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뒤틀린 학생인권조례... "인권 보장하려다 인성 그르친 셈이죠"
2026.07.03 10:01
생활지도 차원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처벌은 없다. 예전 같으면 오리걸음이라도 시켰겠지만, 그랬다간 '신문에 날 일'이라며 교사들 모두 몸을 사린다. 실제로 근래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듯 그보다 더 사소한 일로도 아동 학대로 고소당하는 일이 일어나는 현실이다. 굳이 처벌이라면, 교사의 '잔소리' 정도다.
현행법상 생활지도를 가장한 교사의 체벌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이른바 '사랑의 매'는 교실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팔을 위로 드는 '손들어' 벌조차 시켜선 안 된다.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또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혼내거나 단체로 기합 주는 행위도 금지된다. 반대로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정서 학대로 몰릴 수 있다.
굳이 교사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
| ▲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
| ⓒ 연합뉴스 |
일단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면, 교사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조심하고 경계한다. 흡연이나 음주, 도박이 상습적인 아이는 누가 기록을 남긴 뒤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고,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하면 교육청에 보고해 소정의 절차를 따르면 된다. 생활지도와 처벌은 그들에게 맡기고 교사는 수업만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
수업이나 상담 중에 교사 앞에서 아이가 '돼먹지 못한' 행동을 한다 해도 일단은 참아야 한다. 그 앞에서 부지불식간에 욕설을 내뱉거나 혹여 손찌검이라도 했다간 형사 처벌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법적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다고 해도, 지루한 공방 속에 교육자적 소명 의식과 열정은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요즘처럼 험악한 세상에 '교문 등교 지도'는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질 아이들도 아닌데, 굳이 애써 생활지도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몇몇 동료 교사들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조언이다. 학급 담임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학생부의 고유 업무도 급격하게 형해화하는 모양새다. 손발이 다 묶인 채 법적 책임만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서, 굳이 교사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시쳇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크고 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교문 등교 지도'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학교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는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교칙은 물론, 수업 때 배우는 다양한 교과 지식도 올곧은 시민의 자질을 함양할 목적으로 습득하는 도구일 뿐이다. 지식을 위한 지식은 '지적 허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사태를 통해서도 인성이 갖춰져 있지 않은 재능은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배움은 쓸모가 없고, 오로지 대입 준비에만 매몰된 학교라면 더는 교육 기관이 아니다. 인성 함양을 위한 도덕 교육조차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려는 관행이 참담할 따름이다.
단언컨대,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화를 학습하고 있는 아이들에겐 인성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인성이란, 모든 교과의 개별 학습 목표를 수렴하는 지상 과제일뿐더러 일상 속 또래 집단의 다양한 체험을 통해 가랑비에 옷 젖듯 함양되는 덕성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은 인성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는 대표적 역량이다.
더는 놀랍지도 않지만, 장애인과 여성,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일삼는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 만연해 있다. 이는 인성 교육을 방기해 온 학교 교육의 현실을 방증한다. 인성 교육을 내팽개친 맹목적인 대입 준비는 이른바 '시험 능력주의'에 경도되어 "아니꼬우면 출세하라"는 식의 차별과 혐오 의식을 나날이 강화한다.
SNS를 통한 조롱과 혐오를 '놀이'로 여기고, 성적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는 강퍅한 교실에서 아이들의 인권 의식 함양에 기여해야 할 학생인권조례는 되레 그들의 반인권적 행태에 '보호막' 노릇을 했다. 천부적 권리인 인권이 학교 내에선 '학생'에 방점이 찍히며 마치 점령군인 양 행세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조례의 취지가 순식간에 뒤틀린 것이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학교가 만들어졌다
SNS가 학교폭력을 비롯한 온갖 비행의 온상으로 전락했지만, 최근까지도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스마트폰을 일과 중 함부로 압수하거나 문제 삼을 수 없었다. 만시지탄이지만,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규제가 가능하도록 국회가 법을 개정한 건 지난해 하반기 들어와서다. 여론의 공분이 커진 뒤에야 학생인권조례를 보완하는 조항이 마련된 것이다.
인권 침해는 아동 학대라는 법 조항과 맞물리며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겐 '도깨비방망이'가 됐다. 급식소에서 음식을 남겨선 안 된다고 지도하거나 청소 시간에 물걸레질을 서툴게 한다고 나무라는 건 민원을 제기하는 단골 이유다. 초중학교에선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발표 수업 때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과제를 부과하는 필수적인 교육조차 바짝 신경 써야 한다.
"극성 학부모들 등쌀에 학교가 아이들의 인권을 보장하려다 정작 인성을 그르치게 된 셈이죠."
한 동료 교사의 푸념은 지금 학교가 처한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인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안타깝게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손에 칼자루를 쥐여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비유컨대, 법의 허점을 간파해 비행을 일삼는 '촉법 소년'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교복을 착용해야 한다고 명시한 교칙의 '용의 복장 규정'은 이미 종이호랑이도 못 될 만큼 사문화했다. 학생자치회까지 나서서 각자 입고 싶을 때 입도록 내버려두라고 공식적으로 건의할 정도다. 학교에 교복은 꼭 필요하지만, 착용 여부는 알아서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이럴 거면 애초 그 값비싼 교복을 모두 구매할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러나 교복을 입는다는 건, 단순히 지정된 옷을 입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생활에 필요한 공동체의 규범을 지키겠다는 약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구성원 간에 합의된 규범을 따르고 개인적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도록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학교 교육의 고갱이다. 교복을 갖춰 입도록 하는 건, 학교의 '드레스 코드'로서 생활지도의 시작일 수 있다.
교복을 이른바 '자율화'하고 실내화 차림으로 등하교하는 걸 전면 허용한 뒤 학교의 면학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는 교사들의 경험담을 어렵잖게 듣는다. 직후 둑 터진 저수지처럼 교칙을 위반하는 사례가 봇물 터지듯 늘어났다고 증언한다. 교칙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출결 사항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만 들린다.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실내 청소가 용역으로 대체됐고, 급식 지도에도 교사의 손발이 묶이면서 아이들은 오로지 대입 공부만 하면 됐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학교 안팎의 분위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공동체의 규범을 준수하고 불이익조차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 모든 게 인권의 이름으로 발목 잡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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