처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혁명가 가정이라는 특수한 사정일 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라. 결혼하겠다는 후배가 있으면 뭐라고 충고하는가? 아주 현명하고 행복한 선택이라며 축하만 하는가? 고작 위안한다는 말이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거라면, 차라리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냐 정도다. 만약 안식처이기만 하면 많은 사람이 후회를 운운할 이유가 없다.

아이들을 위해 참고 산다는 푸념을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정말 자식들에게 가정이 마음을 터놓고 살아갈 편안한 곳이기만 할까? 딸이든 아들이든 고민을 부모에게 편하고 솔직하게 꺼내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부모와 자식 사이의 대화 단절은 한국이든 어디든 가정 내의 공통 현상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부모의 간섭에 진절머리를 치는 경우가 흔하다.

심하면 가정 내에서 폭력을 겪기도 한다. 배우자 사이의 폭력, 부모가 자식에게 행사하는 폭력 말이다. 가족 내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종류도 다양하다. 일방적·강압적인 태도로서의 폭력, 그 한 부분이기도 한 폭력적인 언어, 나아가서는 신체의 고통을 동반하는 말 그대로의 폭력 사태도 벌어진다. 현대사회에서는 완화되었지만, 전통사회에서는 극단적인 폭력도 흔했다.

 일리야 레핀 <이반 뇌제와 아들 이반> 1883년
ⓒ 퍼블릭 도메인

가장 극한 상황을 보여주는 작품이 일리야 레핀의 <이반 뇌제와 아들 이반>이다. 1581년에 일어난 이반 4세의 끔찍한 사건을 담고 있다. 고작 세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에 오른 후 러시아 최초의 차르가 된 이반 4세는 잔혹한 폭군으로 유명했다. 그림은 그의 잔인성이 정치적 반대자만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나타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사건은 세 겹 치마를 입는 황실 전통을 어기고 임신한 며느리가 편한 치마를 입은 데서 비롯되었다. 황제는 황족의 품위에 먹칠했다며 쇠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폭행을 만류하던 황태자가 아버지의 쇠 지팡이에 맞아 죽었다.

그림은 한바탕 폭력이 휘몰아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반 4세가 숨통이 끊긴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다. 한 손으로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막아보지만 손가락 틈새로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주변의 물건도 광기 어린 행동의 흔적을 담고 있다. 뒤로는 의자와 쿠션이 나뒹군다. 바닥의 양탄자가 심하게 헝클어져 있어서 긴박했던 순간을 보여준다.

가족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일리야 레핀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불청객이나 이물질로 바라보는 시선과 아들에게 쇠 지팡이를 휘두르는 아버지의 폭력적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단지 개인의 특수한 사정이 이유인가, 아니면 사회적 요인이 결합해 있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은 가정이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사회적 억압과 갈등이 가족 구성원 내의 균열로, 극단적인 가부장제가 권력과 가정에서의 폭력으로 이어진다.

억압적인 사회의 그림자가 가정의 인간관계에 짙게 영향을 끼친다. 가정이 완전하게 고립된 섬이 아닌 이상, 사회라는 공적 영역에 불가피하게 연결되거나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고 참여한다. 어떤 부분은 점선으로 연결되고, 어떤 부분은 실선이다. 이 연결 통로를 타고 사회는 외부적인 의도에 맞게 가정을 움직이려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가정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뒤섞인 공간이라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문제의식이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설명한 가정의 성격 변화도 이를 탐구한 내용이다. 우리는 서구를 대표하는 고대사회로 그리스와 로마를 하나로 묶어 생각한다. 하지만 가정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다른 생각과 관습이 지배했다.

"가정과 가족생활이 내밀한 사적 공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로마인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 덕택이다. 이들은 그리스인과 달리 결코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영역을 위해 희생시키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 두 영역은 공존 형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 의하면 그리스 도시국가는 가정이라는 자연적 결사체와 정치적 조직체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시민은 사적 생활 외에 두 번째 삶인 정치적 삶에 속했다. 두 가지가 결합해 있기는 하지만 폴리스의 의식적 활동 비중이 크기에 공적인 영역이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전까지 오랜 세월 혈연 중심의 씨족·부족의 자연적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인위적인 국가체제가 만들어지는 단계이니 공적인 필요를 더 강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적인 영역의 이익을 위해 사적인 영역이 희생되었다. 이에 비해 로마제국은 상당 기간 국가체제가 안정된 단계라는 조건이 반영되어 사적 영역에 대한 외적인 개입이 그리스보다 덜했다.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별은 훨씬 덜 선명한 방향으로 변했다. "가계 또는 경제활동이 공론 영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었다. 근대 이전까지 가정의 경제활동은 소규모 농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대가족 형태가 지배하던 때이니 가족 내부의 노동력만으로도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하는 근대의 새로운 조건은 가정의 경제활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바뀌면서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와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생계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소규모 토지에서의 농경과 달리 대공업에서의 공장은 개별 노동자의 가족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대규모 노동력 공급은 사회적·제도적인 시스템에 의해 가능하다. 노동은 이제 개인적 성격을 상실하고 사회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개별 가정의 생계가 사회에 의존하면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던 옛 경계선은 불분명하게 되었다. 가정에서 공적인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증가했다.

근대 유럽에서 일부 사람은 공업화로 인한 경제적인 압박과 혁명과 반혁명의 정치적 격변에 지쳐 가정의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 하지만 문화적인 부분에서의 유행이었을 뿐 경제적·사회적 부분에서 가정은 여전히 두 영역이 뒤섞여 있다. 아렌트가 보기에 "소유와 부가 역사적으로 어떤 사적인 문제나 관심사보다도 공론 영역과 더 많이 연관"되었다는 점에서 가정이 순수하게 사적인 안식처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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