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빚 대출은 소금물··· 파산과 면책이 답

2026.07.02 06:40

저리 대출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금융복지상담센터장을 역임한 박정만 변호사는 가계부채 2000조원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저리 대출보다 과감한 파산과 면책이라고 강조했다.
박정만 변호사(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센터장)는 “한계 채무자에 대한 구제 제도를 부도덕하게 바라봐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한 자영업자는 미수금을 받지 못해 돈을 빌렸다. 가게를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손님이 끊기면서 원리금 상환은 불가능해졌다. 그는 다른 빚을 내서 기존 빚을 막는 ‘돌려막기’로 들어갔으나, 채무는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삶의 기반 자체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벼랑 끝 위기감이 그를 덮쳤다.

이런 곤경에 처했을 때 시민들은 ‘공적 금융 안전망’에 기댈 수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서민금융진흥원은 국가 보증을 기반으로 저금리 대출(정책금융)을 지원한다. 법원으로 가면 상환능력에 따라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 절차를 밟아 채무 중 상당 부분을 ‘면책’받을 수도 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권자와 협의해서 변제 조건을 조정하는 ‘워크아웃’ 제도도 있다.

그러나 이런 ‘구제 제도’와 채무자의 처지가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이미 감당 못할 빚을 진 사람이라면 서민금융진흥원의 저금리 대출을 받아봤자, 그 돈으로 원리금을 갚다가 또 다른 빚으로 갈아타는 악순환에 휘말리게 된다. 미래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가 섣불리 ‘개인회생’을 인가받으면, 생명줄 같은 수급비를 쪼개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고통에 빠진다. 반면, 사업 실패자가 파산선고를 받으면 면책 이후 여러 해 동안 신용거래가 제한되어 창업·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없다. ‘환자’의 상태에 맞는 정확한 ‘처방’이 필요한 것이다.

맞춤형 처방을 받으려면 서울, 경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이하 센터)’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센터의 직원들은 여러 차례에 걸친 심층 상담을 통해 채무자의 재무 상태와 삶의 궤적을 낱낱이 파악한 뒤, 가장 적합한 구제 제도 설계와 더불어 ‘재기(再起)’에 필요한 복지제도까지 연결해준다.

박정만 변호사는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5년,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에서 2년간 센터장으로 일하며 한계 채무자들의 곁을 지킨 전문가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많은 한계 채무자들이 센터를 방문했다. 구제 제도(파산, 회생, 워크아웃 등 채무조정)로 빚의 일부를 면책하는 방안을 권하면 반응이 어땠나.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아침부터 재수 없는 소리 듣는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한국 시민들은 채무상환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100명 중 95~96명은 사력을 다해 빚을 갚다가 불가항력에 빠진 분들이었다. 심지어 상담하러 와서도 자신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 아닌가’라고 자책감에 찌들어 있었다. 그래서 파산, 회생 등 구제 제도를 통한 면책이 아니라 어떻게든 대출을 더 받아 빚을 갚겠다는 분들이 월등히 많았다.

채무상환 의지가 높다는 것은 어쨌든 바람직한 일 아닌가.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한계 채무자에 대한 구제 제도를 부도덕하게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오히려 문제다. 당사자들이 죄책감 때문에 채무조정을 피하다가 적절한 시기를 놓쳐 끔찍한 상황에 빠지는 사례가 숱하다. 사업 실패로 수억 원의 빚을 진 월 소득 200만원의 채무자가 ‘저금리 정책대출’로 빚을 갚아나가려 시도한다면 재기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골절 환자에게 수술(파산, 회생 등) 대신 파스(저금리 대출)를 처방하는 것과 같다. 소득이 있더라도 빚 상환이 불가능한 채무자라면, 파산선고로 부채에서 면책시켜 재기를 도모하도록 돕는 것이 맞다. 나는 가계부채가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파스 처방’의 난립 때문이라고 본다. 환부가 썩어가는데 파스나 붙이고 있으니, 빚이 늘고 ‘노동-소비-생산-고용-노동’의 선순환 구조는 무너진다.

한 시민이 폐업으로 텅 빈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금융위의 포용금융 TF팀에서는 저금리 대출 확대를 핵심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취약계층에게 금융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한편 저금리 대출로 기존 빚을 막게 해주는 방식(대환대출)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그러나 이 방안은 금융이라는 산업의 본질을 가볍게 여기는 측면이 있어서 불안하다. 금융은 본래 차입자의 상환능력을 평가해 대출하고 미상환 위험을 관리하는 산업이다. 서민이나 취약계층이라도 상환능력이 있으면 빌려주고, 부자도 상환 전망이 불투명하면 빌려주지 않는 것이 본연의 원리다. 이 원리를 무시하고 서민, 취약계층, 청년 등의 대상을 선별해 그들에게 적합한 대출상품을 할당하는 식의 정책은 실패하기 쉽다.

