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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의 두루뭉술한 4,755조 원[메아리]

2026.07.04 04:30

기업들 수천조 원 규모 투자 계획 내놔
역대 정권서 말잔치로 끝난 경우 많아
李 정부·지자체 '적극 지원' 약속 지켜야

편집자주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뉴스룸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에서 열린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 앞서 증강현실(AR) 글래스를 보고 있다. 아산=왕태석 선임기자


지난 일주일은 대한민국 산업계 역사에서 가장 박진감 넘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삼성전자(2,655조 원)와 SK그룹(2,100조 원)이 호남, 충청, 영남 등에서 진행할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4,755조 원을 쏟아 붓겠다고 했다. 여기에 현대차, LG, 한화, 셀트리온 등 다른 기업들도 수조~수십조 원을 쓴다고 한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AI 3대 강국 달성을 위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선 '진짜 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특히 기업들이 구체적 시간표를 내놓지 못한 걸 보니 더더욱 그렇다. '호남 반도체'만 해도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안에 완공을 목표로 도전한다고 했지만 삼성전자와 SK는 언제 자금을 쓰고 공장을 짓겠다는 내용을 똑부러지게 말하지 못한다.

도리어 SK하이닉스는 6월 30일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고쳤는데 여기에는 "생산 시설이 확충되는 시점에 글로벌 수요가 둔화될 경우 생산 시설 투자로 인해 재무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중장기 투자의 구체적 일정과 규모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주요 고객사 투자 계획, 재무 여건, 정부 지방자치단체와의 인허가 및 인프라 구축 협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루 앞서 삼성전자도 공시에 "시장 상황 및 당사 경영 환경 변화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기업 입장에선 수십 년을 좌우할 중요한 투자라 신중한 건 당연하다. AI 시대에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적으로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마이크론, 중국 창신메모리(CXMT) 등 세계 곳곳서 경쟁적으로 팹을 늘려 2, 3년 뒤에는 메모리 공급량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시장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이 두루뭉술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어떤 지원 카드를 제시하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보고 움직이겠다는 것. 이는 기업들이 그동안 정권들을 거치며 키워 온 생존 본능의 결과물이다. 모든 대통령이 멋진 결과물을 만들겠다며 자신했지만 대부분 끝은 초라했다. 그러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최소 이전 정권 때보다는 더 많이 신경 써달라고 한다. 기업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도 정치와 엮이면 골치 아파지는 경험을 숱하게 하다 보니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 주도 산업 정책 특성상 정권교체에 따라 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일본 니혼게이자이의 평가도 있다.

이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영웅"이라 부르며 허리를 90도 숙이는 파격을 보였다. 이제 갓 임기를 시작한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모든 걸 다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필요한 건 행동이다. 기업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다 밝혔다. ①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원자력발전소 확대,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 발전 추진 ②깨끗한 물 충분히 제공 ③반도체에서만큼은 주 52시간제 유연 적용 ④인재들이 지방에 가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게 교육, 문화 환경 업그레이드. 이 중에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이 대통령이 유지했던 가치관과 충돌하는 내용도 많다. 실천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들이 말잔치로 넘어가려 한다면 4,755조 원은 신기루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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