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전략의 균열…아베 유산에 힘겨운 日[최종일의 월드 뷰]
2026.07.04 07:00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인도·태평양사령부(USINDOPACOM)의 명칭을 태평양사령부(USPACOM)로 되돌렸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바꿨던 명칭을 8년 만에 복원했다. 국방부는 이를 "역사적 연속성의 복원"이라고 설명하면서, 책임 관할 구역은 물론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이라는 전략 기조도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개념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하나의 연결된 전략 공간으로 묶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탄생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복귀 결정은 다른 방향성을 시사한다. 이는 중국 견제 기조의 완화라기보다, 인도·태평양이라는 기존 전략 프레임 자체에서 일정 부분 이탈하는 흐름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인도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중심축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최근에도 감지됐다. 지난 5월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동맹 및 협력국들을 나열하며 인도를 가장 마지막에 언급했다.
이러한 기조 전환의 배경에는 전략 환경 자체의 재편이 있다. 지난 15년간 중국은 말라카 해협과 호르무즈 해협 등 해상 에너지 수송로 의존도를 줄이고,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육상 파이프라인 중심으로 에너지·물류 구조를 다변화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도보다 파키스탄이 전략적으로 더 유연한 협력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간 관계 악화 역시 변수로 작용했다. 트럼프 2기 이후 미국과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 문제, 무역 갈등, 인도·파키스탄 분쟁 이후 외교적 충돌 등으로 점차 거리가 벌어졌다. 지난 8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모디 총리가 응답하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오기도 했다.
이 균열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핵심 기제인 쿼드(Quad)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 인도에서 열릴 예정이던 쿼드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했고, 이에 따라 회의 자체도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모디 총리는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가 약화한 틈을 중국이 전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평가됐다.
동시에 미국은 인도와 앙숙 관계에 있는 파키스탄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 군 지도부를 활용한 비공식 외교 채널 구축은 인도 중심 전략의 약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관련 외교 접촉의 핵심 통로로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미·중 관계 조정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베이징 방문 이후 시진핑 주석과의 관계 안정에 무게를 두며 관세·기술·중동 현안 등 주요 갈등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다자적 봉쇄 전략보다는 양자 협상을 중심으로 한 거래적 접근으로의 전환을 시사한다.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NSS) 역시 같은 방향을 반영했다. NSS는 연합체 확대보다 상호주의, 부담 분담, 전략적 효용을 더 중시하며 이를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라고 규정했다. 중국과 관련해서도 상호 이익이 가능한 경제 파트너로 보는 관점이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중국을 "가치 기반의 적대국"으로 규정했던 이전 NSS와 대비된다.
한편 인도·태평양 개념은 2017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FOIP(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출발했다. 당시, 중국이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자, 일본 사회 전반에는 깊은 상실감과 위기감이 확산했다. 아베를 정치 스승으로 여기는 다카이치 사나에 현 총리 역시 진화형 FOIP를 외교·안보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중·일 관계가 크게 악화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의 군사적 강압과 경제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한 가치관을 가진 중견국들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안보 공약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방위 역량도 강화하고 있으며, 무기 수출 제한 완화도 적극 추진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5월 베트남과 호주를 방문하며 경제안보 협력 강화를 통해 FOIP 진화를 강조했다. 최근 인도 방문 역시 이러한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 정부로서는 경제 협력을 기반으로 안보 협력까지 확대하려는 구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주 인도 방문에 앞서 현지 일간지 기고문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열린 지역이란 강대국만이 자유를 누리는 곳이 아니라, 모든 국가가 외부의 강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곳"이라며 "이것이 FOIP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2일 회담 뒤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공동 성명에 따르면, "양 정상은 주요 민주주의 국가이자 주요 경제국으로서 양국이 자유롭고 열린, 법의 지배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할 책무가 있음을 다시금 강조했다. 이를 위해 모디 총리는 진화된 FOIP 구상을 환영했다"고 밝혔다. 인도가 일본 노선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고 보긴 힘들다.
인도는 쿼드를 중국 견제를 위한 실용적 협의체로 활용하면서도, 이를 중국을 적으로 고정하는 군사 블록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는 강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 경험, 경제적 상호의존, 그리고 러시아와의 군사·에너지 협력 구조 때문이다. 전략적 자율성을 외교의 핵심 원칙으로 삼는 인도는 특정 블록에 완전히 종속되기를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은 초기의 '대중(對中) 연합 전선' 구상과 달리 점차 응집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 변화와 거래 중심 외교, 그리고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 유지가 맞물리면서 반중 협력의 정치적 동력은 약화하고 있다. 그 틈에서 일본은 FOIP를 중심으로 규범 기반 질서를 유지하려 하지만 냉혹한 현실 정치의 무게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호주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