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전쟁은 더 이상 해결 수단이 아니라는 교훈
2026.07.01 20:08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집권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에너지 시설이 파괴돼 연료가 부족해진 상황을 거론한 것이지만 푸틴이 2022년 2월 전쟁 개시 후 국가적 위기 상황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푸틴은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을 것이다. 집권 후 2000년 2차 체첸전쟁을 마무리했고, 2008년 조지아와 친러 성향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 간 전쟁에 개입해 닷새 만에 이겼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우크라이나도 속전속결로 진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면적 28배, 인구 4배, 국내총생산(GDP) 20배 차이인 우크라이나는 누가 봐도 게임이 안 되는 상대였다. 하지만 전쟁은 이미 4년4개월을 넘겼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1568일보다 길다.
러시아의 진격은 사실상 멈췄고, 점령했던 일부도 내줬다. 신병의 생존 기대 수명이 훈련소 입소 후 10일~3주, 전장 투입 후 20~35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나가면 죽어야 할 상황이니 징집도 모집도 어려워졌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는 우크라이나의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 공격에 취약성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는 벌떼 드론으로 정유시설을 집중 타격했다.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가 연료 배급제를 시행하고 있고, 휘발유를 수입하기로 했다. 2014년 병합했던 크름반도는 본토 물자가 끊기며 비상사태가 선언됐다.
푸틴, 러·우 전쟁 ‘국가적 위기’ 고백
트럼프는 MOU에서 이란 재건 약속
전쟁은 한번 들어가면 쉽게 못 나와
미·러도 국제 지지 없이 뜻대로 안 돼
푸틴은 지금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고, 지칠 것 같았던 유럽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지원을 늘리고 있다. 푸틴이 “이란 관련 국면이 지나가면 미국 대표단이 다시 모스크바에 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미국에 종전 중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은 어떤가. 이란의 반미 정권을 무너뜨리면 핵 문제든 뭐든 뜻대로 될 거라고 믿고 전쟁을 시작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전쟁이 4주면 끝날 거라고 호언했지만 현실을 자각하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정권 지도부 40여명을 폭사시켰지만 지상군 투입 없는 참수 작전은 한계에 봉착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허를 찔렸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와 물가가 치솟자 트럼프는 협상을 선택했다.
109일 만에 서명한 종전 양해각서(MOU)에는 이란의 요구사항이 대부분 담겼다. 미국은 최소 3000억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이란을 재건해주기로 했다. 이란은 더 이상 미국의 ‘불량국가’ ‘악의 축’이 아니라 정상국가로 대접받게 됐다. 트럼프는 MOU 내용 비판에 “2~3주 더 폭격을 계속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겠느냐”고 했다. 부통령과 CIA 국장이 ‘전쟁에 승리할 수 없다’고 반대했을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와 미국이 치러야 할 대가는 크다. 러시아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존재감이 줄어든 위상을 높여 유라시아를 지배하려던 기대가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도 나토에 가입하며 단단히 뭉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에 공공의 적이 됐다. 푸틴의 장기 독재도 위태로울 수 있다.
미국의 동맹은 이번 전쟁을 무조건 지지하진 않았다. 미국이 국제질서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동력이었던 동맹과의 공조에 금이 간 것이다. 이는 미국 패권이 쇠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자국 내에선 쓸데없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뒤집은 트럼프에 대해 마가 진영도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러·우 전쟁도, 미·이란 전쟁도 끝나지 않았다. 최종 결말은 모르지만 현재로선 러시아도, 미국도 이겼다는 평가를 듣기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전쟁은 전쟁에 한번 발을 담그면 제 뜻대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미·러는 아무리 강대국이라 해도 국제사회가 수긍하지 않은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국력 낭비와 위상 추락으로 귀결될 뿐이라는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두 나라의 전쟁으로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대만을 무력 침공한다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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