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반국가세력 척결' 계엄령은 집단학살의 전조였다
2026.07.03 15:00
한성훈 '모자이크'
집단학살의 가해 구조를 분석한 책으로 흔히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꼽는다. 아렌트는 관료제 사회의 톱니바퀴가 된 나치의 고위 공무원을, 브라우닝은 집단적 동조에 못 이겨 학살에 참여한 뒤 그 짓을 반복하면서 무뎌져가는 나치의 예비경찰대대를 다루었지만 메시지는 같았다. 학살의 가해자들은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학자인 한성훈 연세대 연구교수가 쓴 '모자이크-가해자 감정과 학살'은 그와 비슷한 결 위에서 가해자의 심리와 악행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종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아렌트 등이 홀로코스트에 집중했다면 한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포함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중일 전쟁 당시 일본군의 만행, 크메르루즈와 르완다, 인도네시아 학살은 물론 우리 현대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까지 다루었다. 저자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책에 현장감을 더한다.
학계에서는 학살에 가담한 동기를 분석할 때 구조적·제도적 요인을 다루는 거시적 관점과 개인의 심리와 생활 조건을 다루는 미시적 관점을 병행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은 개인이 폭력과 살인에 가담하는 한 요인이다. 자신의 처지에 불만이 클 경우 무지막지한 폭력 행사는 그 불만을 해소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여순 사건 때 참수를 자행한 김종원이나 마약에 절어 제주 학살에 앞장선 탁성록 같은 사이코패스 성향 살인자들은 그중에서도 괴이한 경우에 속한다.
이렇게 학살에 가담한 사람은 브라우닝이 지적했듯 끔찍한 폭력이나 죽음에 반복 노출되면서 감정이 무뎌지고 피해자의 고통에 둔감해진다. 피해자를 임무의 대상으로만 바라봄으로써 감정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지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때 폭력은 더 이상 법과 규칙의 문제도, 도덕의 문제도 아닌 절차일 따름이다.
저자는 집단학살의 심리적 출발점으로 상대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비인간화'와 '의사종분화'를 꼽는다. 문화적, 사상적, 인종적으로 다른 인간 집단을 마치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런 서사를 반복, 재연하며 집단적 증오가 굳어진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빈대와 기생충, 바이러스에 비유했고, 일본군은 중국인을 개나 고양이 죽이듯 했다. 르완다에서 후투는 투치를 바퀴벌레로 경멸했다. 이 증오가 대중운동과 결합될 때 무지막지한 폭력이 벌어진다.
마찬가지로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를 인류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빨갱이'는 다른 종으로 분류되기에 그들을 학살하는 것은 문제없다는 정서가 공유된다. 반공주의는 변형된 인종주의라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집단 증오가 사회적 담론으로 자리 잡으려면 대상에 대한 평가절하와 가치 축소가 먼저 일어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잘못된 권력은 이 과정에 개입해 우리의 인식을 조종하고 지배하며 제도와 전통,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12·3 불법계엄 당시 대국민 담화문 서두에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문구가 있었다. 당시 군에서는 수천 개의 영현백과 종이관을 준비했다고 한다. "더는 우리가 민간인 학살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저자의 우려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저자는 길지 않지만 집단학살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의사종분화의 문화적 요건에 휘둘리지 않고 집단의 복잡성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경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의사종분화는 내집단에 한정된 도덕성이므로 도덕적 범위를 확장한 더 상위의 정체성을 형성해 대립하는 두 집단을 아우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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