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도 괜찮다…화장실에서 시작된 사색 여행, 대구 사유원
2026.07.03 08:02
상념에 잠기는 70만㎡ 정원 사유원
지하 방공호 같은 건축물 소요헌
108그루 모과나무 등 숲도 지천에
방문객 열명 중 여섯이 MZ세대
우리 문화유산 보고 대구간송미술관
그 앞엔 입장료 무료인 대구미술관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서 경기 직관
군위군 ‘왕사남’ 엄흥도 추정 묘도
인간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 어디일까. 단언컨대 화장실이다. 배설이란 목적이 분명한 공간이지만 인간은 화장실에서 긴장의 끈을 놓는다. 자신의 민얼굴을 만난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고전에서 화장실은 숨김, 해소, 고립, 회복 등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투영한 장소로 차용돼왔다. 근사한 ‘화장실 순례’가 가능한 곳이 한국에 있다. 공간의 크기도, 디자인적 요소도, 의미도 다 다른 7개의 화장실이 기다리는 곳, 일명 ‘사색의 정원’이라 불리는 사유원이다. 대구광역시 도심에서 차로 40~50분 거리에 있는 군위군에 있다.
나를 만나는 여행, 사유원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 (강요)하지 않아요. 지도를 보고 한걸음도 못 떼는 분도 있고, ‘나는 이쪽을 먼저 보겠다’며 주체성을 가지고 여행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지난달 18일 사유원 안내를 맡은 문화해설사 김수정씨의 말이다.
사유원은 반가사유상에서 이름을 따왔다. 반가사유상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생각하며 상념에 잠긴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불상을 말한다. 여기에 방점은 ‘상념’이다. 사유원은 이름처럼 고요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며 상념에 잠기는 공간이다. 대략 70만㎡ 규모다. 이 너른 땅을 채운 숲과 국내외 건축가·예술가들이 빚은 작품이 ‘생각’을 돕는다.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탄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승효상, 최욱, 박창렬 등이 조성에 참여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로 대중에게 알려진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을 비롯해 박승진, 가와기시 마쓰노부, 고기영, 김현희, 윤태중 등 국내외 이름난 조경가와 조명 전문가들도 함께했다. 이곳을 조성한 이는 철강기업 ‘티시(TC)철강’의 유재성 명예회장이다. 자신이 15년간 가꾼 이 공간을 2021년 개방했다.
사유원 여행의 시작은 치허문에서 시작한다. 이 문을 지나면 꼭대기에 있는 카페 ‘가가빈빈’과 야외 공연장 ‘심포니 6’, 독특한 전망대 ‘명정’과 연결된 비나리길이 나타난다. 약 700m의 오르막길이다. “비나리길은 ‘축복을 길어 들이는 길’이란 의미를 담았습니다.” 김씨가 말했다. 그는 갈림길 설명을 하면서 “자연을 먼저 보려면 ‘팔공청향대’나 모과나무 정원인 ‘풍설기천년’ 쪽을 가고, 건축을 먼저 보겠다고 하면 ‘소요헌’ 쪽으로 가면 된다”고 조언했다. “팔공청향대를 본 다음 건축물 소요헌을 보려면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와야 하기에 의도된 불편함이 있지요. ‘발길 닿는 대로 가서 보시라’고 하는 이유죠. 어느 길을 선택하든 나쁜 길은 없고 다른 길만 있습니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세상 모든 일의 출발점은 자신이다. 이러할진대 길을 선택하는 일은 오죽하랴.
