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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베네수엘라의 분노

2026.07.02 00:41

고승욱 대기자

베네수엘라는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이다. 1499년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호수에 도착한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원주민의 수상가옥을 보고 베네치아를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원주민이 스스로를 ‘베네치우엘라’라고 불렀다는 반론도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문화를 선전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100년 만의 강진이 강타한 뒤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말은 ‘분노’로 바뀌는 듯하다. 지진의 참상과 각국에서 파견된 구조대의 활동을 전하는 특파원들의 기사에는 ‘치솟는 분노’가 빠지지 않는다. BBC는 ‘분노한 국민들이 정부의 태만을 비난한다’는 기사에서 “구조대는커녕 잔해를 파헤칠 장비조차 보내주지 않아요. 잃어버린 아이들을 나 혼자 찾아야 해요”라고 호소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CNN은 피해가 가장 큰 해안도시 라과이라에서 멈춰선 굴착기에 주목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맨손으로 뒤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굴착기 운전자는 “휘발유가 없다”고 말할 뿐이다.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찾을 장비는 연료가 없어 움직이지 못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식량을 찾아 약탈에 나선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수도 카라카스에서 구조작업을 시찰하던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에게 분노한 시민들이 “꺼져라”라고 외치는 모습을 전했다. 라과이라주가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뒤 구조에 나선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국가시스템 붕괴는 좌익 포퓰리즘 ‘차비스모(차베스주의)’에서 비롯됐다. 풍부한 석유자원으로 번 돈을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에 쏟아부으며 대중적 인기에만 집착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노선이 바로 차비스모다. 산업화를 도외시한 포퓰리즘은 국제유가 하락기에 경제 붕괴로 이어졌고,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정권의 부패와 무능이 겹치면서 지금의 참상을 불렀다. 시민들의 분노는 30년 가까이 베네수엘라를 짓누른 ‘차비스모의 망령’을 쫓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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