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메시, 그래도 여전히 무섭다
2026.07.03 15:21
변신의 귀재…시대와 나이에 따라 진화하며 그때마다 임무 완벽 수행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 공이 없는 순간에는 마치 산책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 수비수들이 뛰어다니는 동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빈 공간을 슬금슬금 찾는다. 그러다 먹잇감이 사정권에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시간이 빨라진다. 메시가 달리고, 찌르고, 마무리한다. 예전 메시가 번개였다면 지금 메시는 덫이다. 뛰는 시간은 줄었지만, 한 번 걸리면 끝장난다. 단 한 차례 패스, 단 한 번의 움직임, 이어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한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9·아르헨티나)가 지금 북중미 월드컵에서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다. 이처럼 메시는 시대와 나이에 따라 다른 선수로 변신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메시의 첫 번째 역할은 오른쪽 측면을 지배하는 드리블러였다. 메시는 16세였던 2003년 조제 모리뉴 감독이 이끈 포르투(포르투갈)와의 평가전에서 바르셀로나 1군(비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메시는 오른쪽에서 공을 잡아 안쪽으로 파고드는 전형적인 왼발 윙어였다. 당시 바르셀로나 간판스타 호나우지뉴는 메시를 처음 보고 “그는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고 예언할 정도로 메시는 시작부터 탁월했다.
바르셀로나 세대교체가 시작된 시기에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은 메시가 더 자주 공을 만져야 팀이 강해진다고 판단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에서 나왔다. 메시는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유형이 아니라서 메시 뒤에 위치한 풀백에게 쏠리는 부담이 점점 커졌다. 결국 과르디올라 감독은 메시가 측면이 아니라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9년 5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전은 메시의 전술적 진화를 상징하는 경기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메시를 윙어가 아니라 중앙 공격수 위치에 세웠다. 당시 메시는 골만 넣는 전통적인 스트라이커와는 달리 아래로 내려와 공을 받고, 상대 수비수를 끌어냈으며, 공간을 만들고, 마무리까지 했다. 결과는 바르셀로나의 6-2 대승이었다. 그날 이후 수비수들은 ‘메시를 어디에서 막아야 하는지’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현대 축구에서 ‘가짜 9번’ 메시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이 실험은 유럽 정상 무대에서도 통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2009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메시를 중앙에 놓았고, 메시는 헤더 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끌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메시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69경기에서 96골을 넣었다. 2009년 처음 받은 발롱도르는 이후 그의 전유물이 됐다. 그는 2010년, 2011년, 2012년, 2015년, 2019년, 2023년에도 발롱도르를 받으며 결국 통산 8회 수상자가 됐다. 첫 수상은 22세 때였고, 마지막 수상은 36세 때였다.
메시의 다음 변신은 바르셀로나 황금 미드필더진이 해체되면서 찾아왔다. 사비가 2015년 팀을 떠났고, 이니에스타도 2018년 그랬다. 이전까지 메시는 결정적인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선수였는데 이때부터는 팀의 엔진 역할까지 떠맡았다. 골잡이이자 10번, 가짜 9번인 그는 더 깊은 위치로 내려와 공격과 미드필더를 잇는 고리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고, 그 또한 성공적으로 해냈다. 메시는 골 넣는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신의 업무에 추가한 것이다. 미드필더로의 변신이 옳았다는 것을 기록이 보여준다. 2019~2020시즌 그는 프리메라리가 33경기에서 25골 22도움을 기록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인 2020~2021시즌에는 35경기 30골 11도움을 올렸다. 파리 생제르맹 이적 첫 시즌에는 34경기에서 11골 15도움을 뽑았다. 클럽 경력에서 처음으로 도움 수가 득점보다 많아진 시즌이었다. 분석가들은 이를 두고 “골잡이 메시가 패스 마스터 이니에스타가 됐다”고 표현했다.
대표팀에서도 메시는 숱한 변화를 겪었다. 그는 2011년 아르헨티나 주장 완장을 찼지만,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에서는 실패의 상징처럼 다뤄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독일에 연장패했고, 2015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과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결승에서는 칠레에 승부차기 끝에 졌다. 2016년 결승 패배 뒤 메시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이전과는 다른 리더로 돌아왔다. 메시는 2019년 코파 아메리카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패한 뒤 남미축구연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침묵하는 천재가 아니라 팀을 대신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리더가 됐다. 아르헨티나는 2021년 브라질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 결승에서 브라질을 꺾고 28년 만에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메시는 마침내 대표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국가대표로서 메이저 우승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털어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는 그동안 거쳐온 모든 형태가 결합한 선수였다. 준결승 크로아티아전에서는 과거의 측면 돌파 능력을 재현했고, 프랑스와의 결승에서는 경기 흐름을 읽고, 패스를 넣고,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한 가지 역할로 설명할 수 없는 전방위적인 전천후 선수가 됐다.
진짜 위대한 이유는 무한변신의 성공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메시는 특정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았다. 윙어는 거의 하지 않았고, 가짜 9번은 상황에 따라 수행했다. 득점형 플레이메이커의 비중도 이전보다 줄었다. 이제 메시는 가장 많이 뛰는 선수가 아니라 가장 적게 뛰면서 가장 큰 영향을 남기는 선수가 됐다. 그래도 아르헨티나 공격의 중심은 여전히 메시였다. 메시는 조별리그 1차전 알제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0 승리를 이끌었다. 아르헨티나는 알제리, 오스트리아, 요르단을 차례로 꺾고 32강에 진출했다.
요르단전은 현재 메시의 역할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였다. 메시는 선발이 아니었다. 그는 후반 15분 투입돼 20분 뒤 프리킥으로 쐐기골을 넣었다. 영국 가디언은 “요르단전은 메시 투입 전까지는 느슨하게 흘러갔지만, 메시가 들어온 뒤 경기의 긴장감과 볼거리가 살아났다”고 평가했다. 리오넬 스칼로니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은 “메시는 사람들이 말하는 숫자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90분을 뛸 수도 있었지만, 동료들에게 출전 시간을 주고 다음 경기를 위해 자신을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메시가 이처럼 걸으면서도 자기 몫을 해주는 데는 뛰어난 동료들의 존재가 컸다. 이번 월드컵에 나선 아르헨티나에는 메시가 없어도 골을 넣고 승부를 결정할 선수가 과거보다 많아졌다.
현재 메시는 많이 뛰기보다 많이 걷는다. 과거 이를 비판하는 시선이 지금은 완전히 변했다. 이제 메시는 경기 내내 사냥하는 치타가 아니다. 적잖은 시간을 쉬다가도 단 한 차례 습격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사자가 됐다. 계속 뛰지 않아도 가장 먼저 답을 찾아내는 게 메시다. 메시가 위대한 이유는 득점 수, 어시스트 수, 우승 트로피 개수에 있지 않다. 시대가 바뀌고 몸이 달라질 때마다 자신도 함께 바뀌었고, 그 변화가 매번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걸어 다니는 메시가 전성기의 마라도나도 이루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2연패를 이룰 수 있을까. 변신의 축구 귀재를 향한 세계 팬들의 시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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