호수와 건축물 등 각종 ‘사유 도우미’와 한옥이 함께하는 정원 ‘유원’ 등 볼거리가 넘치는 데가 사유원이다. 이 모든 것을 다 감상하기 위해선 지도가 필수다. 여행 전에 누리집에서 내려받아 가면 된다. 최소 4~5시간은 걸린다. 김씨는 마음껏 다 보고 느끼려면 하루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소요헌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의 작품이다. 지하 방공호 같다. 어둠이 똬리를 튼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듯 가게 된다. 건축가는 우리 시대의 폭력과 전생의 상처, 희망 등을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천장 일부가 뚫렸다. 벽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볕이 쳐들어왔다. 하지만 공격이 아닌, 친교와 협상, 대화의 빛이었다. 빛과 어둠이 숨바꼭질하듯 교차하는 콘크리트 건축물 안에도 갈림길이 있었다. 한쪽은 생명을, 다른 한쪽은 죽음을 상징했다. 전자엔 알 모양의 조형물이 있고, 다른 길 끝엔 지붕을 뚫고 올라간 철근 구조물이 보였다. 소요헌 앞에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의 또 다른 작품인 20.5m의 ‘소대’가 있다. 2030세대가 줄 서서 사진 찍는 촬영 명소가 여기다. 콘크리트 벽 한쪽이 길게 뚫렸는데, 그곳에서 자신을 앵글에 넣어 사진 찍으면 밖 사유원의 숲이 배경인 근사한 사진이 완성된다. 소박한 기도처이자 경당인 건축물 ‘내심낙원’도 그의 작품이다.
사유원 아래쪽 대표 건축물이 소요헌이라면 위쪽의 대표작은 ‘명정’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그는 돌다리를 놓은 작은 호수 앞 건물 ‘사담’과 ‘물멍’ 하기 좋은 ‘와사’, 탑인 ‘조사’, 티하우스를 겸한 ‘현암’ 등도 설계했다. 명정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이한 전망대다. 통상 전망대는 높은 데 있다. 명정은 반대다. 관람객은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곳에선 어둑한 복도와 작은 방, 얕은 인공 호수 등을 만난다. 이 모든 게 자신을 조망하게 하는 전망대란다. 나를 들여다보는 망루인 셈이다. 방 하나엔 승효상 작가의 손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건축물이 사유원의 주인인 듯하지만, 실제는 ‘자연’이다. 사유원 자연의 중심은 풍설기천년이다. 108그루 모과나무가 가족처럼 모여 있다. 이 중엔 수령이 651년으로 추정되는 모과나무도 있다. 김기대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교수의 조사 결과다. 나무 둘레만도 485㎝다. 모과나무는 사유원의 심장이다. 유재성 명예회장이 사유원을 조성하게 된 출발점이 모과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9년 부산항에서 밀반출될 위기에 처한 모과나무 4그루 ‘구출’에 성공했다. 수령 300년 넘는 나무들이었다. 웃돈을 줘가면서 사들였다. 밀반출되는 상황이 안타까워서였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숲을 일궜다. 수령이 200년 넘은 배롱나무로 가득한 ‘별유동천’, 느티나무숲 ‘한유시경’ 등 마음을 흔드는 숲이 사유원엔 지천이다. 총 1100종의 수목이 자란다.
자, 이제 화장실을 돌아보자. “이 화장실 이름은 ‘오만’입니다. 다른 곳에 화장실 ‘편견’도 있어요. 설립자가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죠.” 오만과 편견은 구조가 각각 다르고 특이하다. 전자가 무채색이라면 후자는 알록달록하다. 화장실 안엔 마주 보는 방이 여러개 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창도 있어서 밖의 나무가 보인다. 방은 남녀로 구별되며, 용변을 보는 장소다. 방 밖에는 함께 손을 씻는 세면대가 있다. 쓰임과 별개로 화장실 자체가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김씨는 “처음엔 다들 화장실인지 모른다. 그저 다른 건축물처럼 예술 작품으로 안다”고 말한다.
