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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공④] "쉽게 말해 못 한 거죠"…TK 도의원이 밝힌 '공약 반복'의 이유

2026.07.02 00:01

"초선 때 정치를 잘 몰랐다"…경북 재선 도의원의 속사정
대구 택시기사의 '일침'…"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


<더팩트>가 지난달 25일 찾은 경북 구미시 인동시장 인근은 '시장'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골목에 들어서자 '상가 임대'가 적힌 현수막이 건물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구미(경북)=이하린 기자


4년마다 똑같은 약속이 돌아온다. 재탕, 삼탕, 심지어 사탕. 어차피 찍을 당이 정해진 곳에서 공약은 더 이상 당선의 조건이 아니었다. 유권자를 설득하는 '도구'여야 할 공약(公約, 실행할 것을 약속)은 공약(空約, 헛된 약속)이 된 지 오래다. 지역 현안은 달라졌는데도 공약은 이름만 바꾼 채 반복되고, 이행 여부를 따져 묻는 과정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더팩트>는 6·3 지방선거 후 전남·대구·경북 광역의원 후보 공약을 전수 분석하고, 수천 장의 공보물을 뒤졌다. 지역 유권자와 전문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 기록을 5편의 기획 '돌돌공-돌고 도는 공약'에 고스란히 담았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경북·대구=이하린·서다빈 기자] "정치를 안 해봐서 공약을 잘 몰랐습니다. 쉽게 말해서 못 한거죠."

4년 전 내걸었던 공약을 다시 공보물에 올린 이유를 묻자, 국민의힘 소속 김창혁 경북도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일부는 이름만 바뀐 채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지역 유권자 상당수는 공약을 기억하지 못했고, 공약 이행 여부를 따져 묻는 제도적 장치도 느슨했다. 일당 우세 구도가 굳어진 TK에서 공약은, 선거 때마다 돌고 돌았다.

실제 <더팩트>가 2022년과 2026년 TK 광역의원 공보물을 전수 분석한 결과, 대구 지역 평균 공약 유사도는 65%, 경북은 64%였다. 동일 후보가 재출마한 선거구에서는 절반이 넘는 공약이 그대로 반복됐고, 일부는 표현만 바뀐 채 다시 등장했다. 김 의원 역시 재선에 도전하며 내건 공약의 절반 이상을 4년 전 공약과 비슷하게 제시했다.

김 의원이 재선에 내건 공약 가운데 인동시장 재개발, 노인종합복지관 건립, 작은도서관 조성, 천생산 개발 등은 초선 때 공약과 상당 부분 겹쳤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지난달 25일 경북 구미 인동 인근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초선 때의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데에는 상임위 배정 등 구조적 이유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상임위 배정이 잘못되면 공약 추진이 어렵다"며 '중고등학생 완전무상교복 추진' 공약이 좌초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교육위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경쟁률이 3대1이었다"며 "기획경제위로 배정되면서 공약 추진이 사실상 어려웠다"고 했다.

김 의원이 초선 때 추진했던 인동시장 리모델링 공약은 이번에 '재개발'로 탈바꿈했다. 4년 동안 시도했지만, 리모델링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상가가 수백 개 있는데 실제 상인은 10명도 안 되고, 상인회도 제대로 없다"며 "상인들이 별 의지가 없어 해결이 안 됐다. 그래서 부지를 매입해 완전히 부수는 방식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더팩트>가 지난달 25일 찾은 경북 구미시 인동시장 인근은 '시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골목에 들어서자 '상가 임대'가 적힌 현수막이 건물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구미=이하린 기자


김 의원의 설명이 실제 현장과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북 구미 인동시장을 찾았다. 골목 곳곳에는 '상가 임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고, 5층짜리 상가 건물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한 반찬가게에서 김치를 버무리는 소리만 적막을 깼다. 시장이라기보다 시간이 멈춘 골목에 가까웠다.

