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전
[조민근의 경제를 묻다] “이란 재건시장 열려…이대로 두면 중국이 독식”
2026.07.02 00:16
신재현 서아시아포럼 회장
석유·가스에 구리 등 광물 풍부
Q : 미국과 이란이 출구를 찾는 모습이다. 이대로 종전까지 갈 것으로 보나.
A : “남은 휴전 기간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본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찰도 생기고 파열음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양국이 각자 자국 내 정치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전쟁도 힘이 남아 있어야 한다. 미국이나 이란 양쪽 모두 이제는 짜내려야 더는 짜낼 게 없다.”
Q : 전쟁 초기 ‘미국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A : “애초 서구의 오만, 그리고 무지에서 비롯된 전쟁이다. 미국이 이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란을 궁극적 승리자로 만들었다. 종전 양해각서(MOU)가 그대로 이행된다면 이란은 지난 47년간의 경제 제재에서 사실상 벗어나게 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이란 핵 합의(JCPOA) 때보다 훨씬 큰 보상이다. 게다가 이란은 이번에 호르무즈 봉쇄의 효과를 톡톡히 체감했다. 공식적으로 호르무즈 관리청까지 만들지 않았나. 어쩌면 핵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쥐여준 셈이다.”
Q : 하지만 이란 정권도 타격이 컸다. 기존 수뇌부를 상당수 잃었는데.
A : “현지 인사들과 왓츠앱 등으로 소통해보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략 감은 잡힌다. 아무래도 혁명수비대(IRGC)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상당수 수뇌급이 사라지면서 우리로 치면 영관급들이 주역으로 떠올랐다. 우리 역사에 빗대보면 1980년대 신군부가 등장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싶다. 당시 표면적으로 장군들을 앞장세우긴 했지만, 실세는 대령급들이지 않았나. 다만 아직 내부에선 서열 정리가 끝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른바 ‘전두환’역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셈이다. 미국이라는 눈앞의 적이 사라지면 이후는 내부 정리다. 그러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를 현지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다.”
Q : 아직 전운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는데, 방문을 서두르는 이유가 있나.
A : “전쟁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재건 사업이 본격화할 것이다. 이란은 무한 잠재력이 있는 나라다. 석유와 천연가스 외에 구리·아연 등 전략 광물도 풍부하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경제 제재 기간 시장을 장악한 중국이 과실을 독차지할 것이다. 그래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원유 공급 불안, 상당 기간 이어질 것
Q : 당장은 원유가 관심이다. 다만 국제유가는 최근 다소 안정되는 추세인데.
A : “안심하기 이르다. 전쟁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갈 거다. 전 세계 수요의 30%를 공급하는 지역인데, 상당한 시설이 피해를 봤다. 아마도 복구하는 데 3~5년은 걸릴 것이다. 지금 그나마 버티는 건 비축유를 많이 풀었기 때문이다. 이를 무한정으로 풀 수는 없을 테고 올가을쯤에는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앞으로 3년간은 원유 값이 불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Q : 이번 전쟁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A : “군함 파견 요청, 상선 피격 등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가 절제하며 현명하게 대응했다고 본다. 나무호 피격 당시에는 나도 이란 측 인사들에 ‘지금 우리 대통령이 당신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장기적으로 이란과의 관계를 해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다행히 전쟁 후에도 이란 측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Q : 하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란 비판도 있었다.
A : “국가 지도자는 국익 차원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1973년 중동전쟁 때도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과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아닌 아랍 편에 섰다. 당시 한남동에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지을 수 있게 부지도 내주지 않았나. 그 덕에 이후 사우디 건설 붐에 올라탔고, 막대한 오일 달러를 벌어 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었다.”
Q : 이란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A :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자원협력대사로 2008년 이집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귀국 길에 테헤란에 처음 들렀다. 사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무작정 경제수석 등 고위직을 찾아갔는데 의외로 서로 말이 잘 통했다. 마치 경상도 지역의 몰락한 양반 가문 사람들 같다고 할까. 당장 형편은 어렵지만 예의범절은 반듯했다. 한때 페르시아 제국을 경영했던 이들의 후손 아닌가. 정서가 통하니 금방 가까워졌다. 이후 40번 넘게 테헤란을 찾았다.”
미국 제재에 원화 결제 ‘우회로’
Q : 원유 원화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A : “2010년 이란 제재에 착수한 미국이 한국 정부에도 독자 제재를 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우리 정부가 만든 제재안을 들고 이란 외교부 수석차관을 찾아갔다. 그는 서류를 보지도 않고 옆으로 밀어놓더라. 나 역시 긴 말 하지 않았다. ‘한국이나 이란이나 미국, 중국처럼 힘이 없으니 제재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해하라’고만 했다. 대신 내가 들고 간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가 이란산 원유를 계속 살 테니 대신 원화로 결제하자. 계좌는 서울에 두고 그 돈으로 필요한 한국산 물품을 사 가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이후 이란 중앙은행 부총재가 서울에 들어왔다. 점심때 샌드위치 먹으면서 실무 협상을 시작했는데 다음 날 아침 7시에 끝냈다. 단 하루만이었다.”
※원화결제 시스템=이란과의 합의 이후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 계좌가 개설됐다. 우리로선 저렴한 이란산 원유를 확보할 수 있었던데다 국내 기업들의 현지 수출 길도 열어주는 효과를 봤다. 계좌에 붙는 이자도 0.1%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이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고 고강도 제재에 착수하면서 당시 65억 달러(약 10조1127억원)가량의 원유수입 대금이 예치돼 있던 계좌도 동결됐다. 2023년 이란이 미국인 수감자를 석방하는 대가로 이 자금을 돌려받기로 합의했지만, 반환 과정에서 가자 전쟁이 발발하면서 카타르에서 계좌가 다시 묶였다. 이 자금의 처리 문제는 현재 미·이란 간 종전 협상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부상해 있는 상태다.
Q : 원화계좌 도입에 당시 미국이 반대하지는 않았나.
A :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 관계가 좋았고, 따로 양해를 구했다. 원유의 원화결제 시스템은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의 첫 예외였다. 중국의 위안화 거래도 사실상 이를 모방한 것이다. 당시 이게 어떻게 번질 수 있는지 아마 미국도 상상을 못 했을 것이다.”
※페트로-달러 체제=미국이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석유를 미국 달러화로만 거래하도록 한 것에서 비롯됐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한 1970년대 ‘닉슨 쇼크’ 이후 흔들리던 기축통화 지위를 다시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이 최근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며 균열을 내고 있다는 평가다.
Q : 현지에 진출하려는 기업에 조언한다면.
A : “과거 서방 국가들과는 달라야 한다. 꿩 먹고 알 먹고, 심지어 새집까지 먹으려 들었기에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일대일로(一带一路)’를 내 건 중국 역시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다. 만약 자원 개발 사업을 한다면 자원 확보에 집중하고 그 값을 충분히 쳐줘야 한다. 우리는 그 자원을 가져와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이익을 내면 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관계가 된다. 한국과 사업하니 다르다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열린다.”
◆신재현=서울대 법대와 뉴욕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에너지·자원협력대사를 하면서 이란과 인연을 맺은 뒤 양국 경제협력 플랫폼인 서아시아경제포럼을 운영하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에서도 고문을 맡아 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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