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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창업지원금 받으려 출첵만"… 텅 빈 유니콘룸, 한국은 무엇을 놓쳤나

2026.07.03 04:31

<10> 중국 과학굴기 해부: 더 나은 실패로
한국 이공계선 왜 '유니콘' 테크기업 못 나오나
초반 육성 치중 정부사업...후속 성장·재도전 ↓
반쪽뿐인 교수 창업 독려 "논문 압박·월급 깎여"
중국처럼 '기술·자본·인력' 탄탄한 생태계 필요

편집자주

'짝퉁'과 '탈취'만으로 중국의 첨단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인공지능(AI)·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국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한국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일러스트=송정근 기자


4월 28일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공과대학 건물에 자리 잡은 유니콘 룸. 막 도전하는 테크 기반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위해 대학에서 마련한 공간으로, 이곳에 입주하게 되면 1년간 대학과 정부가 제공하는 창업지원금을 토대로 내부 경연을 통해 기업을 키워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이날 찾은 유니콘 룸은 인적이 드물었다. 오후 3시쯤 한 남성이 뛰어 들어와 휴대폰을 만지작대더니 1분여 뒤 자리를 뜬 게 전부였다.

"출석 체크하러 온 거예요. 30일 중 70%를 출근했다고 인증받아야 지원금이 끊기지 않고 나오거든요." 서울대 공대 박사를 수료한 뒤 '프라이버시 프리저빙'(보호 강화 기술) 기업을 꾸린 최진명(27) 대표가 얘기했다.

이날 살펴본 유니콘 룸 입주 기업 13곳 중 11곳의 사무실은 PC나 기자재 하나 갖추지 않고 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입주한 흔적이 있는 4곳 중 실제로 '출근'하는 건 최 대표와 인공지능(AI)을 통한 소재 분석 기업 한 곳 정도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본사가 따로 있는 기업들로, 창업 경연 프로그램 지원금을 타내려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 형태로 분점을 차려 놓은 격이었다.

4월 28일 서울의 한 사립대에 위치한 기술 창업 진흥 공간에 마련된 기업 입주 공간이 사람 없이 텅 비어있다. 2월 입주가 이뤄졌지만 기업 13곳 중 11곳이 사람 없이 비어있었고, 일부는 컴퓨터 설치조차 돼있지 않았다. 이유진 기자


"이미 투자도 여럿 받은 안정된 기업들과 경쟁하다 보니 지원금도 얼마 못 받고 있어요. 저희처럼 이제 막 커보려는 스타트업으로선 이게 인큐베이터(보육)가 맞나 싶죠." 최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사무실 제공과 소정의 지원금 이외에 후속 투자 유치, 컨설팅은 '커보려고 들어온' 테크 스타트업의 몫이다.

페이스북과 스페이스X부터 딥시크까지,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든 테크 기업들의 공통점은 이공계 연구자들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에서 출발한 혁신 기업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왜 이런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지 못하는 걸까.

해답은 아이디어 발굴부터 육성, 투자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설계되지 못한 창업 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과 정부의 허술한 지원과 부실한 관리 감독도 한몫하고 있다.

10년 못 기다려, 초반만 반짝 지원



정부와 지자체는 표면적으론 '차세대 혁신 기업' 양성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 청년 테크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만 △창업성장 연구개발(R&D) 사업(7,864억 원) △창업중심대학 사업(약 600억 원)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약 300억 원) 등 수천억 원 규모다.

그런데도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창업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해 중국의 재계 전문 조사기관인 후룬연구소가 발행한 혁신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설립된 전 세계 유니콘 기업 1,523개 중 50%(758개)가 미국, 23%(343개)가 중국 기업이었다. 같은 해 중소벤처기업부를 통해 확인된 한국 유니콘 기업은 27곳으로, 전체의 1.7%에 불과하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기술 기반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잘못됐어요." 10년째 울산과학기술원(UNIST·유니스트) 창업단을 이끌고 있는 배성철 부총장은 냉정한 진단을 내놨다. "과학기술을 사업 아이템으로 키우려면 상당한 시간과 실패 위험이 따라요. 이 때문에 민간 투자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니 정부가 종잣돈을 넣어 키워주는 것인데, 문제는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한다는 거예요." 기술 기반 창업 기업이 고도화돼 상장(IPO)되려면 평균 8년에서 길게는 15년이 필요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나 대학이 인큐베이팅(보육) 단계에서 이미 매출이 발생해 스케일업(성장)이 쉬운 기업을 은근히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 기반 리커머스(중고거래)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유니스트 출신 정경민(25) 대표는 "창업 지원 사업이 도움은 되지만, 매출이 중간 평가 지표로 들어가 있어 초기 스타트업으로선 큰 부담"이라며 "매출 발생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연구 기반 기업의 성장에는 분명히 허들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이러한 단기 실적주의 때문에 기술 분야 청년 창업 지원은 법인 설립 등 초기 단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일보가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10년간 '실험실 창업탐색팀 지원사업(텍스코어)'에 선정돼 설립된 기업 352개 중 후속 투자까지 이어간 곳은 25%(88개)에 그쳤다.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고 휴업하거나 폐업한 기업은 120곳으로 파악됐다.

