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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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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적이 누굽니까?” 어쩌다 이걸 물어봐야 하는 나라가 됐나

2026.07.04 00:35

[아무튼, 주말]
분단국 청년의 분노
‘주적 챌린지’ 해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 76주년 기념일에 '국방과학연구기관들에서 조직한 중요 무기시험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이날 우리 수도권의 군사기지와 주요 기반시설을 목표로 명시한 전술탄도미사일 등의 시험 발사가 이뤄졌다./조선중앙통신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은 누구입니까?”

오랫동안, 입 밖에 내어 물을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6·25 전쟁 이래 76년간 우리 국민 수십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앞으로도 침략하겠다고 협박하는 집단은 단 하나니까. 모든 아들들이 목숨 걸고 군대 가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게 요즘 가장 ‘핫한’ 질문이다. 선거철 거리에서, 국회 청문회에서, TV 토론과 유튜브·숏폼에서 “주적이 누구냐”는 문답이 밈(meme·인터넷 유행)이 됐다.

질문에 관심이 쏠리는 건 희한한 답이 많다는 뜻. 정치인 입에서 상식과 다른 답이 나오는 데 분노한 이들은 그 기상천외한 반응을 모아 놀림거리로 만들어 반격에 나섰다. 세계 유일 분단국의 ‘주적 챌린지’라는 블랙 코미디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적론을 놀이로 만든 젊은층

6·3 지방선거 때 지역 공약과 스타벅스, 공소 취소 등 다양한 현안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지만, 그중에서도 핫이슈는 ‘주적 챌린지’였다. 5월부터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각지의 후보에게 “우리의 주적이 누구죠?”라는 기습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담는 것. 짧으면 5초, 길어야 15초. 틱톡·인스타에서 숏폼으로 소비되기 좋은 소재였다.

보수 정당 후보들은 “북한이죠” “당연히 북한”이라고 짧게 답했다. 반면 진보 정당 인사들은 답을 안 하거나, 답이 장황해지거나, 역공이 나왔다. 민주당의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는 말없이 자리를 피했고,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는 “내란 세력 아니냐”고 했다.

지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년들이 각 지역 후보들에게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 장면. 당시 박찬대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는 "내란 세력"이라고 답했다. /유튜브

김상욱 울산시장 후보는 “대한민국에 주적이 어딨어요?”라고 되묻고, “북한이 우리 국민의 생명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주적으로 간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라고 했다. 하정우 부산 북갑 국회의원 후보는 “선거운동하는데 이렇게 물어도 되는 거냐”고 하다가 “21세기 AI 시대에 맞는 발전적 논의를 하자”고 했다.

이외 “주적을 생각해본 적 없어요”(한명희 조국혁신당 서울 강서구의원 후보) “요즘은 미국이죠.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이죠”(양수경 진보당 울산시의원 후보) “이 사람이… 어서 가세요. 당신 윤 어게인입니까?”(기노풍 민주당 성남시의원 후보) 같은 날 선 반응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다.

민주당은 ‘주적 챌린지’ 영상들이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자 긴장했다고 한다. 경남 지역 선거를 도운 한 당직자는 “어린 학생과 중장년층까지 따라와 주적을 물어 짜증 나더라”며 “북한이라 답하면 당성이 의심받고, 답 못하면 빨갱이가 되니 어떻게 하든 지는 게임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당 안팎 ‘일타 강사’들이 투입돼 주적 질문을 ‘극우의 십자가 밟기(과거 일본의 기독교 신자 색출법)’라 규정하고, “헌법과 법률에 ‘주적’이란 말이 없다” “북한은 위협이자 대화도 추구해야 할 존재”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이 주적” “주적 타령은 철 지난 색깔론”이란 ‘자체 모범 답안’을 학습시켰다.

서미화 민주당 국회의원은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냐? 주적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회를 총칼로 침탈한 내란수괴 윤석열과 잔당 아니냐. 언제 적 반공 몰이를 하고 있느냐”며 질문한 청년을 꾸짖었다.

6.3 지방선거 때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민주당 소속 하정우 부산 북갑 국회의원 후보(왼쪽)와 서미화 국회의원의 반응. /인스타그램

정권 따라 넣었다 뺐다 31년

거리의 ‘주적 챌린지’는 공직자의 안보관이라는 무거운 질문을 통해 실제 표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말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도 “주적이 누구냐, 북한 아니냐”는 질문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그는 “북한은 위협이자 동포”라며 끝내 즉답을 피했다.

