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가총액 1위' 소프트뱅크 회장의 승부수, 한국도 서둘러야
2026.07.02 17:11
| ▲ 6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사이버 보안 솔루션 발표회에서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이 연설하고 있다. |
| ⓒ EPA 연합뉴스 |
미국 오하이오주 파이크 카운티에는 냉전 시기 핵무기용 농축우라늄을 만들던 포츠머스 시설이 있다. 2001년 가동을 멈춘 이 '원자 유산'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10기가와트(GW)급, 즉 원자력 발전소 10기에 맞먹는 전력을 빨아들이는 초대형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단지로 말이다.
이 단지에 필요한 발전 설비 10GW 가운데 9.2GW가 천연가스 발전으로 채워지는데, 그 재원의 상당 부분이 미·일 전략 통상·투자협정에 묶인 약 333억 달러(51조 6000억 원)의 일본 자본이다. 미국 땅에 미국의 전기를 깔기 위해 일본 돈이 들어간다.
이는 2026년 AI 패권 경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 지점은 더 똑똑한 모델도, 더 빠른 반도체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돌릴 전기다. 이 점을 생각하며 지난주 일본 시가총액 1위 기업, 소프트뱅크그룹 주주총회에서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이 펼친 청사진을 읽어보자.
손 회장은 19세에 세운 '50년 인생 계획'을 수정했다. 68세인 그는 은퇴 대신 "70대에 초인공지능(ASI)을 실현하겠다"라는 새 목표를 내걸었다. 2042년까지 순자산가치(NAV)를 1000조 엔(9546조 8000억 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숫자까지 정했다. 현재 소프트뱅크의 순자산가치는 약 74조 엔(706조 5000억 원)이다. 16년 만에 25배를 키운 그가 다시 다가올 16년에 13배 성장하겠다고 외친 셈이다.
그는 자신의 전략을 두고 보드게임 오셀로에 비유했다. 앞으로의 승부는 네 모서리, 네 지점을 먼저 차지하는 데서 갈린다는 것. 손 회장이 꼽은 네 모서리는 첫째, AI 모델(오픈AI와의 동맹) 둘째, 반도체(지분 약 90%를 쥔 Arm, 그리고 미국 반도체 제조를 겨냥해 약 2% 지분을 사들인 인텔 투자) 셋째, AI 인프라(데이터센터) 넷째, 로봇(올해 말 마무리될 산업용 로봇 2위 ABB 로보틱스 인수 등)이다. 'AI의 머리'인 앞의 둘과 'AI의 손발'인 뒤의 둘을 모두 선점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손 회장은 이 전체를 '황금알 낳는 거위'에 비유했다. 시장은 눈앞의 자산(황금알)만 보고 알을 낳는 거위, ASI의 잠재력을 외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손 회장의 야심은 분명하고, 배팅의 규모도 남다르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을 놓을 기반, 전력이다.
손 회장의 조용한 움직임, '전력을 확보하라'
| ▲ 후쿠시마 1 원전의 모습 |
| ⓒ 연합뉴스 |
모델도, 반도체도, 로봇도 전기로 움직인다. 지금 전 세계가 부딪힌 병목 지점은 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력이 부족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연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두 배 이상 늘어 약 945테라와트시(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데이터센터 전력량만으로도 오늘날 일본이 1년 동안 쓰는 전력량과 맞먹는 수치. 특히 전문가들은 AI 전용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4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업계에서 이 현상을 'AI 시대의 숨은 병목'이라 부르는 이유다.
글로벌 빅테크끼리의 경쟁은 이미 '전기 확보전'으로 옮겨갔다. 송전망 연결에 수년이 걸리자, 데이터센터 옆에 발전소를 직접 짓는 '온사이트 발전'이 늘고 있다. 가스터빈·초고압 변압기 같은 핵심 설비의 납기는 과거의 2~3배로 길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원전 계약을, 아마존은 소형모듈원전(SMR)을, 구글은 지열발전을 손에 쥐었다. 전기가 곧 경쟁력이다. 손 회장도 언급은 안 했지만,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올해 1월 오픈AI와 소프트뱅크는 발전·전력 개발 자회사 'SB 에너지'에 각각 5억 달러(7746억 원)씩 투자했다. SB 에너지는 오하이오·텍사스 데이터센터의 전력 인프라를 책임지는 회사다. 둘째, 올해 5월 소프트뱅크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과 전력망 안정화를 겨냥해, 기가와트시(GWh)급 아연-할로겐 배터리 사업에 착수했다. 리튬 이온보다 값싸고 흔한 소재를 쓰는, 고정형 전력 저장에 특화된 선택이다. 셋째, 소프트뱅크는 일본 최대 전력회사 도쿄전력(TEPCO)의 자본 제휴 후보로 나섰다. 이 안건이 가장 상징적이다.
손 회장은 칩 설계사(Arm), AI 기업(오픈AI), 로봇(ABB)을 넘어 이제 발전사(TEPCO)와 전력 저장(배터리)까지 직접 운영하기를 바란다. 오셀로의 네 모서리는 판이 깔려 있어야 의미가 있고, 그는 그 판을 조용히 사들이는 중이다. 경영진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AI 가치사슬 기반에는 전력이 있고, 그 전력을 '외부 구매'가 아니라 '확보'하고자 하는 기업이 다음 라운드의 주도권을 쥔다는 걸.
