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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들버거 함정·투키디데스 함정… 미·중은?[홍영식의 이슈 워치]

2026.07.03 04:29

열전 부르는 무기패러다임 시프트③
무정부적 국제 체제·손익 계산 따른 합리적 선택·인간 본성 … 다양한 전쟁 원인
군대를 사열하는 히틀러. 찰스 킨들버거는 1, 2차 세계대전 사이 위기시 안정적 자본 공급과 국제 통화 질서 유지, 각국 거시 정책 조율, 유동성 공급과 같은 공공재를 공급할 능력을 가진 패권국이 존재하지 않아 대공황과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AFP 연합뉴스


지난 회에 전쟁을 벌이는 동기와 관련, ‘안보딜레마’, ‘공포의 나선모델’에 대해 살펴봤다. 이외에 여러 분석이 있다. 투키디데스는 두려움, 이익, 명예·체면을 꼽았는데 시대를 초월한 통찰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인간, 국가, 전쟁’에서 세 가지 범주의 이미지로 전쟁 동기를 분류했다. 첫째, 공격적·이기적·권력지향적인 인간 본성을 꼽았다. 인간은 속성상 공격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 약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근원적 욕망이 있으며 명예·이익을 추구한다. 자신 또는 자국에 대한 지도자의 과대평가와 지도층 내에서 억눌러진 비판적 분위기에 따른 집단적 낙관 및 오판, 인지 편향도 전쟁 동기에 한몫한다. 다만 인간 본성적인 접근은 특수한 상황과 특정 지도자에 한정할 뿐 보편적인 전쟁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민주국가는 제도적 통제 갖춰 전쟁 잘 안해”


월츠는 두 번째로 국가 내부의 속성을 꼽았다. 정치 체제, 경제 구조에 따른 분류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로 대비된다. 마이클 도일이 제창한 민주평화론은 민주주의 제도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잘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적 정치 규범과 제도적 제약 때문이다. 반면 비민주적 권위주의 국가는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민주국가에 비해 전쟁을 쉽사리 결정할 수 있다.

경제체제론적 관점과 관련, 월츠가 꼽은 사례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이다. 자본주의 이윤 저하를 보완하기 위해 강대국 간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고 제1차 세계대전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무역 발달과 이에 따른 국가 간 상호 의존은 오히려 전쟁을 억제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민족주의가 전쟁 촉매제가 된 사례도 많다. 1차 대전 방아쇠가 된 세르비아-오스트리아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발칸이 지니는 전략적 중요성이 전쟁 근본 원인이지만 범슬라브라는 민족적 끈이 러시아의 세르비아 지원 명분이 됐다. 경기침체, 정정 불안, 지지율 하락 등 국내 위기에 처한 지도자가 외부의 적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킨다는 ‘전환이론’도 있다. 1982년 아르헨티나 독재자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포클랜드 침공이 그 예다.

월츠가 세 번째로 꼽은 것은 국제체제 구조다. 전쟁 발발의 근본은 첫 번째, 두 번째로 언급했던 인간 본성이나 국가 차원이 아닌 국제체제의 ‘무정부적인 구조(anarchy)’에 있다는 게 월츠의 강조점이다. 그는 전쟁의 궁극적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았던 한스 모겐소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나라 간 분쟁, 갈등을 조정할 최상위 권위적인 주체가 없기 때문에 국가들은 스스로 지켜야 하고, 이 불안한 구조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무정부적 구조에서 국가를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은 무력밖에 없다. 지난 회에서 설명한 ‘안보딜레마’가 대표적이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특정국의 방어적 군비 증강이 공포의 증강 순환 구조를 만들어 전쟁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것이다.

