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국군사관학교' 논의에 먼저 물어봐야 할 것
2026.07.03 07:15
(애너폴리스 AFP=연합뉴스) 2026년 5월22일 미국 해군사관학교 생도 임관식에서 해군 항공대 소속 전투기들이 축하 비행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미국에서 입학 경쟁이 가장 치열한 사관학교는 워싱턴 인근 아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다. 한국에서는 뉴욕 인근 웨스트포인트의 육사를 최고로 치지만, 미국 내 평판은 다르다.
해사 합격률은 8~9%로 미국의 최상위 명문 사립대를 일컫는 아이비리그 수준이다. 합격률이 10%대 초중반인 육사와 공사도 해사에 다소 뒤질 뿐이지 아이비리그만큼이나 들어가기 어렵다.
미국 해사의 높은 인기는 미군 전력에서 해군의 비중이 크다는 데서 기인한다. 생도들은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 전통 해군 전력과 해병대뿐 아니라 공군급인 항공대까지 다양한 병과로 진출할 수 있다. 넓은 선택지는 청년에게 큰 매력이다. 복무 중 조선과 방산, 해운 등 글로벌 업체와 맺는 인적 네트워크도 전역 후 큰 경쟁력이 된다.
한국은 딴판이다. 직업관 변화와 저출산이 겹치며 사관학교는 상위권 수재들이 외면하는 곳이 됐다. 3사 중 가장 선호도가 높다는 공사조차 이른바 인서울 30개 대학 중 하위권 성적이면 합격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육사와 해사 합격선은 하단을 밝히기 민망할 정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도 있다. 의대 갈 성적은 안 되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이 사관학교를 우회로로 택하면서 3사의 상위권 입학 성적 일부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관학교는 기수당 3명 안팎을 서울대 등 최상위권 의대로 위탁교육 보내는데, 이들 상당수가 의무복무만 마치고 군을 떠난다. 막대한 세금으로 키운 군 의료인력이 민간으로 빠져나가자 의료계에서는 '먹튀'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1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제82기 신입 사관생도 입학식'에서 생도가 선서하고 있다. 2024.2.16 [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image@yna.co.kr
이런 가운데 3사 통합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육·해·공사를 없애고 하나의 사관학교에서 공동 교육을 받은 뒤 병과를 나누는 방식이다. 합동성 강화라는 명분 아래 비상계엄 사태로 다시 불거진 육사 카르텔 문화를 이참에 깨트리려는 정치적 의도도 읽힌다. 여기에 안규백 국방장관은 입학 성적 하락을 통합 사관학교 설립의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기득권층이나 기성세대는 여전히 자신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대의 잣대로 사관학교를 바라본다. "출세하려면 육사를 가라"던 시절의 인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육사 독점 논란과는 별개로, 사관학교가 처한 현실은 그때와 전혀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은 사관학교의 추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육사의 정치 개입이라는 선입견만으로 접근하면 구조적 위기를 더 키울 수 있다. 지방 우수 학생은 서울로 몰리고, 명문대 졸업생조차 '동탄 이남' 직장을 기피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국군사관학교를 만들어 전남 장성 등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최악의 청년실업난 속에서도 장교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외면하는 마당에 교육기관이 지방으로 가면 우수 인재 확보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계룡=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0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임관식에서 모자를 던지며 자축하는 사관생도들을 보고 있다. 2026.2.20
장교는 안보를 책임질 핵심 인재다. 우수한 청년이 군을 선택하지 않으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사회는 그만큼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논의는 사관학교를 어떻게 통합하고 어디에 둘 것이냐에만 쏠려 있다. 3사 신입생을 한 지붕 아래 뽑는다는 데는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정작 젊은 인재가 기꺼이 군을 선택할 환경을 만드는 일은 뒷전인 것 같아 답답하다.
처우와 경력 인정, 전역 후 진로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 없이는 조직 개편도, 지방 이전도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3사 통폐합을 추진하더라도, 그것과 함께 장교라는 직업의 가치도 논의해야 한다. 미국 해사가 왜 높은 인기를 누리는지에서 답을 찾길 바란다.
jahn@yna.co.kr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사관학교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