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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영
장원영
돌로미티 걷기, 날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풍경

2026.07.03 13:46

[돌로미티 여행기 2] 비현실적 풍경 속 잊지 못할 순간들
▲ 서부 돌로미티의 간판 스타 세체다 전경.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오른쪽은 초록빛 사면을 이루고 있다.
ⓒ 이희용

- <'숨은 보석'에서 한국인 걷기 성지로 바뀐 이탈리아 돌로미티 https://omn.kr/2iwqn >에서 이어집니다.

이탈리아 입국 나흘째이자 돌로미티 트레킹 셋째날인 6월 20일. 행선지는 서부 돌로미티의 간판 스타인 세체다다. 숙소를 출발해 버스로 이동한 뒤 산타 크리스티나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현지 가이드 베로니카를 만났다. 안나와 비슷한 중년의 건강한 여성으로 관록이 넘쳐 보인다.

케이블카로 올랐다가 20분 걸어서 리프트로 갈아탔다. 이곳 리프트는 별도의 탑승권을 끊어야 한다. 초록빛 평원 위에 회색 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는 풍경은 똑같지만 날마다 풍경이 새롭다. 첫날부터 '오늘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날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느낌이다.

세체다는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오른쪽은 초록빛 사면으로 이뤄진 독특한 지형이다. 뾰족한 모서리가 말 그대로 '에지(edge) 있게' 생겼다. 정상에는 대형 십자고상을 세웠고 주변 봉우리 모양과 높이를 표시한 조형물도 만들어놓았다.

하얀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과 초록빛 평원의 배색이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오늘이 토요일인 데다 이곳이 명소여서 탐방객으로 북적인다. 앞다퉈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은 뒤 풀밭에 드러누워 경치를 감상한다. 세체다 풀밭에 누워 시체놀이를 하고 있다니.

세체다 초원에서 버스킹을 감상하다니

▲ 세체다에서 즉석 버스킹 세체다 언덕에서 친구 근덕이가 ‘My Way’를 열창하고 있다.
ⓒ 이희용

근덕이는 대학 시절부터 가수로 이름난 친구다. 최근에도 서울 연희동 경의선 숲길이나 미아리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기타 치며 버스킹도 하고 각종 행사의 축가를 도맡고 있다. 주변 권유에 따라 한 곡조 뽑았다. 외국인도 알아들을 수 있는 팝송을 하라고 하자 '마이 웨이(My Way)'를 열창했다. 우리 일행 말고도 다른 탐방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자아냈다. 잊지 못할 추억과 경험이다.

세체다 리지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30분 정도 걸으니 바이타 소피에 산장이 보인다. 큰 건물 옆으로 작은 목조 건물 두 채도 보인다. 산장에서 돈가스로 허기를 달랬다.

내가 일어나서 건배사를 선창하자 친구들이 술잔을 들고 따라 외친다. "여긴 어디? 세체다!" "산장 집은 몇 채? 세 채다!" "우리 인생에 여행을 빼면? 시체다!" 다른 일행도 웃음과 박수로 화답한다.

여기서 두 조로 갈라졌다. A조는 봉우리 왼쪽을 돌다가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길을 잡았고, B조는 막바로 하산하는 코스다. 각각 1시간 40분과 40분 남짓 걸린다. 오늘은 트레킹 첫날처럼 우리 친구 모두 A조로 베로니카를 따라 걷고, 다른 팀 한 명만 B조여서 백 팀장과 동행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 쪼이는 것 말고는 길이 비교적 평탄하고 기온도 적당해 걷기 좋다. 멋진 풍광에 매료돼 수시로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걸음이 지체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이곳 트레일의 랜드마크인 천사 바위가 나타난다. V자로 솟은 두 바위가 찬사 날개를 닮았다. 당나귀의 쫑긋한 두 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오른쪽 바위 꼭대기에 사람들이 보여 저기를 어떻게 올라갔나 싶었는데, 뒤에서 보니 가파르긴 해도 오르내리는 길이 있다.

▲ 천사바위 가는 길 세체다에서 천사바위로 내려가는 길에 병래가 친구들 걷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 이희용

피렌체 산장에서 다리쉼을 했다. 이곳 레몬 맥주가 명물이라고 해서 맛을 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 도착하니 넓은 평원이 나타난다. 여기서 두 번째 점프 컷에 도전한다. 요령이 생겨서인지 세 번만에 성공했다. 이젠 더 뛰라고 해도 기력이 없어 못 뛰겠다며 모두 엄살을 피운다.

케이블카로 내려가니 비보가 들려왔다. 오늘 아침 이후부터 대형 관광버스는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까지 못 올라오도록 방침이 바뀌어 셔틀버스로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그나마 아침에는 우리 버스로 올라온 게 다행이다. 그늘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기다리며 객쩍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래 여행에 이 정도 '삑사리'도 없으면 서운하지. 그게 다가 아닌 게 문제이긴 했지만.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으로 걸어서 이동한 뒤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숙소로 향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방에 모여 술판을 벌이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술꾼 등산객이 가장 좋아하는 날씨다.