무정부 상태에선 특정 국가의 패권 부상을 막기 위해 동맹을 결성하고 이는 1차 대전과 같이 작은 분쟁이 큰 전쟁으로 휩쓸려 가게 할 위험성이 크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세력 균형이 독일과 같은 신흥 강국에 의해 위협을 받을 때 충돌이 일어난다. 도전국과 쇠퇴하는 국가 사이의 경쟁에서 양측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논리로 전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과 맞닿아 있다.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는 ‘전쟁의 합리적 기대효용 이론’을 제시했다. 전쟁은 지도자의 충동과 광기보다 철저하게 손익을 계산한 합리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로 본다. ①군사력, 동맹 지원, 지형, 사기 등을 감안한 승리할 확률 ②영토와 자원, 명예, 이념적 목표 등 승리 시 얻을 수 있는 보상 ③영토 상실과 배상금, 체제 붕괴와 같은 패배 시 손실 ④전쟁 소요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쟁의 기대효용이 현상유지 때보다 클 때 전쟁을 택한다.

이 이론도 역시 한계는 많다. 상대방의 능력 또는 전쟁 의지를 정확하게 가늠하게 어렵게 만드는 정보의 비대칭성은 기대효용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 국내 정치적 상황과 지도자의 인지적 편향, 집단적 사고 개입, 민족주의 열광은 인간의 합리성을 제한하며 확률을 계량화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대통령과 군부, 의회, 여론 등 다양한 주체들의 효용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난관이다. 국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끊임없이 권력을 극대화하고 패권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다는 공격적 현실주의론도 있고 영토·자원 분쟁, 무역로 확보를 위한 지정학적 분쟁 등도 전쟁의 동기다.

압도적 패권국 없어 대공황·2차 대전 발생


어떤 유형의 국제체제가 더 안정적이냐를 두고선 명확성과 책임성이 뚜렷한 양극, 긴장을 분산시킬 수 있는 다극, 강력한 단극체제 등이 대립하고 있다. 단극체제론자인 찰스 킨들버거는 ‘패권안정론’을 내세웠다. 국제 정세와 경제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하나의 압도적인 지배국가가 공공재를 공급할 의지와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패권국이 공급해야 할 공공재로 시장 개방, 위기 시 안정적 자본 공급, 국제 통화 질서 유지, 각국 거시 정책 조율, 금융 위기 시 유동성 공급 등을 들었다.

1, 2차 대전 사이, 즉 전간기(戰間期) 때 이런 역할을 할 국가가 없었던 것이 대공황을 불렀고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공공재를 제공하지 못해 위기가 발생한다는 ‘킨들버거 함정’이다. 기존 패권국 영국은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영향력을 상실했고 떠오르는 미국은 승전 이후 고립주의로 돌아가 국제질서 조정자 역할을 떠맡지 않았다. 영국은 할 수 없었고 미국은 하지 않으면서 전환기 리더십 공백을 초래했다. 미국은 오히려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보호주의를 확산시켰고 유럽 국가들에 빌려준 대출을 회수하면서 금융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이런 무정부 상태의 국제정치가 히틀러의 야욕을 억누르는 데 실패했다.

로버트 길핀은 킨들버거의 이론을 국제 정치에 접목해 보다 현실적인 시각으로 발전시켰다. 킨들버거는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한 선의의 공급자로서의 패권국 역할을 강조했다. 이에 비해 길핀은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 질서 유지 역할을 하는 이기적인 패권국을 부각시켰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하나의 패권국의 존재는 안정적인 국제 정치·경제 질서 유지에 필수적이다. 다만 패권국은 자신이 만든 규칙을 따르지 않은 국가에 제재를 가하며 질서 유지에 따른 비용을 청구한다. 동맹국 방어를 위한 해외 군사기지 운영과 국제 통화·무역 체제 관리 등으로 인한 과잉 확장, 질서 유지에 따른 비용 증가로 패권국은 쇠퇴의 길을 걷고 도전국과 충돌이 발생한다고 길핀은 주장했다. 이른바 '패권변동론'이다. 미국·중국의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전쟁 등 끝없이 벌어지는 충돌은 어떤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④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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