32조원 규모의 중금리 대출도 논의 중이다.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가 2000조원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더 낮은 금리로 빌려주자’라는 식의 발상만으로는, 정책의 선의와 별도로, 전체 부채 총량만 더 늘릴 위험이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신용 확대는, 그 당사자가 재기하지 못하는 경우엔 빚만 더 불릴 뿐이다. 바다에서 표류하는 사람에게 소금물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나 점점 탈수 증상이 심해지게 된다.

채무자에겐 정책금융으로 빌리는 돈도 결국 부채다. 이로 인해 상환 부담이 오히려 더 커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저·중금리 대출을 확대하지 말아야 하는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순서가 틀렸다. 대출(신용) 확대에 앞서 ‘적극적 채무조정’으로 기존 빚을 과감하게 털어내 가계부채 총량부터 줄여야 한다. 포용금융의 핵심적 정책 목표는 ‘한계 채무자의 재기(再起)’로 집중되어야 한다.

5월22일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화 중인 질베르 웅보 ILO(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왼쪽). Ⓒ연합뉴스


이미 개인파산, 회생, 워크아웃 등 구제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 않나.

제도는 있지만 제대로 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구제 기관들이 채무자의 처지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획일적인 처방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빚에 시달리는 기초수급자가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찾아가면 주로 워크아웃을 처방받는다. 신복위의 운영 재원은 금융회사 출연금에서 비롯되는 만큼 원리금이 깎이는 파산·회생보다 빚을 갚도록 설계된 워크아웃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기초수급자가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가면 최저생계비로 받은 수급비를 쪼개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데, 이게 맞는가? 기초수급자들은 법률사무소를 찾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주로 ‘개인회생’을 유도한다. 개인파산으로 가면, 성공보수는커녕 착수금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초수급자에겐 파산(면책)이 가장 올바른 옵션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채무자들은 제도의 복잡성 때문에 자기 처지에 어떤 옵션이 맞는지 알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과 경기의 금융복지센터는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고 자평한다.

예컨대 금융복지센터는 ‘골절 환자에게 파스를 처방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센터는 지자체가 운영하므로 ‘주로 워크아웃으로 가야 한다(신복위)’라거나 ‘회생 사건을 많이 수임해야 한다(법률사무소)’ 같은 유인이 없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상담에 임할 수 있다. 센터 측은 여러 차례에 걸친 장기적 상담을 통해 한계 채무자의 신용등급이나 재산 같은 뻔한 데이터 이외에도 당사자의 부채 발생 원인(주거비, 임대료, 교육비, 의료비, 식비 등), 생활 이력, ‘빚 문제 해결 뒤 재기에 필요한 복지’ 등 다양하고 세세한 정보를 알아낸다. 특정 채무자를 20~30회씩 상담한 사례도 허다하다. 그러는 와중에 채무자와 긴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와 ‘관계’에 기반해서 파산, 회생, 워크아웃 중 채무자의 재기에 가장 적합한 옵션을 가려낸다.

개인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한계 채무자들이 빚 문제만 해결한다고 재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반복 상담하는 것이다. 채무 발생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면 이를 적절한 복지제도와 연계시켜 몇 가지 주요 사안들을 해결할 수 있다. 파산이나 회생으로 일단 빚 문제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주거지나 일자리가 없다면 그분들은 다시 채무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센터는 채무자에게 임대주택이 필요하면 행정복지센터, 일자리가 없다면 고용복지플러스센터와 연결시켜 그 문제를 푼다. 의료비와 교육비 지원도 가능하다. 이렇게 주거와 고용이 해결되면 상담자의 재무구조가 확 달라진다. 빚을 빚으로 돌려막던 사람들이 그 늪에서 빠져나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처럼 재무상담-채무조정-복지 연계가 결합된 ‘재기 중심의 금융복지사업’이 저금리 신용의 확대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저금리 대출 확대에 앞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채무조정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일단 ‘개인 도산(파산과 회생)’ 및 기존 빚에 대한 면책을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시행해서 가계부채를 크게 줄여야 한다. 그 규모가 2000조원에 육박하는 지금의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거셀 것이다.