'등 떠밀려' 창업하는 교수들



교수와 박사후연구원 등이 주도하는 딥테크(심층·기반 기술) 창업 역시 난관을 겪고 있다. 2016년 교육부와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업무 협약으로 전국 대학 평가에 교원 창업 실적이 반영된 게 교수 창업의 시초다. 대학들은 재정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앞다퉈 이공계 교수에게 전방위적으로 기술 창업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실험실에서 사장될 수도 있는 기술을 발굴해 키운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현장에서는 창업을 위한 토양 마련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창업원 배현민 원장(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은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 없이 창업 교원 수만 늘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논문 연구의 연장선이거나 '혁신'이 아닌 '현상 개선'에 그치는 창업이 대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대학도 정부 기조에 맞춰 창업을 독려하지만 질보다 양, 혁신보다 재정 지원금 조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13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창업지원단 앞에 컨설팅 판촉물이 놓여있다. 대전=류효진 선임기자


창업에 관심이 있는 우수한 기술 인재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5개의 스타트업 창업자이기도 한 배 원장은 "중국 칭화대에선 교수가 창업하면 성과와 별개로 인센티브를 주며 독려하는데, 국내 일부 대학에선 오히려 교원 월급을 깎아버려 우수 인재가 뛰어들 유인이 없다"며 "대학원생과 포닥(박사후연구원)은 겸직이 제한적으로 허용돼 창업 분야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짚었다.

사업 아이템으로 키워볼 만한 기술이 있어도, 창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의료기기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한 과기원 교수는 "학과에서 1년 동안 메이저 과학저널에 논문을 5편 이상 기고하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요구한 탓에 연구와 창업 활동의 병행이 사실상 불가했다"며 "대학에 속해 있으면 투자자 요구에 맞게 사업에 전념할 수 없어 교직을 그만둘까 생각 중"이라고 털어놨다.

'기술·자본·인력' 탄탄한 생태계 구축

노용석(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4월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딥테크 분야 고부가가치 기술 보유 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스케일업 팁스' 간담회에서 중소·벤처기업 및 운영사 대표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결국 국내 기술 창업 생태계가 질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단순히 예산만 풀고 짧은 기간 동안 경과를 지켜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딥테크 스타트업 중심의 투자를 이어온 벤처캐피털(VC) '스케일업파트너스'의 이태규 대표는 "현재 국내 창업 생태계는 공공의 단기적 자금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인프라도 대학별로 분산돼 있어, 스타트업이 스스로 투자자나 생존법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 구조"라며 "단편적인 마중물 지원을 넘어, 기술을 가진 연구자와 사업 전문가, 수요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개별 기업에 지원금만 살포할 게 아니라, 창업 아이템 발굴부터, 제조업체 연결, 투자자 매칭까지 한 번에 해결되는 창업 거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선전에는 전자산업 집적지인 화창베이를 비롯해 촘촘한 부품 공급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하드웨어 창업가들은 이곳에서 필요한 부품을 곧바로 조달해 시제품을 빠르게 제작·수정할 수 있어 양산 단계로 신속하게 넘어갈 수 있다. 선전시가 창업보육기관을 통해 창업 교육부터 시장 개척, 투자 유치까지 지원하고, 풍부한 벤처투자 기반이 더해지면서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 글로벌 창업 생태계 평가 기관인 '스타트업지놈'에 따르면 선전에는 2,500개 이상의 VC가 있고,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2,900억 달러(약 448조 원)에 달한다.

