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84억 등친 ‘돼지엄마’…피해자 죽음에도 검찰 항소 포기
2026.07.03 05:00
사기 피해로 약 4억원을 잃고, 남편까지 떠나보낸 A씨(56)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자녀의 학부모 모임에서 처음 만나 10년 넘게 알고 지낸 고모(55)씨로부터 지난 2016년 처음 투자 제의를 받았다. 고씨는 “유명 증권사에 다니는 200억대 자산가인 사촌 오빠를 통해 투자하면 월 4% 이상 수익을 내는 원금 보장 상품이 있다”고 했다.
고씨는 학교운영위원을 도맡으며 각종 입시 정보에 능통해 여러 학부모에게 신망이 두터운 일명 ‘돼지 엄마’였다. A씨는 고씨와 종종 부부 동반 모임도 가지며 가깝게 지냈고, 게다가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고씨의 투자 제안을 승낙했다. A씨는 “각종 명품을 사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고씨를 보며 열심히 일하는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아 투자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고씨는 “사촌오빠 회사가 금융감독원 감사를 받고 있다” “사촌오빠가 중환자실에 있다” 등의 이유로 수익금 지급을 미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알고 지냈기에 신뢰했고, 가계 형편도 더 어려워지자 A씨는 2024년 8월경 집을 처분해 마련한 돈까지 모두 고씨에게 맡겼다.
약 3달 후, A씨는 자신처럼 고씨에게 투자했다는 몇몇 학부모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제야 A씨는 고씨에게 사촌오빠가 없고,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의 남편은 자신이 고씨에게 돈을 보내자고 결정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A씨는 유서에 고씨의 이름과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 가게의 이름을 남기며 “피해자들의 빠른 구제를 위해 수사 꼭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수사 결과 고씨는 14명을 속여 284억원 이상을 편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 4월 서울북부지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고씨는 전형적인 ‘폰지사기’ 방식으로 여러 피해자의 투자금을 가로챘다.
판결문에 따르면, 고씨는 편취금 중 약 30억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연간 1억원 이상을 써야만 하는 백화점 VIP 고객으로 2년 연속 선정됐고, 월 400만원씩 내는 할부로 포르쉐 차량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녀 유학비로 약 1억6000만원을 썼고, 남편이 서울 강북구 소재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약 6억1000만원을 납부했다. 그러나 고씨의 남편과 가족들은 자신들 역시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고씨의 범행 사실을 몰랐으며, 자신들도 고씨에게 돈을 맡겼다가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남편과 가족들이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따로 입건하지 않았다.
고씨는 수사가 시작되고 3개월 후 파산을 신청했다. 그러면서도 고씨는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고,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고씨는 경찰 조사에서 “카드 결제로 변호사비를 마련했다”고 진술했다. 약 12억원 이상을 잃은 또다른 피해자 B씨(57)가 고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어 승소했지만, 고씨의 파산 신청으로 피해 회복은 더 요원해졌다.
피해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수차례 엄벌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검찰은 1심 선고 결과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됐고, 선고 형량 역시 양형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해 항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사건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의 양형기준 가중영역에 해당해 권고형량은 징역 6~11년이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한 피해자의 자녀 C씨(26)는 “이모·삼촌이라 부르며 믿었던 사람들에게 속아 그려왔던 미래계획이 모두 무너졌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드시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만, 정작 피고인 가족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생활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기로 피해자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는데 징역 7년이 과연 정당한 처벌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고씨의 항소심 첫 공판은 지난달 2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으며, 다음달 25일 재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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