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전
[르포] 교복만 봐도 울던 70세 학생…이젠 학교 사라질까 운다
2026.07.04 00:02
평균 69세 950명 매일 등교…2028년 2월 폐교 예정
설립자 별세에 ‘법인 아니면 승계 불가’ 법 규정이 발목
“지금이 인생의 봄”이라는 학생들, 탄원서 들고 거리로
“공부를 하려니까 허리 건강이 최고더라고,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니까 허리가 그렇게 아파.”
열아홉 수험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보다 반백 년을 더 산, 평균 연령 예순아홉 살 만학도가 내뱉은,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등굣길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지난달 29일 오전 7시35분, 일성여중고 마을버스 정류장. ‘마포10번’ 마을버스에서 분홍·빨간·민트·보라색 화려한 상의를 입은 만학도 열댓 명이 줄줄이 내렸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며 교문으로 향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중고생이었다.
이들이 향한 곳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2년제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인 일성여중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가난과 전쟁 같은 시대적 환경 탓에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 여성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곳이었다.
폐교 앞둔 만학도들의 보금자리
일성여중고는 2028년 2월 폐교를 앞두고 있다. 폐교는 학교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현행 평생교육법은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을 세울 수 있는 주체를 학교법인이나 공익재단법인으로 제한한다. 2008년 법 개정 이전에 개인이 세운 시설은 부칙에 따라 운영을 이어갈 수 있지만, 설립자가 세상을 떠나 설치자를 바꾸거나 지위를 승계해야 할 때 법인이 아니면 문을 닫아야 한다.
1953년 일성여중고를 세운 고(故) 이선재 교장은 생전에 이 문제를 풀려고 여러 차례 애썼지만 끝내 매듭짓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2028년 2월까지만 학교를 운영한다”는 유지(遺志)를 남기고, 지난 5월 10일 별세했다. 재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한시적 운영 시한이 그대로 폐교의 시한이 된 셈이다.
개교 이후 이곳을 졸업한 사람은 6만3034명. 지금도 950명이 매일 등교하고, 교직원 38명이 이들을 가르친다. 고3 졸업생은 20년 연속 100% 대학에 합격했고, 이곳을 거쳐 등단한 시인은 128명에 달한다. 석·박사 학위를 받은 졸업생도 여럿이다. 평균 연령 예순아홉의 학생들이 쌓아 온 기록이다.
“학교 오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요”
이 학교 학생들이 품은 배움에 대한 열정은 학교를 취재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1교시는 오전 8시30분에 시작하지만, 컴퓨터실은 그보다 한 시간 이른 7시30분에 문을 열었다.
오전 8시, 컴퓨터실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파스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교실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학생들이 ‘한컴 타자 연습’에 한창이었다.
체육 교사 장성연(45)씨는 “학생분들이 잘하고 싶어 하시는 것 중 하나가 컴퓨터”라며 “항상 아침 일찍 오셔서 이렇게 타자 연습을 하신다”고 설명했다.
“방가방가! 예쁘게 하고 왔네.”
“계란 없는 사람?”
본관 3층 중학교 3학년 3반, 1교시를 앞둔 교실이 분주했다.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슈퍼100 요거트’, ‘맥심 믹스커피’, 삶은 계란…. 저마다 챙겨 온 주전부리를 수업 전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어지럼증이 심해 한동안 결석했던 친구의 안부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1교시 수학을 맡은 김은경(52)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김 교사가 “오늘은 영어 암송 5분만 받겠다”고 말하자 ‘영어암송 통과증’에 도장을 받고 싶은 학생들이 저마다 앞으로 달려나갔다.
“굿모닝 티처, 마이 네임 이즈 송영자. 미들 스쿨, 더 떨드 그레이드 클래스 뜨리.”
1분단 첫째 줄에 앉은 송씨가 영어 문장 스무 개 남짓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영어 옆에 적어 둔 한글 발음을 그대로 읽는 것에 가까웠지만, “통과증 가져오세요”라는 선생님 말에 송씨는 활짝 웃었다.