인동사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공약에 대한 기대를 거의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역구 도의원이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기억하는 주민은 드물었고, 공약보다 정당을 먼저 보는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인동 사거리 앞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도의원 누구 뽑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여긴 무조건 국민의힘"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묻자 "민주당이 되면 국민이 더 힘들어지고 비참해진다"고 말했다.

인동 주민 출신으로 현재 칠곡군에 거주하는 이원수(71·남) 씨는 "천생산을 자주 가는데,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면서도 "여기(인동시장 인근 상권)는 지금 다 망했다. 가게가 빈 곳이 한둘이 아니다"고 했다.

인근에서 2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한 박지숙(61·여)·송준삼(61·남) 부부는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박 씨는 "멀쩡히 있던 주민센터를 산꼭대기에 올려놨다. 노인들이 못 올라가니 밑에서 스위치를 눌러야 이동 장치가 내려와 태워 간다. 그게 뭔 돈 낭비냐"며 "옛날에 시의원이 그 땅을 알게 모르게 팔아먹고 이 꼴이 난 것이다. 그것부터가 이미 구리고 썩은 정치"라고 주장했다.

대구시의회는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비례의원 2명을 제외한 전 의석을 국민의힘이 차지했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대구 중구 동인동에 위치한 대구시의회 전경이다. /대구=이하린 기자


대구시의회 의석 구조 역시 지역 정치의 현실을 보여줬다. 전체 36석 가운데 국민의힘이 34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비례대표 2석에 그쳤다. 그러나 공약 이행을 의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점검하거나 평가하는 시스템은 사실상 없었다.

대구시의회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의회 앞에서 <더팩트>와 만나 "(공약 이행 여부는) 의회에서 관리하지 않고 개별 당선자들이 매니페스토를 신청해 정책 지원관의 도움을 받아 공약 이행 정도 실적을 관리하고 제출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약 이행 여부가 의원 개인의 관리에 맡겨진 만큼 의회 차원의 상시 검증 기능은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4년 전 공약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객관적으로 점검하거나, 같은 공약이 다음 선거에서 다시 등장했을 때 이를 걸러낼 장치도 사실상 없는 셈이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공약보다 당(黨)을 먼저 본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오후 대구 중구 달성로에 위치한 서문시장 모습이다. /대구=이하린 기자


공약이 반복되는 이유를 후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주민들은 특정 정당이 압승하는 선거 구도 속에서 공약 이행 여부를 따져 묻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고, 이 때문에 공약 경쟁 자체가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대구 토박이 택시기사 천모(68·남) 씨는 "국민의힘 공천 받으면 당선이 유력하다 보니, 그 구조가 반영돼 시장도 못하는 허무맹랑하고 현실성 없는 공약을 시의원, 구의원이 들고 나온다"며 "지금의 공약은 공약(公約, 실행할 것을 약속)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약(空約, 헛된 약속)"이라고 꼬집었다.

계명대 앞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모(30대·여) 씨는 "공약은 무관하게 어르신들은 그냥 국민의힘을 찍는 분위기"라며 "요즘 계명대 앞 상권도 다 죽었다. 좀 견제가 돼야 국민의힘도 간절하게 임할텐데, (그러지 않으니) 의원들도 안일해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치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문시장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지방선거 공약은 기억에 남는 후보들이 없다. 인물 보고 찍는 것보다 당을 보고 찍는 경향이 훨씬 압도적"이라며 "천지가 개벽한 다음에야 없어지겠나.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지층 사이에서는 배신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대구 달성군 출신의 70대 택시 기사는 "국민의힘을 믿고 찍었는데 이제까지 해준 게 없다. 일종의 배신"이라며 "공약을 아무리 걸어도 중앙에서 예산이 내려오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 중) 제일 빈약하게 대구"라고 분노했다.

대구 토박이지만, 상경한 20대 사회초년생도 대구 지역 정치의 현실을 짚었다. 장모(26·여) 씨는 "어디 가서 대구 출신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라며 "시의원 입장에선 공천만 받으면 뽑아주는 구조다 보니 새로운 공약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좋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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