사유원의 입장료는 논쟁거리였다. 평일 5만원, 주말 6만9천원이다. 국내 다른 수목원이나 식물원, 정원에 견줘 비싼 편이다. 하지만 비싸다는 의견에 반론을 펴는 이들의 얘기는 간명하다. 사유원과 유사한 다른 공간에 견줘 월등히 큰 규모(70만㎡)이기에 관리에 적잖은 비용이 들며, 국내에도 이런 사유 공간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상 체류시간이 5시간은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공간의 유용성이 이미 입증됐다고 본다. 무엇보다 엠제트(MZ)세대가 합격점을 줬다. 입장객 열명 중 여섯은 엠제트세대라고 한다. 그들은 외국 미술관이나 정원 등에 지불하는 입장료와 비교하면 그리 비싼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사유원 인근 볼거리로는 1938년 12월1일 문 연 화본역이 있다. 2024년 12월 폐역이 됐다. 옛 정취가 남아 관광객들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미술관 보고 프로야구 직관
대구 명상·예술 여행지로 사유원과 쌍벽을 이루는 데가 대구간송미술관이다. 2024년 9월3일 개관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서울 간송미술관의 국내 최초 지역 분관이다. 서울 간송미술관은 전형필(1906~1962)의 전 생애가 녹아든 데다. 일제강점기에 수탈 대상이 된 우리 문화유산을 사력을 다해 지킨 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유산이 필시 적었을 터.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의 고초는 이어졌다고 한다. 부산으로 피난 간 사이 서울 수장고가 털렸다. 그는 흩어진 소장품을 찾아 되사들였다고 한다. 그런 그의 숨결을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대구간송미술관이다.
지난달 19일 찾은 미술관은 위용이 넘쳤다.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 ‘자연의 일부가 되는 미술관’을 지향하며 지어진 공간이다. 미술관이 있는 대구대공원은 지형이 안동 도산서원과 유사하다. 이 점을 참고해 우리 전통 건축 요소인 계단식 기단, 터의 분절 등을 접목해 미술관을 설계했다. 미술관의 안과 밖도 자연스럽게 연결해 출입이 편한 구조다.
미술관은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운영한다. 관람객 누구든 작품 수리 과정을 관람할 수 있다. 이날 관람의 첫번째 작품은 조선 3대 묵죽 화가인 유덕장의 작품 ‘설죽’(1753)이었다. 흰 눈이 살포시 올라간 대나무는 흔들거리는 듯 보였다. 새파랗게 찬 추위가 꼿꼿한 대나무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겨울이 보였다. 이 그림은 뜻밖에도 한여름에 그려졌다. 작가의 상상이 빚어낸 풍광이 현실보다 더 사실에 가까웠다. 도자와 회화 전시실에 전시된 작품들엔 긴 세월 우리 문화를 지킨 전형필의 노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오는 5일까지 기획전 ‘추사의 그림 수업’이 이어진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만 전시한 특별전이 아니다. 그의 대표작 ‘세한도’를 비롯해 그의 제자들 작품도 함께 감상하는 전시다. 제자들 작품마다 김정희의 평가가 적혀 있다. ‘예림갑을록’에 기초했다.
추사의 평을 읽고 본 제자의 작품은 수묵화에 문외한도 해석이 쉽다. 추사의 평은 세세하고 확고하며 단호하다. ‘붓놀림이 구차하지 않고 경치의 구상 또한 훌륭하다. 이는 반드시 팔뚝 아래 오랜 수련이 있기 때문이다.’ 제자 이한철의 ‘죽계선은’을 추사가 평한 글이다. 이한철은 추사가 작고한 이듬해(1857)에 스승의 초상화를 그렸다. 함께 전시돼 있다. 7월부터 대구간송미술관 대표 소장품인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전시된다. 세로 114㎝, 가로 45.5㎝ 크기인 이 작품은 조선 후기 걸작이다. 상설 전시 입장료는 성인은 6천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3천원이다. 기획전은 성인 1만1천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5500원이다. 상설 전시 관람비가 포함된 금액이다.
이 미술관 앞엔 대구미술관이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2013년께 연 일본 조각가 구사마 야요이 전시가 대박을 치며 명성이 올라갔다. 입장료는 1천원이다. 인근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으로 꼽히는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있다.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야구 관람과 대구간송미술관·대구미술관 투어를 묶어 여행하는 이도 많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는 간송미술관 앞 버스정류장과 구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평일 3대, 주말 4대가 경기 2시간 전부터 운행한다. 경기 끝난 뒤에도 1시간가량 셔틀버스가 다닌다.
