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 전
[세상 읽기]설정의 함정
2026.07.02 20:09
e메일을 읽고 있다. AI 서비스 중 하나인 클로드를 만든 앤트로픽에서 온 개인정보 처리 방침 변경 메일이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휴지통에 버렸을 메일을 읽은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전 본 글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명령 이후 앤트로픽이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얼굴 인증 같은 생체 정보를 수집하는 항목을 추가했다는 글이었다. 평소 팩트체크가 중요하다고 말해온 만큼 실천을 위해 메일에 연결되어 있는 문서를 열었다. 잘 쓰인 약관답게 끝까지 읽기 힘든 지루한 문장이 끝없이 이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6년 7월8일부터 발효되는 앤트로픽의 개인정보 보호정책에는 ‘안면 기하학 템플릿(Facial Geometry Templates)’으로 불리는 생체 정보 수집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진 않고 특정 상황에서 ‘나이’ 혹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요청된다. 요청받은 사용자는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을 제시하고 카메라를 통해 본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분증 번호와 생년월일, 얼굴 형태 같은 개인정보가 수집된다. 미성년자가 아님을 증명하려다 얼굴 형태 같은 민감 정보를 넘길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지만 ‘특정 상황’이라는 말은 모호하다. 앤트로픽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나이와 신원 확인을 요청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수집되는 것은 생체 정보만이 아니다. AI 기업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가져간다. 대화 내역도 그중 하나다. 기본 설정이 사용자의 대화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돼 있어 관련 설정을 찾아 끄지 않는 한 AI와 나눈 모든 대화 내용은 AI 기업에 수집되고 학습된다. 관련 설정을 찾아 꺼도 그동안 학습된 내용은 되돌릴 수 없다.
학습 설정이 꺼져 있어도 대화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내용은 저장되고, 검토되고, 보관된다. 보관기간은 기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2~3년, 소송 상황에서는 그 이상 보관된다. 나의 데이터임에도 기업이 학습하거나 볼 수 없도록 완벽하게 끌 수 없다. 설정한 내용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우리의 활동으로 생성되는 메타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챗GPT를 만드는 오픈AI는 AI 기반의 웹브라우저 아틀라스를 통해 웹상에서 일어나는 행동 데이터를 추가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개인화된 AI 서비스(Personal Intelligence)를 내세우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개인의 데이터를 자사의 AI 모델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e메일과 유튜브, 사진과 문서에 흩어져 있던 개인의 디지털 흔적들이 ‘나’라는 하나의 견고한 그림으로 통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의 수집과 활용 대다수가 별도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자가 설정에 들어가 끄기 전까지는 수집되고 활용된다는 의미다. 설정의 이름도 ‘모두를 위한 개선’ ‘맞춤형 추천’ ‘서비스 개선’이라는 말로 곱게 포장돼 있다. 관련 설정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변경하다 보니 그동안 참 알뜰하게도 가져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끝까지 읽지도 못할 개인정보 처리 방침 변경 e메일 하나 툭 보내놓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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