한계 채무자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한계 채무자가 증가하면 가족해체, 자살, 범죄 등 사회불안이 확산된다. 소비, 생산, 고용에도 연쇄적 영향을 미쳐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채무자의 재기가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유다. 개인 도산 제도와 워크아웃은 경제안정의 필수 장치다.

금융복지사업의 수혜를 입은 분들도 재기하려면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주거, 창업, 긴급 의료비 같은 용도로 사용할 ‘마중물 자금(면책자가 다시 소득을 만들 수 있도록 이어주는 최소한의 재기 금융)’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선 면책 이후 여러 해 동안 신용거래가 막혀버린다. 갑자기 아프기라도 한다면 다시 고금리 부채를 질 수밖에 없다. 면책자에게 ‘재기 금융’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벼랑 끝에서 구해놓고 사막 위에 올려놓는’ 꼴과 다를 바 없다. 포용금융 방안에 따르면, 은행의 부실채권 매각이나 불법·부당 추심에 대한 규율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추심 규제에 앞서 채무자의 재기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출구부터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포용금융의 역할은 사람을 구한다기보다 추락을 잠시 멈춰주는 정도에 그치게 될 것이다.

길거리 외벽에 붙어 있는 불법 사금융 ‘카드 대납(카드깡)’ 전단들. Ⓒ연합뉴스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취약계층에 대한 저금리 신용 확대’로 돌아온다. 예컨대 금융기관들이 면책자에게 ‘재기 금융’을 제공할 수 있을까? 아까 강조한 ‘금융의 본질’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차입자의 소득 및 담보를 중심으로 신용을 평가한 뒤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이 같은 신용평가 체계에서는 설사 은행의 담당 직원이 ‘이 사람은 돈만 빌려주면 재기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도 대출할 수 없다. 그렇게 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면책자뿐 아니라 다른 취약계층에 대한 포용금융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신용평가 체계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 체계에선 소득과 담보 이외에 ‘수입·지출에 관한 관리능력’ ‘취업을 위한 노력’ ‘교육·훈련의 정도’ ‘소득 발생의 가능성과 규모’ ‘재기의 성공 가능성’ 등이 신용평가 기준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신용 확대가 가능하다. 2016년도에 출범한 서민금융진흥원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새로운 평가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포용금융을 하라고 하니, 금융회사들은 최근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현장 실무자들 처지에선 포용적으로 대출했다가 신용평가 체계를 위배했다는 이유로 배임·횡령 혐의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출 심사는 소득, 담보, 신용점수 중심으로 이뤄진다. 차입자의 상환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다른 정보들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 금융복지센터는 장기 상담을 통해 채무자의 생활 이력, 재기 가능성 등 ‘소프트 정보’를 파악한 덕분에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이 포용금융에도 필요하다는 뜻인가.

서울과 경기 금융복지센터들의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다른 공무원들이 ‘민원 부서는 욕만 먹기 마련인데 금융복지센터 같은 경우는 처음 봤다’라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자체 사업 성격상 센터들이 소규모로 운영되는 데 그쳐 유감스럽다. 서울과 경기도 센터의 상담 인원이 각각 30여 명, 40여 명 수준에 불과하다. 센터의 수혜자가 주로 취약계층이라서 표가 안 되기 때문인지 지자체장이나 시의원들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센터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서울회생법원의 다른 소식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10시간 전
[단독] JTBC 회사채 개인 투자자, 회생 협의체선 빠졌다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10시간 전
법원에 ‘적극 지도감독’ 요청한 메리츠... 홈플러스 파산 임박에 MBK 책임론 못박기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12시간 전
"이러다 다 죽어"…홈플러스 사태에 돈줄 묶인 협력사의 '절규'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14시간 전
[단독] 2500억 JTBC 채권 산 개인 투자자들, 구조조정 협상서 소외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18시간 전
중앙일보, 결국 매각 추진된다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1일 전
강원시민단체 “홈플러스 정상화 대책 촉구”
중앙그룹
중앙그룹
1일 전
법원, 중앙그룹 계열사 4곳 회생개시 결정…JTBC는 보류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2일 전
서울회생법원, 중앙홀딩스 등 4개사 회생 절차 개시 결정
중앙그룹
중앙그룹
2일 전
JTBC 자율구조조정 승인…나머지 중앙그룹 4개사 회생절차 개시(종합)
서울회생법원
서울회생법원
2일 전
법원, JTBC 자율구조조정 지원 승인…회생 개시 결정 한 달 보류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