배 원장도 "성공적인 딥테크 기업 창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대대적으로 제도를 손보는 중국의 일사불란함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선 2010년대 혁신 창업 교육을 대학 정규 커리큘럼 안으로 들인 이래로, 정부(돈)·대학(인력)·기업(자본)이 함께 움직이는 생태계가 곳곳에 조성돼 있다. 배 원장은 "우리나라도 키워볼 만한 기술이 있다면 인력과 자본이 확실히 붙을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 차이나 리포트

  1. ① <1> 중국 과학굴기 해부: 인재 도둑은 없다
    1. • 한국 영재 '중국 공대' 갈 때, 중국인은 '한국 도피 유학' 온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40004827)
    2. • '인재에 미친 나라' 중국이 한국인 교수에게 건넨 것들... 억대 연봉·공항 프리패스·영주권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40000168)
  2. ② <2> 중국 과학굴기 해부: 우리가 외면한 중국
    1. • 짝퉁? 탈취?… 중국이 말했다 "첨단기술 빼앗길까 걱정"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30000486)
    2. • "협력 안 하면 중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중 정서'에 주한중국대사의 경고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10000002371)
    3. • 중국의 과학기술은 훔친 것?... '현실 직시' 막는 혐중 인식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50000631)
    4. • 주한중국대사 "중국 과학기술 새로운 단계, 한국 객관적 인식 확립해야" [인터뷰 전문]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10000000059)
  3. ③ <3> 중국 과학굴기 해부: 중국의 실리콘밸리
    1. • 인재들이 '제 발로' 모인다… 잘 나가는 美 창업자들도 앞다퉈 '선전행'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30002916)
    2. • 미국에서 6개월 걸릴 일이 '여기'선 6주… 대표 '기술 관광지' 된 선전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20002164)
    3. • 15분 만에 드론이 망고주스 배달… 선전에선 미래기술이 일상이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80005631)
  4. ④ <4> 중국 과학굴기 해부: 마피아와 카피캣
    1. • "퇴사했대" 사흘 안에 소문이 '쫙'… 선전 생태계 확장하는 'DJI 마피아'의 힘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40001535)
    2. • "아이템도 없는데 300억 줘버려요"… '출신' 하나로 투자자 줄 서는 이 기업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80001807)
    3. • 무엇이든 2시간 안에 구한다... '짝퉁 성지' 화창베이가 '제조 메카' 된 까닭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80004431)
    4. • 신입은 일 안 준다? '이곳'선 예외… '천재 엔지니어' 키우는 비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13020000224)
  5. ⑤ <5> 중국 과학굴기 해부: 기술 포비아는 없다
    1. • "이게 무인차라고?" 한국 vs 중국 자율주행 택시 직접 타봤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30004500)
    2. • 한국은 2028년으로 미뤘는데 중국은 이미 손님 태운다… UAM 격차 현장 [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20003408)
    3. • 춤추는 로봇은 시시하다... 중국이 진짜 키우는 건 '일하는 로봇'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20001137)
    4. • 중국 로봇 "실리콘밸리도 못 따라온다"... 인간 기록 깬 로봇 뒤엔 [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10003125)
  6. ⑥ <6> 중국 과학굴기 해부: 공산당의 뚝심
    1. • '이공계'에 미친 중국 지도부의 '뚝심'... 반도체에만 299조 쏟았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90002340)
    2. • "여기가 딥시크 창업자 집이래"… 과학기술자가 의사보다 존경 받는 중국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400000454)
    3. • "테슬라는 아무나 살 수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중국 BYD의 자신감[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90003570)
  7. ⑦ <7> 중국 과학굴기 해부: 어두운 한국 연구실
    1. • "한국에서 과학자 하면 바보"… 우울한 과학고 동창회 뒤에는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10002254)
    2. • 중국은 양자·우주 향해 질주하는데…한국선 "인프라도, 연구할 사람도 없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20000029)
  8. ⑧ 한국일보 '차이나 리포트'를 읽고
    1. • "이대로면 중국에 다 따라잡힌다"… 서울대, '반도체·SMR' 연구단체 첫 출범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914460004394)
    2. • "한국 과학 인재 중국행 보도에 가슴 아파"... 본보 독자, 서울대 공대에 매년 1억 기부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019400001534)
  9. ⑨ <8> 중국 과학굴기 해부: 활기찬 중국 연구실
    1. • "박사는 중국 가서 딸 것"… 몽골 컴퓨터 인재, 한국 이공계에 작별 고하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20002973)
    2. • "2학년부터 연구실로"…설립 14년 중국 대학, 서울대 제친 비결은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20004912)
    3. • 논문 없어도 박사학위… 대학 순위 석권한 중국, 학문 표준까지 바꾸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30002280)
  10. ⑩ <9> 중국 과학굴기 해부: 실패할 자유
    1. • "실패 책임 묻지 않겠다" 시진핑의 공문... 선전, 도전에 미친 도시 됐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30005128)
    2. • 홍콩 명문대 '창업 허브'가 중국 선전에 있는 이유... "실패 문제 삼지 않아"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40002958)
    3. • "완제품 만들기 전 실패해보는 곳"… 외국인 몰려드는 중국 창업 실험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40001425)
  11. ⑪ <10> 중국 과학굴기 해부: 더 나은 실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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