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글쓰기의 만남, 고3 작가의 소설 출간기
2026.07.02 16:11
"어디 여행 가서 열흘 간 친해진 외국인 여사친하고 헤어질 때 해볼 법한 허그였다." - <너와 나의 킥오프> 65쪽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과의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순간,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속 문장을 칭찬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소설 <너와 나의 킥오프>의 저자인 김주안 군은 웃으며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지난 5월 초 전화로 진행됐다.
"자전적인 이야기의 비율이 90% 이상이에요. 처음에는 하늘이의 시점으로 써 볼까도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글을 멘토링해 주신 엄유주 작가님께서 '네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 작가들도 그렇게 시작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그 조언을 따르게 됐습니다."
치밀하게 준비한 경기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 연애도 공부도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그러므로 <너와 나의 킥오프>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첫사랑의 이야기가 된다.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
극적인 전개 보다는 미묘한 감정 변화와 갈등, 고민이 독자의 마음을 이끌어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갑작스레 커져버린 호감이라든지, 때로 인과성이 불분명한 만남과 헤어짐, 설명도 이해도 어려운 감정의 변화들 또한 누구나 첫사랑을 하며 뒤척이고 고민하며 건너야 했던 시간들 속에서 이해의 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단순히 연애 이야기만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주변에서 '있을 때 잘해라', '사랑은 헤어짐 후에 완성된다' 같은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청소년 시기에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 ▲ 너와나의 킥오프 표지 김주안 소설 너와나의 킥오프 |
| ⓒ 열매문고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품 속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나에게는 하늘이보다 축구가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듯한 그런 뉘앙스가 첫사랑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도 들렸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잡으려 애쓰고 있으며, 황금 분할선을 쉽게 찾지 못한다.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 비중이 크기에 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제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은 괜찮지만 주변 인물들은 다르잖아요. 혹시라도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사생활 침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책 속) 하늘이를 많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필 과정에도 역시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처음에는 분량이 많이 부족했어요. 연결되는 에피소드를 새로 쓰고 인물의 성격도 다시 만들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종이에 전부 적기도 했어요. 원고가 100페이지였다가 200페이지까지 늘었다가, 다시 100페이지 정도로 다듬어졌습니다."
사랑보다 축구에 더 진심인, 소년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다 보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미소 지을 만한 표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어머니의 필리핀 연수 권유를 거절하는 장면에서 "이적설을 잠재우는 손흥민처럼 말했다"거나,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심리 상태를 "박지성의 무릎이나 리스 제임스와 황희찬의 햄스트링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한 것이 재미있다.
또 "트래핑 중 공이 뒤로 튀었다. 나는 이미 멀리 간 공을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와 같은 문장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 축구와 연애 경험의 은유로 누구나 공감하며 빙그레 웃음지을 만한 장면이다. 주인공 이름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는 국가대표 수비수 김민재에게서, 여주인공 하늘은 문경상무 소속 권하늘 선수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이러한 축구적 비유가 작품에 유쾌한 리듬감을 더한다. 특히 작가가 축구공만 보이면 자석에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기던 친구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은 대학 입시 준비로 한창 바쁜 고등학교 3학년이다. 이 와중에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로 완성할 수 있었을까? 김주안 군은 이러한 도전을 가능하게 한 배경으로 2년 전 수료한 목도나루학교를 꼽았다.
"목도나루학교는 하고 싶은 것을 실제로 할 수 있는 학교예요. 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아무 학교에서나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곳에도 야간 자습은 있지만 목적이 달라요. 목도나루학교에서 '그 시간에 영어와 수학을 더 해라'라는 분위기였다면 글을 쓸 의욕 자체가 꺾였을 것 같습니다."
출판 과정도 순탄 하지만은 않았다. 출판 비용은 후원으로 마련해야 했지만, 처음에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무일푼으로 시작했어요. 후원을 받아야 했는데 주변에 알리는 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다시 읽어보면 고쳐야 할 부분도 많고요. 그래도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 ▲ 축구하는 김주안군 김주안 군이 2024년 목도나루학교 신발끈여행에서 축구를 연습하고 있다. |
| ⓒ 곽두호 |
앞으로 체육 교사나 지도자 등 체육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김주안 군. 그는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앞으로도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쓰고 싶다고 말하기보다 먼저 써야 합니다"
김주안 군의 소설 출간 뒤에는 꾸준히 글쓰기를 지도해 온 엄유주 작가의 멘토링이 있었다. 엄 작가와도 지난 5월 초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엄 작가가 처음 김주안 군을 눈여겨본 것은 그의 송면중학교 시절 북카페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었다. 머뭇거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이후 목도나루학교 학생들의 에세이를 피드백 하는 과정에서 다시 그의 글을 접했고, 특히 사랑을 주제로 쓴 에세이는 다른 학생들과는 결이 다른 문장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표현 방식이 독특했고, 자신의 경험을 글로 바꾸는 힘이 있었어요. 예전에 개인 문집을 꾸준히 써 온 경험이 글쓰기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김주안 군은 직접 엄 작가를 찾아와 소설을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세이와 소설은 전혀 다른 작업이었다.
"진행이 잘 안 됐어요. 경험을 그대로 적는 에세이와 달리 소설은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네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조언했습니다."
엄 작가는 청소년이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풀어내는 과정 자체를 '성장소설'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허구를 더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미성년자의 경험을 다루는 만큼 현실과 허구의 경계, 주변 인물에 대한 배려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자신의 경험을 쓰다 보면 설명이 부족하거나 현실과 허구가 혼재될 수 있어요. 특히 청소년 작품은 교육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했습니다."
제목을 정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축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김주안 군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여러 차례 고민을 거듭했다. 엄 작가는 이 작품이 결국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붙잡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성장'을 담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엄 작가는 무엇보다 꾸준히 쓰는 습관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쓰세요.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쓰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쓰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쓰다 보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이어 "겉멋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매일 쓰지 못한다"며 "꾸준히 쓰는 사람만이 글쓰기의 어려운 순간을 넘어설 수 있고,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좋은 참고 자료로 삼게 된다"고 말했다. 엄 작가는 김주안 군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배경으로 목도나루학교의 교육 환경도 꼽았다.
"목도나루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할 기회를 주는 학교입니다.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고, 자신의 관심사를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돕죠. 김주안 군도 축구와 글쓰기라는 관심사를 꾸준히 발전시켜 결국 한 권의 책이라는 결실로 이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꿈이 없다고 말하는 청소년이 많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기록하고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꿈을 만들어 가는 시작"이라며, 청소년들에게 작은 기록이라도 매일 이어 가기를 당부했다.
한편,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상세한 뒷이야기는 오는 9일 저녁 7시 목도나루학교에서 열리는 김주안 작가와의 북토크 시간에 들어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목도나루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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