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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이 아니라 선언시국

2026.07.03 09:36

[주장] 모교에서 있었던 '6·3 지방선거 참정권 침해 규탄 시국선언'을 보고 든 생각
 지난 6월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향하는 육교에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선관위 해체’ ‘윤석열이 옳았다’ ‘멸공’ ‘이재명 당선무효’ ‘부정선거 아웃! 중국공산당(CCP) 아웃!’ 등이 적힌 도화지가 붙어 있다.
ⓒ 권우성

'선조'라고 했다. 절묘한 표현이었다. 몇 주 전 수요일 나는 경희대학교 청운관 앞에 있었다. 오후 6시, 해가 넘어가는 참이었다. 청운관 건너편 네오르네상스관 앞에서 '6·3 지방선거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있었다. 총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발언을 이어갔다. 그런데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시국선언이고 무엇이 발언인지 구분하기 벅찼다. 민주주의, 참정권, 자유, 정의를 벗어나는 말을 찾기 힘들었다. 학생회장들은 다루기 버거운 말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즈음 '선조'가 등장했다. 모 단과대학 학생회장의 발언이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렇다. '오늘은 우리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6월 10일입니다.' 나는 '선조'라는 말에서 턱 걸렸다. 선조는 누구인가? 다른 학생회장들이 '선배'라고 부르는 존재들과 같은 존재인가? '선조'와 '선배' 사이는 매우 멀어 보였다. 20분 넘게 이어지던 지루한 발언 사이에서 귀가 쫑긋한 순간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거기까지였다. 새로운 말은 없었다. 여전히 발언은 선언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큰 말들의 연속이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선조'는 '먼 윗대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그 학생회장의 발언을 맥락에 따라 해석하면 '선조'는 '1987년의 청년들' 즈음을 뜻할 테다. '선조'와 '선배'의 거리, '선조'와 현재 청년세대의 격차가 저 시국선언의 발원일지도 몰랐다. 적절한 지적이었다. 그런데 '선조'라고 호방하게 외친 뒤에 따라 붙는 말들은 너무 성글었다. 발언이 갖추어야 할 '무엇'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집집마다 된장찌개 맛이 다른 것처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도 '말맛'은 미묘하게 다르다. 지난 주말, 고향 친구가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 집회에 나가면서 SNS 게시물을 올렸다. 거기에 이렇게 썼다. '나라를 지키자.' 나는 친구가 써놓은 문구를 여러 번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몇 글자 바꾸어 보았다. '나라가 지켜달라.' 짧은 문장에서 겨우 몇 글자를 바꾸었을 뿐인데 내 생각은 세월호로, 이태원으로, 고공농성장과 단식농성장으로 내달았다.

국민국가의 발전단계를 '안보국가 - 발전국가 - 민주국가 - 복지국가'로 본다면, 한국은 어디에 와 있을까. 한국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이전 단계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 각 단계는 다음 단계의 필요조건이다. 민주주의 없는 '복지국가'는 어불성설이다. 지극한 민주주의가 복지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안보국가'와 '발전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지킬 수 있는 국가가 없다면 국민과 국가의 동욕자승(同欲者勝)은 불가능하다. '나라가 지켜달라'는 말은 어리광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학생회장이 놓친 '무엇'은 무엇인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동만과 은아에게 동시에 나타난 불가해한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까 고민하는 장면. 동만은 그 감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도와줘. 도와달라는 거예요." 간절함이 7% 정도 섞인 그 감정. 그렇다. '무엇'은 간절함이다. '무엇'은 절박함이다. '무엇'은 '도와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와 그 존재에 대한 이해다.

우리는 그 '무엇'이 낯설다. '선조' 이후, 그러니까 1987년 이후, 본격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열렸다. 후일담문학, 여성문학, 생태문학 등 여러 담론이 쏟아졌다. 한국 사회는 탈중심화, 탈권위화, 주변화, 개인화되었다. 김중식 시인을 빌려 쓰자면 '중심이 있었을 땐 적이 분명했었으나 이제는 활처럼 긴장해도 겨냥할 표적이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시대에 나고 자란 세대가 현재의 2030이다. 각자가 각자의 몫을 책임지는 세대. 각자의 몫을 책임지지 못하는 책임이 각자에게 있는 시대.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중 자살한 학생의 수는 2023년 214명, 2024년 221명이다. 그 수는 2015년부터 10년 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2030이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본 참사, 참사, 참사. 그 참사가 일상에도 교실에도 있다. '도와달라'는 말을 아끼면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당당하게 '지켜달라'고 말해야 한다. 7%의 간절함은 약자의 마음이 아니라 모두의 존재 조건이라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언이 말하게 하자. 참정권과 자유와 정의도 양도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선언에게 자리를 내어주자. 선언의 자리를 마련하는 발언으로, 기꺼이 발언으로 전락하자. 선언을 선언으로 만드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발언이다. 선언이 난무하는 시국선언은 시국선언이 아니라 '선언 시국'에 가깝다. 슬라보예 지젝은 '분노한 다음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언을 이어가는 발언, 혁명을 완수하는 일상,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분노를 풀어내는 간절함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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