주적은 군사 교리상 실무 용어로 주된 적, 즉 ‘한 국가가 안보상 가장 큰 위협으로 보는 세력’을 뜻한다. ‘가상적’ 또는 ‘위협’과는 강도가 다르다. ‘국내의 정적(政敵)’이나 ‘싫어하는 나라’는 더욱 아니다. 주적은 병력 배치와 훈련, 군 예산, 동맹과 외교 원칙 등 안보 핵심 요소를 재편하는 기준이 된다.

주적을 이르는 표현은 나라마다 ‘기준 위협’ ‘실질적인 심각한 위협’ ‘최대의 전략적 도전’ ‘전략 경쟁국’ 등으로 다양하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각각 중국을, 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를 1순위 주적으로 명시한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침공당한 후에야 러시아를 주적이라 칭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0년대 말 발간된 국방부 정신전력 교육지. 햇볕정책과 남북정상 회담 등 해빙 무드가 조성됐지만 2004년 노무현 정부 출범 전까지 국방백서와 일선 부대 교범에는 '북한이 주적'으로 명시돼있었다. /SNS

우리는 남북 체제 경쟁이 계속되는 동안 주적이 북한이라는 자연적 사실을 굳이 문서화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가 1994년 북한 특사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한 게 처음이다. 김대중 정부 때 해빙 무드에도 군은 주적이 북한임을 전제로 훈련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적’을 ‘직접적 군사 위협’으로 완화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라며 사실상 주적 개념을 되살렸고 이는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면서 북한을 뺐다. 최신판인 2022년 국방백서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란 표현이 부활했지만, 2026년 판에선 다시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백서 속 주적론이 국민적 질문이 된 건 2017년 대선 때다. 북한이 5차 핵실험까지 완료한 시점, TV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주적이 북한 맞느냐”는 질문에 “그건 대통령으로서 해선 안 될 말”이란 답만 반복했다.

2017년 4월 대선 TV 토론 때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답을 회피한 장면. 주적론이 '국민 질문'으로 유행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조선일보DB

그 불씨는 5년 뒤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SNS에 올린 “주적은 북한”이란 문구로 재점화됐다. 민주당 청년대변인이 “주적은 간부”라며 맞불을 놨다가 해촉되기도 했다.

미북 회담 실패 후 핵무기 고도화와 4대 세습에 주력해온 북한 김정은은 2024년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6·25 남침 전 김일성이 교시한 ‘국토완정’과 비슷하게 “유사시 대한민국 영토를 점령·평정·수복·편입한다”는 ‘령토완정’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도 이듬해 이재명 정부 첫 인사 청문회에선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정동영 통일, 김영훈 고용노동, 최교진 교육)란 발언이 쏟아졌다.

지난해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이 야당의 퇴장으로 비어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 청문회에서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여파였다. /남강호 기자

주적 없는 군대, 무엇과 싸우나

주적을 묻는 국민 중 왜 유독 젊은 층이 많을까. 진보 진영은 “역사를 잘 모르는 극소수 이대남의 극우·혐오 선동”이라거나 “집값 폭등과 취업난 등 기회 박탈에 대한 분노가 손쉬운 안보 공격으로 터진 것”이라며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문은 실존적이다.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20대를 군대에서 보내고 예비군에 동원되느냐”는 것이다. “주적을 명확히 하라는 건 분단국가 청년의 당연한 요구” “정전국인데 주적이 없다면 징병제부터 국가보안법, 국방 예산 등 모든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0대는 북핵을 이고 태어난 세대”라며 “이들은 2020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2024년 오물 풍선 같은 사건을 보면서 왜 저런 집단을 용인해야 하느냐는 ‘공정’의 시각으로 북한을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진보 진영이 ‘북한을 주적이라 부르면 대화·협상을 못 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전쟁 중에도 적과 대화하지 않느냐. 군사상 적을 적이라 부르는 것과 통일·외교 정책은 별개”라고 했다.

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교수는 “북한을 미화하며 주적 개념을 지운다면 일선 부대는 맹목적으로 훈련하게 되고 이는 국방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 백서상 주적이 사라졌던 과거 정권에선 일선 부대 지휘관들이 북한 지도를 펴놓고 전술을 짜거나 포격·진격 훈련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올 초 북한 중앙계급교양관의 행사 모습. "한국은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통일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동족 개념을 폐기하고 한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부르는 데 대해 “북한 정권은 체제 보호를 위해 한국의 번영을 파괴해야 할 적극적 동기를 가진 상태로, 군사적 협박을 허세로 봐선 안 된다”며 “통합 국력의 우세가 군사력의 우세를 의미하지 않는 만큼 상응하는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국민은 묻고, 정부는 답해야 한다. 주적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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