대구에서 만나는 ‘왕사남’
올해 상반기 한국을 강타한 영화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다. 주인공 엄흥도(유해진)의 우직한 선택이 대중의 마음을 녹였다. 그가 단종의 주검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뒤 고향을 떠나 은거한 세곳 중 한곳이 대구광역시 군위군이다. 이곳에는 엄흥도가 묻힌 곳으로 유력한 묘가 여행객을 기다린다. 묘의 주소는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산108번지. 이런 군위군의 주장은 ‘국학연구론총’ 제3집에 발표된 논문 ‘충의공 엄흥도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달 18일 이곳에선 무덤 두개가 보였다. 앞쪽 무덤은 엄흥도의 가묘다. 비석은 없다. 그 뒤에 제대로 조성된 엄흥도의 묘가 있다. 망부석과 돌사자, 석등 등이 묘를 지켰다. 자신의 신념을 지킨 이는 역사가 그 가치를 드러내고 만다.
조선 현종 때 송시열의 건의로 엄흥도의 자손들은 복권됐다. 엄흥도는 숙종 24년 때 사육신(단종 복위를 도모했다가 발각돼 목숨을 잃은 충신 6명)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에 배향됐다. 고종 13년 때 충의공이라는 시호도 받았다. 현재 군위군 무덤 근처엔 ‘충의공 엄흥도 역사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왕사남’과 연결된 여행지는 또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엔 ‘묘골 한옥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 ‘육신사’가 여행객을 맞는다. 이 마을은 사육신 중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박팽년의 후손 순천 박씨들이 모여 사는 데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씨가 친정 묘골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단종 복위 실패로 멸문지화를 당한 여러 가문을 생각하며 걱정이 컸다. 마침 노비가 딸을 낳자 자신의 아들과 바꿔치기한다. 박팽년의 손자는 ‘박비’란 이름의 노비로 살게 된다. 어른이 된 박비는 조선 성종 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성종은 특사령을 내려 그를 복권하고 박일산이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이 마을은 현재 전주 한옥마을만큼은 아니지만 아담한 한옥 여러채가 사이좋게 들어서 있다. 박일산이 세운 정자도 있다. 13·14·15대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의 생가터도 있다.
눈에 띄는 가옥으로 인조 22년 박팽년의 7대손인 금산군수 박숭고가 건립한 충효당이 있다. 전형적인 한옥 구조인 이 가옥은 우리 주거 문화의 가치를 드러낸다. 2022년 12월 근사한 카페도 옆에 생겼다. 카페 이름은 ‘묘운’. ‘묘골 마을의 구름’이란 뜻이다. 주인은 박팽년의 22대손 박상혁씨다. 그는 30대다. 고등학교 졸업 뒤 서울로 가 연기 전공으로 대학 생활을 한 학기만 하고 그만둔 이다. 3년간 연극배우로 활동한 다음 포장마차와 음식점 등에서 일하며 외식업 경험을 쌓았다. 부친을 비롯해 가족이 병마에 시달리자 30대 초반에 고향에 내려온 그는 부친이 별장처럼 이용한 충효당 옆에 자신만의 감을 살린 ‘묘운’을 열었다. 전국 이름난 한옥 카페와 견줘도 ‘엄지 척’ 할 정도로 근사하다. 한옥 건축에 오랫동안 매달린 부친을 곁에서 보며 키운 실력이 제대로 발휘됐다. 한식 명인과 차 전문가가 담아낸 주전부리는 여행객을 매료시킨다. 우리 전통 회화, 서예, 공예 등을 일군 장인들과 협업해 공간을 꾸몄다.
마을 분위기는 고즈넉하고 아름답지만 찾는 이가 적은 한옥촌이었다. 묘운이 들어선 이후 달라졌다. 대구 시내를 포함해 인근 여러 지역에서 묘운을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다. 고향에 정착하기로 한 젊은이가 마을에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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