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부국인데, 왜?”…베네수엘라, ‘휘발유’ 없어 지진 구조 차질
2026.07.02 17:32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베네수엘라 강진 피해 복구가 연료 부족과 장비난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임에도 휘발유 부족으로 중장비가 멈춰 서면서 구조대원들은 맨손과 삽에 의존한 채 생존자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1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강진 피해가 집중된 베네수엘라 북부 라과이라 구조 현장에서는 정부 소유 굴착기가 연료를 공급받지 못해 가동을 멈춘 상태다.
현장에서 작업 중인 굴착기 운전자는 CNN 취재진에게 “넣을 휘발유가 없다”고 말했다.
붕괴된 건물 잔해를 치우기 위해서는 굴착기 등 중장비가 필수적이지만, 연료 부족이 이어지면서 구조대원들과 주민들은 곡괭이와 삽은 물론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며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장비 부족 문제도 구조 현장의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가족을 찾기 위해 급히 귀국한 엔지니어 하셀 멘도사는 “철근을 절단할 장비가 없어 적절한 도구를 찾는데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했다.
혼란을 틈탄 범죄도 발생했다. 현지 경찰은 지진 피해 현장에서 귀중품을 훔친 혐의로 구조 작업에 참여한 공무원 4명을 체포했다.
현지에서는 이 같은 구조 현장의 혼선이 단순한 재난 대응 실패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반의 붕괴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평론가 카르멘 베아트리스 페르난데스는 “이번 참사는 국가가 억압과 선전에만 역량을 집중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는 20여 년간 이어진 포퓰리즘 정책과 정권 유지 중심의 국가 운영이 현재의 위기를 키운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베네수엘라는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부터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차비스모’로 불리는 포퓰리즘 정책을 지속해 왔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막대한 석유 수입을 정치적 지지 기반 확대를 위한 공공주택과 의료 등 복지 사업에 집중 투입했다.
그러나 2013년 차베스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마두로 정부에서도 같은 정책 기조가 유지되면서 경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베네수엘라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이 75% 감소했고,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해외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지진 대응까지 미흡하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최근 지진 피해 지역을 찾은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현장에서 분노한 주민들로부터 “꺼져라”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다.
반면 정부는 재난 대응이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은 “우선순위에 따라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하는 새로운 체계를 가동했다”고 밝혔다.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도 국민들에게 정부를 믿고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강진이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장기간 누적된 경제난과 국가 인프라 붕괴, 행정 시스템의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한다. 구조 장비와 연료 확보가 늦어질수록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도 빠르게 줄어드는 만큼 국제사회의 지원과 함께 베네수엘라 정부의 대응 역량이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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