일성여중고는 평생 가정과 사회를 위해 희생한 만학도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관왕 제도 등 수많은 상을 준다. 영어 암송 카드에 확인 도장 90개를 받으면 1관왕이 되는 식이다. 학생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상은 최대 100가지에 이른다.
이날 학생들은 평행사변형의 성질을 배웠다. 마주 보는 변은 대변, 마주 보는 각은 대각, 네 내각의 합은 360도…. 칠판에 적힌 문제를 노트에 옮겨 그리는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했다.
올해 일흔이 된 박모씨도 삼각자를 들고 마주 보는 두 쌍의 변을 평행하게 긋는 데 집중했다. 경기 성남 분당구에 사는 박씨는 학교에 오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제가 어릴 때 학비가 950원이었어요. 950원이 없어서 중학교에 못 갔어요. 중학생이 교복 입은 것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성균관대 옆에서 일을 했었는데, 학생들 볼 때마다 ‘나도 공부를 계속했다면 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 TV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일성여중고에 다니며 80대에 한글을 처음 배워 수능을 봤다는 학생의 사연을 봤다. ‘이 나이에 무슨 학교야…’ 싶다가도, 다니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난해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다.
박씨는 이곳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이수해 수능을 보고 싶다. 열심히 하다 보면 대학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꿈꾼다.
"우리 학교는 없어지면 안 돼요"
학교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재학생들이다. 폐교가 확정되면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졸업 후 진학할 고등학교가 사라진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분당에서 염리동까지 오는 박씨처럼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수능을 보겠다”는 꿈을 품은 이들에게 폐교는 곧 배움의 중단을 뜻한다.
유방암 투병 중인 박양자(72)씨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서울 은평구에서 염리동 학교까지 매일 출석한다. 이날 작은 꽃이 달린 두건을 쓰고 등교한 박씨는 최근 중학교 3학년이 됐다. 한자 수업 중 ‘나아갈 진(進)’자를 허공에 손가락으로 그리는 그의 눈빛은 여느 학생보다 빛났다. 박씨 역시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해 수능을 보는 것이 목표다.
박씨는 “학교를 다니며 지금이 인생의 봄이라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라도 배운다는 자긍심으로 살아가는데,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졸업해서 학교를 떠나는 것과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던 학생들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를 살려 달라는 탄원서를 들고 집 근처 이웃과 시장 상인,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는다. 한 장 두 장 모은 탄원서를 학생들은 매일같이 학교로 가져와 선생님 손에 쥐여 준다.
탄원서를 받아 든 수학 교사 김은경씨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학생들에게 매일 감동을 받아요. 다들 가정이 있으시잖아요. 투잡, 쓰리잡을 하시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오세요. 제가 딸뻘인데도, 교사라는 이유 하나로 저한테 존경심을 보여 주십니다. 사실 요즘 세상에선 좀처럼 느끼기 어렵잖아요.”
학교 측은 폐교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학교가 사라지더라도 배움의 기회만큼은 어떤 형식으로든 이어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교육감이 지정해 학교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화, 또는 서울시교육청이나 공공재단과 연계한 ‘공공형 전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왔다는 주부자(82)씨는 아들 덕분에 이 학교를 알게 됐다. 여든이 넘은 주씨는 중학교 3학년이다.
“60대 70대 80대 학생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학교가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우리 세대는 공부할 환경이 안 돼서 못 배운 사람도 많고, 산업 현장과 공장에서 일하면서 나라가 잘살게 되는 데 힘을 보탰잖아요. 그때 못 배웠으니 지금이라도 배우고 싶은 겁니다. 영어도, 수학도, 한문도 너무 잘 가르쳐 주시는데 우리가 어디 가서 이런 걸 배우겠어요. 죽기 전에 한 번 배우고 죽고 싶은데, 학교가 없어지면 못 배우잖아요. 이 학교는 없어지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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