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전
실리콘밸리 테크 행사를 보면 AI와 기업의 미래가 보인다
2026.07.04 09:01
애플이 지난달 8~9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개최한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WWDC 2026’ 기조 연설은 모두 사전 제작된 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른 기업들의 행사는 통상 무대에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직원이 올라 생방송으로 이뤄진다. 애플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사전 녹화 방식을 적용한 뒤 그대로 유지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디테일에 집착하는 애플답다”고 평가한다. 작은 설계 차이도 놓치지 않는다는 애플의 철학처럼 실수 없이 행사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주요 빅테크가 여는 콘퍼런스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일부 빅테크가 AI 붐을 주도하고 있다 보니, 이들의 발표 내용과 행사 분위기를 통해 해당 기업과 AI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테크 콘퍼런스에는 각 기업의 특징이나 전략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크고 화려해진다
테크 행사는 점차 크고 화려해지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기업용 AI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주요 고객사는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자 애쓰고 있다.
지난 4월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구글 클라우드의 ‘넥스트 2026′엔 3만명 이상이 참석하면서 예년보다 규모가 커졌다. 스포츠 분야에 적용된 AI 기술 시연을 하면서 미 스노보드 국가대표이자 세 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숀 화이트가 게스트로 등장했다. 행사장엔 인공 눈까지 뿌려져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 3월 미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2026′에 대해선 “AI 락 페스티벌”(월스트리트저널) “세계 최대 AI 축제”(CNBC)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비(非)테크 분야 기업 고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행사 장소도 다양해지고 있다. 본사를 떠나 잠재 고객이 있는 미 뉴욕 등으로 가는 것이다. 미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는 지난 4월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연례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PC·프린터 등 사무 기기 업체인 HP는 지난 3월 뉴욕에서 ‘일의 미래’를 주제로 연례 콘퍼런스를 열었다. HP 관계자는 “그간 본사에서 매년 행사를 열었다가 올해 이례적으로 주요 고객사와 잠재 고객사 본사가 있는 뉴욕으로 옮겼다”고 했다.
신제품 공개만큼이나 고객사와의 미팅도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행사장 곳곳에는 미팅룸이 마련된다.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는 경우가 많아지며 옆방에서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화이트 노이즈’가 나오는 에어컨을 배치하기도 한다.
◇젠슨은 ‘원맨쇼’
기업의 사업 구조에 따라 기조연설의 구성도 달라진다. 클라우드·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실제 도입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객사가 무대에 올라 실제 제품 사용기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달 16일 기업용 데이터 플랫폼사 데이터브릭스의 ‘데이터+AI 서밋’ 무대에는 펩시코 글로벌 데이터·AI 총괄, 노보 노디스크 IT 책임자 등이 올랐다.
AI 칩 최강자인 엔비디아, AI 모델 최강자인 오픈AI의 인사들은 테크 콘퍼런스의 단골손님들이다. AI 생태계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인 만큼 이들과의 협력 사실 자체가 기술력과 경쟁력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지난 달 2일 마이크로소프트(MS) ‘빌드’ 행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대만에서 일정을 소화하면서 화상으로 등장했다. 이 외에도 지난 2월 시스코, 5월 델 행사에도 참석했다.
애플은 가장 많은 수의 임직원을 기조연설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달 ‘WWDC 2026′에도 약 15명의 임직원이 등장해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했다. “다양한 사람이 팀을 이뤄 제품을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반면 스타성이 있는 CEO는 기조연설에서 ‘원맨쇼’를 벌이기도 한다. 황 CEO가 대표적이다. 그는 3시간 진행된 ‘GTC 2026′ 기조연설을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 재킷을 입고 홀로 진행했다.
◇남자 화장실에만 긴 줄
AI 기술 혁신을 이끄는 엔지니어 직군은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2025′에 따르면 전 세계 AI 전문 인력의 69.5%가 남성이다.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은 행사장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참석자 대부분이 남성이다 보니 남자 화장실에만 긴 줄이 늘어서는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지난달 8일 오전 9시쯤 WWDC 2026 현장 남자 화장실 앞에는 남성 10여 명이 대기 줄을 만들었지만 여자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성소수자(LGBTQ+) 인권 보호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주(州)로, 행사장의 ‘성 중립 화장실’ 운영도 빈번하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오픈AI의 개발자 콘퍼런스 ‘데브 데이’에서는 높은 남성 비율 탓에 성중립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화 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한 여성 참여자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 모이는 생방송...데모 실패도 잦아
오랜 신제품 개발과 행사 준비를 하는데도 AI 관련 기술의 데모 과장에 실패하는 일도 빈번하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장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첫 AI 글라스 ‘메타 레이븐 디스플레이’를 공개하는 ‘메타 커낵트’ 행사에서 시연에 실패했다. 메타는 “와이파이 오류”라고 설명했다.
무대 위에서 데모를 진행하는 직원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지난 5월 구글의 ‘I/O 2026’에서 무대에 오른 직원은 AI 글라스 데모를 성공적으로 끝낸 뒤 “다행히도 성공했다”며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하기도 했다.
애플이 기조연설 전체를 사전 제작하는 배경에도 과거의 실패가 있다. 2017년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 부사장은 아이폰X 공개 행사에서 아이폰X의 새 인증 기능인 페이스ID를 시연하다가 실패했다. 페더리기가 무대 위에서 난감해하는 모습이 생중계됐고, 준비돼 있던 다른 아이폰으로 데모를 이어갔다. 이 직후 애플의 주가가 폭락했다. 2010년에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무선망 과부하로 인한 데모 실패가 있었다.
◇자주 등장하는 ‘한국’
최근 미 빅테크 행사에는 ‘한국’이란 키워드도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미 빅테크에 한국 기업들이 중요한 협력사가 됐고, 서울·한식·K팝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적인 가치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지난달 구글 I/O에서는 핵심 파트너사로 삼성전자, 카카오, 젠틀몬스터 등이 언급됐다. 자영업자들이 쉽게 포스터나 홈페이지를 AI로 꾸밀 수 있다는 ‘캔버스’ 기능을 설명하면서 김밥 가게 사장이 한글 포스터를 제작하는 장면이 나왔다. 엔비디아 GTC에서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협력사인 삼성을 향해 황 CEO가 “땡큐 삼성”을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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