흥미로운 점은,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전력 확보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 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2024년 19TWh에서 2034년 57~66TWh로 세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1500만~1800만 가구의 1년 전력 사용량에 해당하며, 같은 기간 일본 전체 전력 수요 증가분의 약 60%를 데이터센터가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공급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데 있다. 도심권에서는 송전망 하나를 새로 잇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IEA는 선진국 기준 4~8년으로 본다), 그 전력을 떠받칠 가스 발전소 한 기를 짓는 데 최대 10년이 걸린다. 허가 절차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손 회장은 주총에서 "일본은 데이터센터 인허가에만 6년이 걸린다"라며 "이대로면 세계 시장에서 뒤처진다"고 작심 비판했다.
손 회장이 택한 탈출구로 내민 카드가 바로 도쿄전력이다. 도쿄전력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의결권의 50.11%를 쥔, 사실상 국유화된 회사다. 정부가 사고 배상·제염에 투입한 무이자 대출만 약 10조 2000억 엔(97조 3549억 원)에 달한다. 그 도쿄전력이 소프트뱅크·KKR·블랙스톤·블랙록·일본산업파트너스(JIP) 등 5개 후보와 1조 엔 넘는 자본 제휴 협상을 진행하며 실사에 착수했다. 그렇게 올해 들어 후쿠시마 사고 15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인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재가동에 들어간다.
동시에 데이터센터 수요가 전력회사의 사업 모델 자체를 뒤바꾸는 시대, 손 회장은 일본 내 전력 확보의 교두보로 국영 전력회사의 차기 대주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또한 밖에서도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앞서 말한 오하이오 333억 달러가 그 증거다. 자국 발전 속도를 본 일본 자본은 미국 연방 부지에 가스 발전소를 건설하며 'AI 전력의 해외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모서리
|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 ⓒ 연합뉴스 |
대한민국은 'AI 3대 강국(G3)'을 국정 1호 과제로 내걸었다. 2026년 예산에 약 10조 원을 편성하고, 중장기로는 향후 5년간 약 100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유도하겠다고 예고했으며, 'AI 고속도로'(GPU·NPU 연산장치, 초대형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확보를 양대 축으로 삼았다. 올해 1월 시행된 AI기본법은 AI를 개별 산업이 아닌 '국가 핵심 인프라'로 규정했다. 자체 AI 모델이 14개로 미국(128개)·중국(95개)에 크게 뒤처진 현실을 직시한, 방향 자체는 옳은 드라이브다.
문제는 이 야심이 딛고 설 '판'이다. 대한민국의 현재 AI 데이터센터 운영 용량은 약 725㎿이며, 계획 단계까지 합치면 1.2GW에 이른다. 대한민국 전력에 들어온 데이터센터 전기 사용 신청은 2023년 906㎿에서 2027년 7343㎿로 약 8배 폭증했다.
그러나 실제 공급 가능한 전력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데이터센터 최대 추가 수요를 2038년 기준 4.4GW로 잡았지만, 현재 추진 중인 상위 10개 사업만 합쳐도 이 계획을 초과한다. 전력계통영향평가 1차 기술 검토 신청은 지난해 9월 318건에서 12월 511건으로 석 달 만에 60% 넘게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수요가 폭증하는 시점에 한전이 위축되고 있다. 경영난에 빠진 한국전력은 송·변전망 투자를 미뤄 2026년까지 약 1조 3000억 원을 절감하는 자구안을 추진 중이다. 데이터센터는 수도권에 몰리는 데 서울의 전력 자립도는 전국 최저다. 'AI 고속도로'를 외치는 사이, 그 고속도로에 흘려보낼 전기를 만들고 나르는 인프라가 뒤로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라운드의 경쟁우위는 더 좋은 GPU 조달이 아니라 안정적·장기적 전력 확보에서 갈린다. 손 회장이 발전사·배터리·온사이트 발전을 직접 품에 안으려 하듯, 우리나라는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자가발전 등을 중요한 투자로 생각하고 있는가? 'AI 인프라 투자'의 일부로 끌어안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고속도로'의 기반은 전력이다. 토대 없는 건물은 없다. 'AI 정책'에 힘을 쏟고 있지만, 구조적 병목을 AI 정책의 일부로 보고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청사진대로 이뤄질 수 없다. 인허가·계통 연계 기간 단축, 송배전망 투자, SMR·원전을 포함한 발전 포트폴리오, 그리고 한전 재무 제약 등 해결해야 할 부분은 많다. 미·일이 통상협정에 전력 자본을 논의했듯, 전력은 이제 산업정책이자 외교 의제다.
특히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현장 수요의 괴리, 그리고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블랙아웃' 위험은 입법으로 메워야 할 공백이다. 데이터센터 전력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미국이 '요금 납부자 보호 서약'으로 빅테크에 비용을 지운 사례를 보라), 수도권 집중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는 법과 제도의 문제다.
구체적 정책 묶음이 필요하다. 발전 포트폴리오에서 SMR과 차세대 원전, 가스, 재생에너지+에너지저장장치(BESS)의 역할을 명확히 나누고, 인허가·계통 연계의 시간을 단축하며, 데이터센터를 전력망의 부담이 아니라 수요 조절에 협력하는 '그리드 파트너'로 설계하는 일이다. 송배전망 투자가 한전의 재무 사정에 좌우되지 않도록 재원 구조를 다시 짜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느 것 하나 AI 부처만의 일이 아니며,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손정의는 시장이 거위 뱃속의 황금알 공장, 곧 ASI를 보지 못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거위는 먹어야 알을 낳는다. AI라는 거위는 전기에 굶주려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51
필자 이태호는 테크 전문 크로스보더 미디어 '픽쿨(Pickool)'의 창업자 겸 발행인이다. 창간 전에는 오라클, 가트너, KT 등에서 근무하며 전략 기획, 사업 개발 및 영업 등에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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