사스 포르도이에서 맨눈으로 윙슈트를 보다니

▲ 마르몰라다 조망 마르몰라다 오르는 길 제2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바라본 사스 포르도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구름이 정상을 감싸고 있다.
ⓒ 이희용

21일 아침이 밝았다. 3박 4일간 정든 카나제이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돌로미티의 여왕'이라 불리는 마르몰라다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고 해발 1450m에서 3265m까지 올랐다. 돌로미티에서 관광용 이동시설을 타고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은 초록빛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까지 보던 풍경과 사뭇 다르다. 백운암과 돌길로만 이뤄져 있고 간간이 흰 눈이 남아 있다. 단체사진을 찍으며 내가 선창하자 친구들이 구호를 외친다. "여긴 어디다? 마르몰라다!" "기분은 어떤가? 날아오른다!"

케이블카 승강장 지하로 나가면 흰 눈 덮인 전망대가 나온다. 6월 말에 뽀드득 소리 나게 눈길을 걸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옥상 전망대는 파노라마 풍경을 선사한다. 우리가 걸었던 사소룽고와 세체다 등이 보인다. 자그마한 동굴에 성모 마리아상을 모신 경당(經堂)도 꾸며놓았다.

▲ 산상 성모 마리아 마르몰라다 정상 부근 동굴에 성모 마리아를 모신 경당을 만들어놓았다.
ⓒ 이희용

이제 '돌로미티의 테라스'라는 사스 포르도이로 이동한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도로에 자전거족과 바이크족이 많다. 부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성수기인 7, 8월에는 곳곳에서 교통체증을 빚는다고 한다.

사스 포르도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산장 식당에 자리를 잡았더니 예약된 곳이 여기가 아니고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 주변의 같은 이름 다른 식당이라고 한다. 케이블카로 내려가 들어갔더니 이번엔 상부 승강장의 산장 식당이 맞다고 한다. 현지 한국인 가이드와 이탈리아 가이드의 소통 부족 탓이다. 1시간 가까이 허비했지만 덕분에 케이블카 경치를 왕복 한 차례 더 구경할 수 있었다고 만족한다. 아이돌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에서 비롯됐다는 이른바 '원영적 사고'다.

이곳 트레킹 코스는 온통 돌길이고 간간이 눈길도 나온다. 경사가 심해 오를 때는 금방 숨이 가빠졌다. 회색 그랜드캐니언 같기도 하고 지구 아닌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거리가 길지는 않았지만 체력 소모가 많아 이번에도 두 개조로 나눴다. 비탈진 눈길에 경철이가 두 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보고 뒤따라오던 우리 일행의 한 여성은 겁을 먹고 돌아가 B조에 합류한다.

▲ 사스 포르도이 눈길 6월 말에 눈길을 걷는 드문 경험을 하고 있다.
ⓒ 이희용

▲ 마르몰라다 설경 돌로미티 최고봉답게 마르몰라다 정상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 이희용

▲ 사스 포르도이 협곡 사스 포르도이에는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협곡이 형성돼 있다.
ⓒ 이희용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길에 갑표가 노래를 부르겠다고 자청한다. 동행한 친구 10명 가운데 두 번째 실력파 가수로 통하는데, 첫째가 B조로 빠져 있으니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다. 대학 1학년 때 지은 자작곡 노래 가사가 풍경과 딱 어울려 부르고 싶었다고 한다. 천상의 무대에서 듣는 멋진 노래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인근 절벽에 세워놓은 십자가를 보러 갔다. 팔다리 사이가 날개처럼 이어진 복장의 두 사내가 보인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가득하다. 익스트림 스포츠의 하나인 윙슈트(Wingsuit)를 막 시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맨몸이나 다름없는 차림으로 뛰어내리다니 정말 대단하다.

한 사내가 스카이다이빙 자세로 온몸을 펴고 날다람쥐처럼 창공을 활강하더니 금세 점으로 작아진다. 두 번째 사내도 마찬가지로 뛰어내린다. 바위에 부딪힐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맨눈으로 본 건 처음이다.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은 나도 해봤지만 이건 도저히 못 해낼 것 같다.

▲ 날다람쥐처럼 창공을 날다 사스 포르도이 절벽에서 윙슈트를 하는 두 젊은이를 만났다. 팔다리 사이에 날개가 달린 것 같은 복장을 입고(위)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날다람쥐처럼 날고 있다(아래).
ⓒ 이희용

이제 하산이다. 같은 케이블카를 하루에 네 번씩 타기는 처음이다. 버스를 타고 동부 돌로미티의 거점도시 코르티나담페초로 향했다. 1956년에 이어 지난 겨울에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스키의 메카다. 예쁜 목조건물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고 주변 암봉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다. 프란체스치 파크 호텔에 짐을 풀었다. 벌써 이번 여정의 3분의 2가 지나고 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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