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산업 '국가 독점' 시대 저문다…커지는 민간 우주 생태계
2026.07.04 10:00
민간 발사 인프라 개방…미국식 뉴스페이스 육성 방식 본격화
대기업 투자·스타트업 성장…상업 우주 시장 빠르게 확대
국내 우주 산업이 국가 주도 연구개발(R&D) 중심에서 민간 중심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대기업이 발사체와 위성 등 핵심 분야에서 산업 기반을 다지는 사이, 스타트업·중소기업 생태계에서는 위성 제작부터 발사체 부품, 위성 데이터 서비스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며 우주 산업 전반의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연구개발 산업을 넘어, 민간이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미래 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주도에서 민간으로…바뀌는 우주 산업
정부도 이런 변화에 맞춰 민간 중심 우주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는 민간기업에도 국내 우주 발사 인프라를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우주항공청은 현재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구축 중인 민간 전용 발사장을 2027년 3분기 1단계, 2031년 1분기 2단계로 나눠 순차적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에는 자체 발사체를 개발해 발사를 시도하는 민간기업이 사실상 없어 관련 수요도 크지 않았지만, 최근 민간 발사체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해외 발사장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떠오르자 정부가 직접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은 미국이 민간 우주 산업을 육성했던 방식과도 닮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설립 초기 연이은 발사 실패로 존폐 위기에 몰렸던 시기에 상업궤도운송서비스(COTS) 프로젝트를 통해 단계별 기술 목표를 충족할 때마다 지원금을 지급하며 민간 시장을 키웠다. 여기에 로켓 엔진 설계 데이터와 우주 환경 시험시설 등 국가 인프라까지 민간에 개방하면서 스페이스X가 세계 최대 민간 우주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국내 우주 산업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92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국내 우주기술 개발이 본격화했고, 이후 국가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축적된 기술이 대학 연구소와 민간기업으로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주 산업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 시장의 패러다임이 국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이동하면서부터다. 과거에는 정부 수준에서만 감당할 수 있었던 천문학적인 개발비와 발사 비용이 재사용 발사체 개발과 저궤도 위성 기술이 도입된 이후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돈 먹는 하마'로 불리던 우주 산업이 민간기업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상업 시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백종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발사체 재사용 기술은 우주 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민간기업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며 "스페이스X 등장 이후 지난 60여 년간 이어져온 발사 비용 구조가 급격히 바뀌면서 하드웨어 제작 비용을 여러 임무에 분산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국내에 거점을 둔 민간 우주 기업 수도 이때를 기점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2014년 40개에 불과했던 국내 위성체 제작 기업은 지난해 102개로 1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발사체 제작 기업은 60개에서 108개로, 위성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장비 기업도 117개에서 188개로 늘어났다. 위성 제작에 집중됐던 국내 우주 산업이 발사체와 부품, 데이터 서비스까지 전 분야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우주 산업의 불모지로 꼽혔던 발사체 분야에서도 민간기업들이 하나둘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 민간 우주발사체 기업인 이노스페이스는 지난해 브라질에서 첫 상업 발사를 시도했으며, 올 3분기 재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이 자체 기술로 상업 발사 시장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국내 우주 산업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간 협력으로 커지는 K우주 생태계
민간 우주 산업이 짧은 기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정부 지원뿐 아니라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역할을 분담하며 생태계를 구축한 점이 꼽힌다.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와 기술 개발로 발사체·위성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부품과 위성 데이터, 서비스 등 세부 밸류체인을 채우는 구조다. 우주 산업 특성상 어느 한 축만으로는 산업을 키우기 어려운 만큼 국내에서도 민간기업 간 협업 생태계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1년 국내 최초 민간 위성 체계 개발·수출 기업인 쎄트렉아이의 최대주주에 오르며 국내 우주 산업 생태계 구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기존 항공 엔진과 항공전자, 우주발사체 기술에 위성 시스템 역량까지 확보하면서 발사체부터 위성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단순히 인수에 그치지 않고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쎄트렉아이는 인공위성 제작과 지상체 구축·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하며 국내 우주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대학 연구소에서 출발한 기업이 대기업의 투자와 산업 협력을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와도 미래 우주 수송 기술 확보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올해는 방산 분야에서 운영하던 혁신 성과 공유제를 우주 협력사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투자에 그치지 않고 대기업이 시장과 자금을 연결하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혁신 기술을 공급하는 민간 중심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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